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62회)

등록 2005.04.04 09:25수정 2005.04.0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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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무슨 일이시죠?"

채유정은 풀어 헤쳐진 머리를 손으로 묶으며 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전 6시. 해가 뜬 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은 이른 시간인 것이다.


채유정이 문을 열자 말자 두 명의 공안이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채유정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에서부터 진흙이 엉겨붙어 있는 농구화까지 재빠르게 훑어보았다. 공안은 묘하게 꼬인 시선으로 잠시동안 채유정을 노려보더니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또 한 명의 공안이 거기에 서 있었다. 그는 복도의 벽에 기대고 서 있는데, 체격은 작았으나 차돌처럼 단단한 느낌이었고, 철지난 베이지색 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둘은 성큼성큼 걸어 방안으로 들어왔다. 차돌 같은 공안의 넓은 이마가 코끝에 닿을 듯 했다.

"모닝커피 한 잔 마실 수 있겠소?"

공안은 몸집에 비해 큰 머리를 들고 핏발이 선 눈으로 채유정을 똑바로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채유정도 지지 않고 맞섰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말씀해주신다면 커피 정도는 대접할 수 있습니다. 대체 뭐예요?"


"우린 말야. 이틀째 한잠도 못 자고 왔다구. 그래서 신경이 날카롭다 말예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당신 탓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 온 겁니다."

"무슨 말씀이신 지……"

"한국에서 온 김성현 경장을 잘 아실 겁니다."

채유정인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제 출국을 당한 그가 이틀 전 공항에서 탈출을 했습니다. 우린 그를 찾기 위해 이틀째 이 고생을 하고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절 찾아오지 않았나 해서 여기 온 거라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그 자가 여기 심양시에 있다면 아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지 않습니까?"

채유정이 고개를 내저으며 손을 허리에 얹었다.

"하지만 그는 절 찾아오지 않았어요."

두 명의 공안은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한동안 눈을 흡뜨며 방안을 살피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피곤한 모양이었다. 얼굴은 푸석푸석했고 심하게 부어 있었다.

채유정은 문틀에 양팔을 짚고 사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못 믿겠다면 여길 뒤져보시죠."

한 명의 공안이 침실로 들어가려는 걸 다른 공안이 손을 붙잡으며 말렸다. 그리고는 고개를 내젓는 것이다.

"그가 멍청하지 않다면 여기 숨어 있을 리는 없겠지. 하지만 그는 꼭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오."

채유정은 아무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차돌같이 생긴 공안이 팔짱을 낀 후에 커다란 눈을 들어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말했다.

"잊지 마시오. 당신은 조선족이기 이전에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민이란 걸 말이오."

그 말과 함께 둘이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는 제법 정중하게 목례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경계 어린 눈짓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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