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지우가 없어졌어요!"

지우의 어린이집 생활기 8

등록 2005.04.01 00:04수정 2005.04.0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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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어린이집 다녀오겠습니다."


지우가 어린이집을 다닌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모르는 길을 처음 가보면 실제보다 훨씬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딸아이가 시작한 어린이집 생활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정신없이 바빴던 것 같은데도 한 달이 참 길게 느껴졌다. 별 탈 없이 첫 달을 무사히 넘기는가 싶었다.

그런데 3월의 마지막 날에 가슴이 철렁한 사건이 터졌다. 집에서 아들 녀석과 한가롭게 놀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무심코 받아든 수화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우 어머니시지요? 여기 수성 어린이집인데요. 혹시 지우 집에 갔나요?”
“아뇨. 아직 올 시간이 아닌데 무슨 말씀이세요?”

지우가 오려면 한 시간도 더 남았는데 집에 왔냐고?! 생뚱맞은 질문에 가슴이 콩닥콩닥 방망이질 쳤다.

“혹시…”
“어머니, 지우가 없어졌어요!”
“없어지다니요?”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하셨다. 지우가 오늘따라 유난히 점심을 먹기 힘들어 하기에 천천히 다 먹고 교실로 오라고 하셨단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다 끝나고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가봤더니 없더라는 것이다.

지우를 찾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전화를 끊고 대충 옷을 챙겨 입었다. 신발을 막 신으려던 순간!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엄마, 나야.”

딸아이 목소리가 아닌가! 황급히 문을 열었더니 지우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린이집 가방을 멘 채 서 있었다. 지우가 무사하다는 안도감에 다짜고짜 꼭 끌어안았다.

“지우야, 엄마가 데리러 간다고 했잖아. 왜 혼자 왔어?”
“선생님이 밥 다 먹고 가라고 하셨어. 그래서 온 건데.”

지우는 혼자 집에 온 게 자랑스러운 듯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선생님이 걱정하고 계실 듯해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지우가 혼자 집에 왔네요.”
“그래요?”
“아무 일 없이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어머니, 제가 잘 돌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신경 쓰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지우에게 왜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도 아닌데, 엄마가 데리러 가지도 않았는데 집으로 혼자 왔냐고 물었다. 지우는 밥 다 먹고 선생님이 집에 가라고 하셨다며 조금 전과 같은 대답을 했다. 아무래도 밥 먹고 교실로 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은 모양이다.

a 난꽃과 함께 한 딸

난꽃과 함께 한 딸 ⓒ 김미옥

“엄마가 혼자 집에 와 도 된다고 할 때까지 혼자 오면 안 돼. 엄마나 아빠가 데리러 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알겠지?”
“네.”

어린이집에 다닌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지우가 혼자 집에 돌아오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집까지 그리 멀지도 않고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을 지나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러라고 했다. 남편이 지우를 데리러 가기로 한 날이라 축구 연습을 하기 전에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지우가 혼자 집에 간다고 했어. 그러니까 기다렸다가 늦으면 집밖에 나가봐”라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딸아이를 기다리다 조바심이 났는지 어린이집까지 데리러 갔나 보다.

나중에 남편한테 물으니 지우가 데리러 왔다고 화를 내더라고, 아빠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성화를 부렸다고 했다. 혼자 돌아오겠다는 큰 결심을 했는데 아빠가 데리러 온 것이 못내 못마땅했는지 지우는 그 다음부터는 혼자 오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지우가 어제 집에 혼자 돌아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뭐, 혼자 오는 것도 별거 아니잖아’라고 생각했을지도, 아니면 무서운 생각이 들어 부리나케 뛰어왔을지도 모른다. 지우는 자신이 색다른 체험을 하는 그 시각에 엄마는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심정이었다는 걸 알까. 당분간 지우가 어린이집에 오갈 때마다 손을 잡고 다녀야겠다. 혼자 어린이집에서 집까지 오가는 일은 한참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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