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의 조선인 합사는 언제부터?

[발굴] 총 2만여 명... 첫 사례는 1926년 4월 배대영으로 추정

등록 2005.03.31 03:00수정 2005.03.3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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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도쿄 구단시타에 소재한 야스쿠니 신사 본당 전경.

도쿄 구단시타에 소재한 야스쿠니 신사 본당 전경. ⓒ 유용수


때만 됐다 하면 일본 총리가 잊지 않고 말썽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이 몇 년째 계속이다. 주변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일본총리의 행태가 과연 '무대뽀'정신의 원조답다.

그가 즐겨하는 말마따나 '국내용'의 몸짓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야스쿠니 신사에 관한 것이라면 일본인들의 문제에만 그치질 않는다. 당연히 내정간섭이라는 말로 피해나가거나 괜한 성질을 부릴 일도 아닌 듯하다.


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나라에서 극진히 모시는 것은 으레 있을 수 있는 예우이겠지만, 그것이 이른바 'A급전범'의 소굴이 되어서는 참으로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라면 비단 'A급전범'에 대한 참배문제만 얽혀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2만 명이 넘는 조선인들의 위패가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 역시 큰 문제다. 듣자하니 이들 조선인 전몰자들에 대한 합사(合祀) 취소 요구에 대해서는 묵살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a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조사입법고사국에서 발간한 <야스쿠니신사문제자료집> (1976년 5월)에는 "1975년 10월까지 조선인 합사주수의 누계가 2만636인"이라고 적고 있다. 한편, <동경신문(東京新聞)> 2001년 8월 12일자 보도에는 '조선출신자가 2만1181주, 대만출신자가 2만7863주'라고 전하여 그 숫자가 다소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조사입법고사국에서 발간한 <야스쿠니신사문제자료집> (1976년 5월)에는 "1975년 10월까지 조선인 합사주수의 누계가 2만636인"이라고 적고 있다. 한편, <동경신문(東京新聞)> 2001년 8월 12일자 보도에는 '조선출신자가 2만1181주, 대만출신자가 2만7863주'라고 전하여 그 숫자가 다소 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총리의 막무가내식 신사참배도 문제려니와 야스쿠니 신사에 볼모로 잡힌 조선인합사자들의 문제도 당연히 서둘러 해결이 되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한다. 이를 지켜보는 합사자 유족들의 심정은 또 오죽할 것인가? 식민지의 백성이라 하여 애먼 전쟁터에서 산 목숨을 버린 것도 억울한데, 죽어서까지 그네들에게 충성할 필요는 결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지난 1976년에 일본국회도서관에서 정리한 <야스쿠니신사문제자료집>에 따르면, 1975년 10월 현재의 조선인 합사주수(合祀柱數)는 2만636인, 대만인 합사주수는 2만7656인에 달한다고 했다. 하지만 <동경신문> 2001년 8월 12일자 보도내용에는 '조선출신자가 2만1181주, 대만출신자가 2만7863주'라고 소개하고 있다는데, 이로써 그 사이에도 숫자가 계속 늘어났음을 엿볼 수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다.

이들이 어느 때에 전사한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 가운데 태평양전쟁 때의 피해가 가장 컸던 것은 분명하다. 참고로 1940년 가을 임시대제까지의 야스쿠니 신사 총합사주수는 19만3811주였고, 그 후 시기부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의 짧은 시기에 200만 명 이상의 추가 전사자를 냈던 것으로 보면 그 추세나마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야스쿠니 신사에 조선인이 합사되기 시작한 것은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1930년대 이후의 신문자료를 훑어보면, 경찰이나 국경수비대원 출신의 조선인 전몰자들이 야스쿠니신사 합사의 은전(?)을 입었다는 내용이 차츰 등장하다가 1930년대 후반기로 넘어갈수록 그러한 기사들은 부쩍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 사례들을 일일이 정리하기가 벅찰 정도여서, 다만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사례 하나만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려 한다.

