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남은 가장 완벽한 콜로세움

[부부 배낭 여행기 튀니지2 - 엘젬]

등록 2005.04.03 09:02수정 2005.04.0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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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성형수술이나 피부 레이저 안 할래. 내가 이렇게 인기 있고 예쁜 줄 몰랐잖아."

다음날 아침 튀니스의 호텔을 나서서 '엘젬'(EL-JEM)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을 향해 걸어가면서 아내가 하는 말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대답할 말도 찾지 못하는데 계속 떠들고 있다.


"거봐 모두들 나만 쳐다본단 말이야. 안 보는 척 하면서 계속 보고 있다니까. 역시 여기서도 미모는 알아주네."

하기야 그 말도 맞다. 이곳에서 동양인, 더구나 한국여성(겨울인데도 햇빛 가린다고 모자까지 쓰고 있으니)을 본다는 게 매우 드문 일일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우리 부부는 가는 곳마다 시선집중이었다.

튀니스의 시외버스 터미널은 목적지에 따라 남쪽 버스정류장과 북쪽 버스정류장 두 개로 나뉘어져 있다. 지도를 보며 남쪽 버스정류장을 찾아 걸었다. 다행히 시내에서 가까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이란 말을 붙이기에는 너무 작다. 우리나라 시골의 버스정류장을 연상하게 한다.

a 남쪽 시외 버스 터미널 풍경(청소하는 직원과 버스를 기다리는 노부부)

남쪽 시외 버스 터미널 풍경(청소하는 직원과 버스를 기다리는 노부부) ⓒ 함정도

a 남쪽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아기와 아기엄마(엘젬까지 동행하며 유일하게 영어로 도움을 주었다.)

남쪽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아기와 아기엄마(엘젬까지 동행하며 유일하게 영어로 도움을 주었다.) ⓒ 함정도

이곳 버스는 대부분 국영업체인데 '신트리'(SNTRI)라고 부른다. 좀 낡고 불편하지만 그리 비싸진 않다. 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를 향해 용감하게 걸어갔다. 직원에게 '엘젬'하고 외치고는 손가락 두개를 치켜드니 고개를 끄덕이며 승차권에 가격을 적어 준다. 말은 안 통해도 돈은 통하나 보다.

이번엔 버스를 찾는 게 일이다. 출발하는 버스 앞면에 아랍어로 목적지를 적어 놓은 것 같기도 한데 알 수가 있나. 그래서 버스마다 '엘젬' 하고 외쳤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걱정이 되었는지 터미널 직원이 와서 아랍어로 손짓 발짓하며 이야기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가리키는 자리에 '엘젬' 가는 버스가 들어오니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인 것 같다.


표를 들고 한참을 기다려서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하다. 오렌지가 가득 매달린 가로수 아래로 남자들이 길가 카페에 앉아서 담배를 피거나 차를 마시기도 하고, 벌판의 양떼를 몰아가는 양치기들이 보였다. 마치 성화에 나오는 장면 같다.

두 시간쯤 후에 버스가 멈추고 운전기사가 무어라고 말하며 내렸다. 어쩌라는 거야. 옆자리에 아기를 데리고 있는 젊은 여자를 향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다행히 영어를 알아듣고는 여기는 휴게소라며 15분 후에 출발한다고 일러 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걱정 어린 얼굴로 우리를 보다가 웃어 주었다.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간단한 음료수만 사서 얼른 돌아와서는 버스 바로 옆에서 기다렸다.


남쪽으로 약 3시간 정도 왕복 2차선 도로를 달린 후에야 '엘젬'에 내릴 수 있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우리를 향해 엘젬, 엘젬 외치며 내리라고 알려 주었다. 오는 내내 우리가 신경 쓰였나 보다.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로마 시대에는 북아프리카 총독이 거주하던 곳이라 제법 큰 도시였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원형경기장(물론 첫 번째는 로마의 콜로세움)이 가장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유명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길을 물어 볼 필요가 없었다. 너무 작은 마을이라 콜로세움 경기장의 성벽이 어디서나 보였다.

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전통시장(수크)을 지나가게 되었다. 여러 가지 물품들을 늘어놓고 사람들이 북적대는 모습은 세계 어느 시장과도 같다. 우리도 그 틈에 끼여 먹음직스런 오렌지와 사과를 샀다. 오렌지는 무척 싸고 맛있었다.

a 콜로세움 입구(매표소에 튀니지아 국기가 보이고 검은 차도르를 두른 여인들도 보인다)

콜로세움 입구(매표소에 튀니지아 국기가 보이고 검은 차도르를 두른 여인들도 보인다) ⓒ 함정도

"여기가 아프리카 맞아?"

