고위공직자 '사퇴 도미노', 대체 언제까지?

[분석] 강동석 전 건교, 진상규명 없이 '여론검증'으로 도중하차

등록 2005.03.28 12:11수정 2005.03.28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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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누구?  올들어 도중 하차한 고위공직자 네 명. 왼쪽부터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강동석 건교부장관.
다음은 누구? 올들어 도중 하차한 고위공직자 네 명. 왼쪽부터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강동석 건교부장관.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이 끝내 사임했다. 올해 들어 장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가운데 벌써 네 번째 '도중 하차'다.

지난 1월 7일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가 아들 병역기피 및 상가 편법증여·대학 편법 입학 의혹 등의 문제로 물러난 뒤 두 달여 동안에 4명의 장관급 인사가 낙마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장, 그리고 오늘 사표가 수리된 강동석 건교장관이 그들이다.

그러니 '사퇴 도미노' 현상이라고 부를 만하다. 네 사람 모두 직계 및 친인척의 부동산투기 의혹을 받았다.

이기준 전 부총리는 아들에게 상가건물 등을 편법증여한 의혹에다가 아들이 대학에 편법입학했다는 의혹, 서울대 총장시절 기업의 사외이사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물러났다. 유교의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교육부총리는 다른 국무위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그의 사퇴는 '똑 떨어지는 점'이 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부터는 다소 엇갈리는 사퇴에 대한 반응

그러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부터는 사퇴에 대한 반응이 다소 엇갈린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부인이 26년 전 산 임야를 재작년에 팔아 수십 억 차익을 본 게 투기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최영도 전 위원장도 오래 전에 부인이 경기 용인 등에 땅을 사면서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오늘 사표가 수리된 강동석 건교장관은 처제·친구의 인천공항 주변 토지 매입 및 차남 입사청탁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모두 이런 의혹이 제기된 지 3일 혹은 1주일만에 물러났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 것일까. 또 언제까지 이런 '사퇴 도미노'가 계속되는 것일까.

우선 모두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일'로 발목을 잡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부는 '투기'인지 '투자'인지가 규명되지 않은 채 물러났다. 사실 과거라면 문제가 안 됐을 것도 섞여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직자에게 기대하는 도덕적 기준이 높아진 탓이 크다. '사퇴 도미노' 현상의 1차적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그대로 묻혀 있을 사안들이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사소한 문제도 곧바로 공개되고 있다"며 "앞으로 정말 사람 쓰기가 더 어려워질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부에서는 인사검증 시스템의 문제를 거론한다. 공직자 임명과정에서 인사 추천 및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 듯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이헌재 전 부총리만 해도 26년 전에 민간인 시절에 부인이 산 땅을 재작년에 팔아서 이익을 '실현'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또 언론에 제기된 의혹을 보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사안이 불거진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청와대가 검증 과정에서 알고도 그대로 넘어간 것들이다.

이를테면 70∼80년대 고도 경제개발 과정에서 부동산을 사놓은 사람은 누구나 지금와서 부동산투기 의혹에 휩싸일 수 있다. 과거를 현재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재단하면 결국 이번과 같은 사태가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의식도 문제

또 최근에 불거지는 사안들은 과거의 '사직통팀' 같은 수사권이 없는 현재의 청와대 검증 시스템만으로는 걸러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모색되고 있는 본인의 동의에 의한 재산형성 조사 등 인사 검증시스템의 보완·정비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도입을 추진중인 국무위원 인사청문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사회의 '변화의 속도'를 공직자들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지난 25일 중앙인사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변화의 속도가 과거 개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견디기 힘든 과정으로 알고 있다"면서 "정치의 악순환 고리는 정치인 스스로가 끊어야 하듯이, 공직사회의 악순환은 공무원 스스로 먼저 끊어야 신뢰와 존경, 보람과 포상 등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네거티브 검증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능력 위주의 포지티브 검증시스템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 대통령도 중앙인사위 업무보고에서 "청와대 인사검증시스템에 대한 지적을 받곤 하는데, 인사검증에는 적합한 사람을 위한 인사검증, 부적합한 사람을 찾기 위한 인사검증 두 가지 측면이 있을 텐데, 인사위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에 대한 검증을 중점적으로 추진해 주기 바란다"면서 "인사검증제도의 개선에 대한 본격적 논의가 필요하니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결국 아직은 '과도기'라는 점이다. 강동석 건교장관은 27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공인의 높은 도덕성과 책무를 다하는 데 빈틈이 있었다"고 완곡하게 해명했다. 한번 높아진 '기준'에 따라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현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헌재 부총리 의혹에 대한 정밀검증으로 사회적 용인의 '기준점' 세워야

따라서 어느 선까지 '용인'하고 어느 선부터는 '불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그에 대한 기준점은 지난 3월 8일 이헌재 전 부총리의 사퇴를 수용하면서 노 대통령이 공개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당시 "해일처럼 밀려온 여론 앞에 책임의 소재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장수를 떠내려보내는 것은 인사권자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은 '후속조처'를 국민에게 약속했다.

"이번에 이헌재 부총리에 대해 제기된 여러 의혹들에 대해서는 관계기관으로 하여금 명백하게 진실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을 지게 하고, 억울한 일이 있다면 억울함을 풀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비리 의혹으로 사임한 고위 공직자

- 1월 7일 이기준 교육부총리(장남의 병역기피 및 상가 편법증여·대학 편법입학 의혹)
- 3월 7일 이헌재 경제부총리(부인의 위장전입을 통한 부통산투기 의혹)
- 3월 19일 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부인의 위장전입을 통한 농지매입 등 부동산투기의혹)
- 3월 27일 강동석 건교부장관(차남 취업 관련 청탁 의혹 및 처제·동창의 땅투기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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