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기슭에서 고로쇠 물을 얻다

등록 2005.04.01 00:33수정 2005.04.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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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로쇠 물을 받느라고 산을 누볐다. 지리산 곁줄기를 타고 다니다 봄 햇살 가득한 날에 유리알보다 더 투명한 산골짜기 계곡물에 발을 집어넣었다가 발이 얼어터지는 것 같아서 1분도 채 견디지 못하고 벌겋게 언 발을 햇살을 받아 따끈따끈한 바위 위에서 말리기도 했다.


해발 900∼1100미터 사이에 서식하는 고로쇠 나무를 따라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면서 참 행복했다. 산 구석구석 확 번진 봄기운은 새싹 하나 움튼 게 없었지만 꿈틀꿈틀 생동하는 기운이 온 누리에 가득했다.

저 멀리 까마득히 1000 고지의 산이 보인다
저 멀리 까마득히 1000 고지의 산이 보인다전희식
근 10년째 산에서 살고 있는 고향의 이종동생이 고로쇠 물 좀 와서 먹으라고 해서 이왕 가는 것 이참에 나도 고로쇠가 뭔지, 나무의 피를 빨아 먹는다는 비판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도 살펴보고 산 좀 타 볼 겸 갔다가 기대 이상의 만족을 얻고 돌아왔다. 고지식하게 시골에서만 살고 있는 그 이종동생은 뭐든 고지식하게 일을 하는데 고로쇠 채취도 고지식하게 했다.

수액이 잘 나오는지 손 볼 데는 없는지 매일 매일 점검한다. 오른쪽이 필자.
수액이 잘 나오는지 손 볼 데는 없는지 매일 매일 점검한다. 오른쪽이 필자.전희식
꼭 5년째가 되는 그의 고로쇠 나무 수액 채취는 나무와 삶을 같이하는 셈이었다. 그는 고로쇠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칡넝쿨과 넝쿨나무들을 쳐내고 나무에 뚫는 구멍도 8밀리미터 이하로 제한하는 협회 규정을 따랐다. 또 한 나무에 뚫는 구멍 수도 제한을 두어 나무가 한 해만에 완전히 복원되도록 하고 있었다. 곧 허가제가 되면서 무작위 고로쇠 수액 채취가 제한받을 것이라 했다.

병들어 누운 환자처럼 투명한 고무호스가 나무에 끼워져 있으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병들어 누운 환자처럼 투명한 고무호스가 나무에 끼워져 있으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전희식
마을에서 올려다 본 산은 까마득했지만 물 좋고 공기 좋다보니 힘드는 줄 모르고 산을 몇 개나 넘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 험한 산을 눈이 무릎까지 쌓이는 1월 달에 올라와서 시설을 다 했다고 한다. 나무에 구멍을 뚫고 호스 빼서 잇고 하는 작업이 만만찮았을 듯 보였다. 그는 1500여 그루나 되는 고로쇠 나무를 혼자서 관리하고 있었다.

인기를 끄는 보신재들이 다 그렇듯이 고로쇠도 성인병에 좋다고 한다. 약 먹듯이 먹는 게 아니고 일삼아 먹어야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아예 어떤 사람은 찜질방에 한 통 가져가서 땀 빼면서 계속 먹는다는데 그러면 체액이 다 교체될 정도로 체내 노폐물이 빠져나와 건강이 좋아진다고도 하는 신비의 수액이라는 것이다.


채취한 고로쇠 나무 원액을 저온창고로 옮겨 보관한다.
채취한 고로쇠 나무 원액을 저온창고로 옮겨 보관한다.전희식
고로쇠 나무에 투명한 호스가 두 세 개씩 박혀 있는 모습이 코와 입에 호스를 물고 약물을 주입하는 병실의 환자를 연상시켰다. 나무 서너 그루에서 모아진 수액이 겨우 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이도 하루 중 오전 11시경부터 오후 4시 정도까지란다. 그 이외의 시간은 나무가 자기 유지하느라 수액을 배출하지 않는다고 했다.

올해처럼 날씨가 변덕을 부리면 수액 양은 적어져도 질은 좋다고 한다. 추울 때는 나무도 몸에 수분을 다 빼내서 뿌리로 내려 보냈다가 날이 풀리면 힘차게 물을 빨아올리는데 나뭇가지마다 다 보내고, 움 트는 데도 보내고 남은 수분이 뿌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채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론은 나무의 생존과 성장에 아무 지장이 없게 한다는 것이었다.


페트병에 넣어 박스에 담아 유통한다.
페트병에 넣어 박스에 담아 유통한다.전희식
고로쇠 동호회들이 고로쇠 주산지를 찾아다니는 것은 고로쇠 물도 고로쇠물이지만 고로쇠가 나는 산을 타고 다니는 것이 더 건강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타는 동안 기운을 쏟는 게 아니라 기운을 얻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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