거대한 오층으로 된 구조물 아래를 지나 경기장으로 들어서며 아내가 말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커다란 돌들과 그 사이를 메운 콘크리트 같은 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무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감동 그 자체다.

a 콜로세움

콜로세움 ⓒ 함정도

아! 이것이 서구의 그 많은 작가들이 외치던 위대한 로마의 모습이구나. 나는 책에서 그런 부분들을 읽을 때면 흔히 쓰는 관용적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위대한 로마의 문명'은 그들의 다소 과장되거나 미화된 과거를 지칭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지금, 그 고대의 영광과 위대함을 직접 바라보는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겨울철이라 그런지 관람객도 적고 조용해서 천천히 콜로세움을 감상할 수 있었다. 검투사들과 맹수들의 공간인 지하구조 전체를 개방하고 있었으며 상태도 아주 좋았다. 앞으로 더 많은 관광객이 밀려들면 어찌 바뀔지 모르겠지만.

a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는 계단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는 계단 ⓒ 함정도

a 지하 통로

지하 통로 ⓒ 함정도

a 지하와 지상에서 바라 본 환기와 채광을 위한 창문

지하와 지상에서 바라 본 환기와 채광을 위한 창문 ⓒ 함정도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통로 양쪽으로 방들이 늘어서 있었고 곳곳에 환기와 채광을 위한 구멍들이 있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보는 것처럼 아마 이 방들은 맹수들이나 검투사들을 수용했던 곳일 것이다. 방구석에 놓인 작은 구조물은 변기가 아닐까. 그리고 우물도 있었고 엘리베이터처럼 줄을 당긴 흔적들도 보였다. 아내는 좀 으스스하고 무섭다고 빨리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축축한 공기에서 유령의 냄새가 났다. 관중의 함성 소리가 지금도 밖에서 들리는 것 같다.

a 콜로세움

콜로세움 ⓒ 함정도

a 콜로세움의 무너지 벽 사이로 엘젬 시가지와 지평선이 보인다.

콜로세움의 무너지 벽 사이로 엘젬 시가지와 지평선이 보인다. ⓒ 함정도

둥근 경기장 바닥으로 올라와 사방을 둘러보았다. 5층 높이의 스탠드가 까마득히 높아 보였다. 검투사들도 이랬을까? 글쎄, 검투뿐 아니라 다른 오락거리들도 공연했을 터이니 그리 잔혹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행사가 있으면 시민들을 모두 모아 놓고 했을 것이다.

AD 238, 막시미누스 황제의 폭정에 대항하여 당시 아프리카 총독인 고르디아누스가 아들과 함께 공동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이 로마황제임을 선포했다. 곧 이은 전투에서 둘 다 전사하는 바람에 로마에는 가보지도 못했지만.

중앙 귀빈석을 지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고대에는 3만 명의 군중들이 들어오고 나가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축구 경기장과 비교해보아도 놀랄만한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입장료가 무료이기 때문에 곳곳에 만들어 놓은 문으로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간단하다.

a 콜로세움 앞에는 튀니지아 전통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있다.

콜로세움 앞에는 튀니지아 전통공예품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있다. ⓒ 함정도

밖으로 나가서 경기장 외벽 그늘 풀밭에 앉았다. 배낭여행의 즐거움이란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잔디밭에 앉았다. 화단에는 붉은 꽃이 푸른 나무 아래 피어 있었다.

오렌지를 베어 물었다. 달콤하고 상큼한 과즙이 듬뿍 흘러 나왔다. 오후의 햇살이 나른하게 내려앉았다.

관련
기사
- '더 늙기 전' 배낭 메고 아프리카로~

덧붙이는 글 | 2005년 1월 3일 부터 19일까지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몰타를 호텔팩으로 다녀온 부부 배낭여행기 입니다. 이글은 안락답사회 홈페이지(http://hamjungdotour.netian.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5년 1월 3일 부터 19일까지 북아프리카 튀니지와 몰타를 호텔팩으로 다녀온 부부 배낭여행기 입니다. 이글은 안락답사회 홈페이지(http://hamjungdotour.netian.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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