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59회)

등록 2005.03.30 13:10수정 2005.03.3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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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경사를 넘어 박물관 입구에 도착했다. 낡고 퇴락한 느낌의 건물은 불이 꺼져 있는 데다 입구의 문까지 굳게 잠겨 있었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자 작은 창문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창문 옆에는 비상구로 보이는 문이 보였다.

김 경장은 그 문을 두들기며 가늘게 소리쳤다. 문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열렸다. 낮에 보았던 조교가 의아한 표정으로 김 경장을 건너다보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낮에 왔었던 사람입니다."

조교는 금세 김 경장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시죠?"

"유물을 다시 한번 보았으면 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조교는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곤란합니다. 오후 6시가 지나면 입구 문을 통째로 잠궈 놓습니다."


"잠깐이라도 안 될까요? 꼭 봐야 할 것이 있어서요."

"제 소관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조교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김 경장 뒤에 있던 채유정이 앞으로 나섰다. 조교는 금세 채유정을 알아보았다.

"선배님도 오셨군요."

"어떻게 좀 안될까?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야."

조교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6시가 지나면 자동으로 문이 차단됩니다.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면 경비업체와 공안에 연결되어 곧장 그들이 출동할 것입니다."

듣고 있던 채유정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둘은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박물관 건물에서 나왔다.

건물 밖의 교정은 달빛이 푸른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주위는 적막감이 감돌 정도로 조용했고, 가끔씩 건물 뒤 숲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가 그 정적을 깨뜨려 놓곤 했다. 기온은 높지 않았지만 끈적끈적하게 감겨오는 습기로 인해 옷이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다. 채유정은 걸으면서 손부채를 해 보이며 김 경장을 돌아보았다.

"도대체 저 유물들이 어떤 답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죠?"
"그 유물들을 보는 동안 어떤 감이 느껴졌어요."

"유물이 어떤 것인지 알겠다 말인가요? 아니면 그 장소를 알겠다는 건가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순전히 저의 감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말입니다. 어쨌든 박사님과 관련된 어떤 단서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건 분명합니다."

"내일 다시 오실 건가요?"
"그래야죠."

"그건 위험해요. 낮에 함부로 다녔다간 금세 공안에게 붙잡힐 겁니다. 어딜 가더라도 밤에 은밀히 움직여야만 해요."
"그렇다고 방에 숨어만 있을 순 없잖아요. 그럴 바엔 차라리 우리나라로 가는 게 나을 겁니다."

둘은 박물관이 있는 언덕을 내려와 교문과 가까이 있는 운동장을 끼고 돌았다. 운동장 양 옆에 있는 라이트는 꺼져 있었고, 운동장도 스탠드에도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방학인데다 장마까지 겹쳐 학생들이 학교로 나오지 않는 듯 했다. 하늘도 점차 흐려지는 것 같았다.

짙은 구름이 몰려오며 조금씩 달빛을 가려지다가 이내 주위가 어두워졌다. 수은등이 길의 모습만 간신히 비칠 정도였다. 그 길을 따라 걷던 김 경장이 문득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잠깐만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둘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뒤쪽에서도 발자국 소리가 들리다가 이내 똑같이 멈추었다. 김 경장이 낮게 속삭였다.

"누군가 우릴 미행하고 있어요."

채유정이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누가 우릴 미행한다는 거죠?"

"아마 공안은 아닐 겁니다. 공안이라면 벌써 절 체포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아마 그들일 겁니다."

채유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어떻게 해야 죄죠?"
"우선 저들을 따돌려야 합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노련한 그들을 따돌리기 힘들다는 것을 김 경장은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채유정은 여자이기 때문에 달리기에 뒤질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따돌리기 힘든 것이다.

다시 걷기 시작한 둘은 학교 교정을 빠져나와 곧장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골목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고,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다. 번잡한 거리가 나오면 몸을 숨기가 좋으련만, 주위에 그런 곳은 보이지 않았다. 학교가 방학을 하면서 주위 술집과 상점도 일찍 문을 닫은 것이다.

둘은 빠른 속도로 걸으면서 달아날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다가 좁은 골목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김 경장이 낮게 외쳤다.

"저들이 노리는 건 바로 접니다. 유정씨는 저쪽 골목으로 달려가세요. 전 여기 큰길로 달려 저들을 따돌릴게요."
"하지만 놈들은 한 두 명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둘 다 잡힐 순 없잖아요."

김 경장은 그 말과 함께 곧장 큰길로 뛰어갔다. 할 수 없이 채유정은 좁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사내들은 곧장 따라오더니 잠시 멈추어 선 채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큰길로 뛰어가고 있는 김 경장을 발견하고는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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