필자가 1910년대 이후 조선총독부 관보와 신문자료 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선 사람으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처음으로 합사된 이는 '배대영(裵大永)'으로 추정되는데, 그때가 바로 1926년 4월이 된다.

a <조선총독부 관보> 1926년 5월 11일자에는 조선인 고원 배대영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를 앙출한다는 내용의 '육군성 고시 제8호'가 재수록되어 있다.

<조선총독부 관보> 1926년 5월 11일자에는 조선인 고원 배대영을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를 앙출한다는 내용의 '육군성 고시 제8호'가 재수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우선 <조선총독부 관보> 1926년 5월 11일자에 일본의 관보에 수록된 '육군성 고시 제8호'를 다시 옮겨놓은 자료가 남아 있는데, 이 내용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육군성 고시 제8호

대정3년내지9년전역 및 동 전역에 계속한 출병에 관한 근무에 복무하다 사몰(死沒)한 좌기인명의 자를 본년 4월 야스쿠니신사에 합사(合祀)를 앙출(仰出)함.
대정15년(1926년) 4월 15일 육군대신 우가키 카즈시게(宇垣一成)
고원 훈팔등(雇員 勳八等) 배대영(裵大永) 경기도
(4월15일 관보)


여기에 나오는 대정삼년내지구년전역(大正三年乃至九年戰役)은 1914년에서 1920년 사이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 및 시베리아출병을 말한다.

여기에 나오는 배대영이라는 사람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때마침 <매일신보> 1926년 5월 13일자에 관련기사 몇 줄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인 배씨, 야스쿠니신사에 합사, 배씨 일문의 큰 영예이라고"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 내용을 여기에 옮기면, 이러하다.

"경성부 서부 월궁정(月宮町) 47번지에 원적을 둔 배대영(裵大榮)은 금택(金澤, 가네자와)에 있는 기병 제9연대의 고원으로 노령 연해주(露領 沿海州)에 주둔하던 중 지난 대정 11년(즉 1922년) 6월 11일 '크라스뉘크ㅡ트'에서 전사한 공로에 의하여 일찍 훈팔등(勳八等)을 받았던 바 이번에 다시 정국신사(靖國神社)에 합사(合祀)하라는 천황폐하의 어명에 의하여 4월 28일에 초혼식(招魂式)을 집행하고 29일에 임시제를 거행하였다는 통지가 동 신사임시제위원에게로부터 왔으므로 고인과 그 유족의 명예는 실로히 크리라더라."

a <매일신보> 1926년 5월 13일자에는 짤막하나마 조선인 전사자 '배대영'의 야스쿠니신사 합사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전하고 있다.

<매일신보> 1926년 5월 13일자에는 짤막하나마 조선인 전사자 '배대영'의 야스쿠니신사 합사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전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월궁정'은 지금의 종로구 적선동(積善洞) 지역을 가리킨다. 일개 고원(雇員)의 신분으로 멀리 러시아 땅까지 나갔다가 전사한 지 4년 만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것이 "배씨 일문의 큰 영예"라고 적고 있다. 천황폐하의 특명으로 그리 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어쨌거나 '배대영'의 사례 이후에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선별적'으로 은전이 베풀어지던 조선인 합사는 1930년대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거의 일상화되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만큼 조선인 희생자가 여기저기 늘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론 그때마다 '광영'이니 뭐니 하는 소리가 빠지질 않았다.

그렇게 하나 둘씩 합사된 숫자가 태평양전쟁까지 거치면서 결국 2만명 선을 훌쩍 넘겼던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혼이 되는 것이 그네들에게는 얼마나 영광되고 감격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방이 되고도 60년이 다 된 지금 우리들에겐 그것이 분명 욕된 일이고 죽은 자에게나 살아 있는 자에게나 그저 뼈아픈 고통이 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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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전부터 문화유산답사와 문화재관련 자료의 발굴에 심취하여 왔던 바 이제는 이를 단순히 취미생활로만 삼아 머물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알리고 싶은 얘기, 알려야 할 자료들이 자꾸자꾸 생겨납니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얘기이고 그것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이 세상에 거의 남아 있지는 않지만, 이에 관한 얘기들을 찾아내고 다듬고 엮어 독자들을 만나뵙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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