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기록하지 않아도 좋은 세상 꿈꾼다"

[북극곰의 카툰인터뷰 2] 다큐멘터리 사진가 신동필

등록 2005.04.05 20:41수정 2005.04.0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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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의 카툰 인터뷰. 그 두 번째 손님으로 다큐멘터리 사진가 신동필(40)씨를 만나보았다. 그는 지난 20년간 종군위안부, 비전향장기수, 원폭피해자, 학생민주화운동, 불법체류 중인 재일 한국인 노동자 등을 주제로 꾸준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 출신의 인문학도였던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과 사진을 통해 추구하는 것들을 알아보기 위해 창동미술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나보았다.


a 신동필씨 자신의 작업실 - 그동안 국내외에서 있었던 전시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신동필씨 자신의 작업실 - 그동안 국내외에서 있었던 전시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 심은식

지난 3월 29일 인터뷰를 위해 작업실을 찾았을 때 그는 오후에 있는 전시회와 세미나 준비로 분주했다. 그가 준비를 마치는 동안 나는 전시장에 걸린 대형 인화물들을 먼저 둘러보았다.

오는 10일까지 그의 창동미술스튜디오에서 열리는 전시의 주제는 ‘자유’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침묵 속에서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이곳에서, 사진 속에서는 주인공이지만 실제로 자신들의 삶에서는 늘 소외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이 자리에 조차 올 수도 없는 이들이었다.

사진은 불과 수십 분의 일초 동안의 그들을 기록했지만 그 이면에는 수십 년에 걸친 고독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는 왜 이런 어두운 모습들을 사진에 담아왔을까?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지 않겠는가"

- 사진 전공이 아니었는데, 사진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대학교 2학년 무렵이었어요. 당시에 시위가 한참이었는데 그걸 기록하는 사람도 그렇고 실어줄 매체도 드물었어요. 현직 기자의 사진도 실리지 못하고 떠돌던 때였으니까요. 그때 그런 상황을 보면서 누군가는 지금 이 현장을 기록해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론사나 다른 소속의 시선이 아닌 학생의 입장에서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지요."

a 80년대 대학에서 재학중 기록한 사진 - 시위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있다.

80년대 대학에서 재학중 기록한 사진 - 시위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있다. ⓒ 신동필


a 학군단 소속 학생과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포착된 사진.

학군단 소속 학생과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나란히 있는 모습이 포착된 사진. ⓒ 신동필

- 그럼 그 이후로도 계속 그런 현장 사진을 찍으셨나요?
"가깝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나 미선이 효순이 사고 관련 촛불시위 현장 등을 계속 다녔어요. 그런 작업은 처음 사진을 시작한 뒤로 20여년간 민주화 운동기록이라는 큰 범주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요."


- 그동안 시간이 흐르면서 시위 현장도 많이 바뀌었을 텐데요?
"많이 변했죠. 그때처럼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라다니는 격렬한 시위는 거의 보기 어려워졌어요. 당시 일본에 갔을 때 생각이 나네요. 5월1일 노동절 행사였는데 시위대가 질서정연하게 가두 행진을 하고 경찰들이 에스코트를 해주는 걸 보면서 참 충격을 받았었거든요. 평화시위를 보장하는 거였죠. 지금은 한국도 그런 시위문화가 정착되는 것 같아요."

- 하지만 시위문화의 변화 원인이 치열함이 사라진 것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세요?
"아무래도 시위의 대상 자체가 다양해졌고 그런만큼 공감대 형성이 덜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덜 절실하고 호응이 적은 것이고요. 하지만 시위 문화의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장에서 작업을 하시면 힘들거나 곤란했던 경우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시위 현장에서는 항상 위험이 따르죠. 현장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화염병에 맞아서 온몸에 불이 붙는 경우도 있었는데 정작 곤란한건 경찰 측에서는 네가 뭔데 사진기 들고 돌아다니냐고 다그치고 학생들은 학생들 대로 혹시 프락치가 아닌가 의심하는, 그런 일들이었어요."

a "말도 마세요. 앞에서는 최루탄과 전경들이 몰려오고 뒤에서는 돌과 화염병이 날라오는데... 정신 없죠 뭐."  (시위 현장의 상황에 대한 답변)

"말도 마세요. 앞에서는 최루탄과 전경들이 몰려오고 뒤에서는 돌과 화염병이 날라오는데... 정신 없죠 뭐." (시위 현장의 상황에 대한 답변) ⓒ 신동필

- 그런 현장에서의 문제도 있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분야가 경제적인 면에서 다른 사진들보다 비상업적이라는 부분도 얼마간 부담이 되실 텐데요
"당연히 비용적인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예를 들어 원폭피해자 사진을 찍으러 히로시마를 가려면 경비 일부나마 마련하기 위해 잡지사 등에 필요한 다른 사진을 찍기도 해야 하고요. 그런 과정에서 여러모로 지쳐요. 그동안 사진을 찍느라 들인 비용에 비해 거기서 발생한 수입이라는 건 정말 미미해요.(웃음) 실제로 주변의 많은 선배나 동료들이 정치적으로나 생활면에서 개인주의로 많이 기울어가요. 생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인간적 성숙에 대한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고민이 커요. 뜻을 가지고 작업은 하지만 중간에 잠시 흔들렸던 때도 있고…. 종종 부끄러움을 많이 느낍니다."

더 이상 아픈 모습을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꾼다

그가 인터뷰 중간에 잠시 업무를 보는 동안 기웃거리다보니 그의 허리춤에 삐삐 같은 게 붙어 있다. 요즘도 삐삐가 있나 싶어 물어보니 소형 카메라다. 전화나 담배는 두고 다녀도 이것만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하니 그는 천상 사진가임에 틀림없다.

a 늘 허리에 차고 다니는 카메라 - 부피가 작고 가벼워 늘 휴대하고 다닌다

늘 허리에 차고 다니는 카메라 - 부피가 작고 가벼워 늘 휴대하고 다닌다 ⓒ 심은식

- 흔히 우리가 생각하기로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이미지로는 유진 스미스나 닐 울비치 같은 종군 기자가 우선 떠오르는데요. 선생님은 그런 종류의 주제는 다뤄보고 싶지 않으셨나요?
"저도 종군을 할까 고민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과 관련된 문제만으로도 기록하고 작업할 것들이 너무 많았죠. 오늘 전시하게 될 비전향장기수, 원폭피해자, 종군 위안부 등이 그 대상들이죠. 그것들은 ‘자유’라는 큰 틀에서 말할 수 있어요. 또 전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해외 입양아의 문제도 그렇고요.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권력으로부터의 횡포, 약소국가의 서러움….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심각함은 전쟁 못지않다고 생각해요."

a 비전향 장기수 - 송환을 앞둔 그는 남한에서 자신을 돌봐주던 봉사자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놓지 못했다.

비전향 장기수 - 송환을 앞둔 그는 남한에서 자신을 돌봐주던 봉사자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놓지 못했다. ⓒ 신동필


a 종군위안부 할머니의 손 - 억압되고 고통스런 삶을 증명하듯 손가락마저 심하게 뒤틀려 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의 손 - 억압되고 고통스런 삶을 증명하듯 손가락마저 심하게 뒤틀려 있다. ⓒ 신동필


a 부모를 찾기 위해 양부모와 함께 홀트 복지원을 다시 찾은 입양아 - 신동필씨는 이 기관에서 8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부모를 찾기 위해 양부모와 함께 홀트 복지원을 다시 찾은 입양아 - 신동필씨는 이 기관에서 8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 신동필

- 그런 작업들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공감하는 분도 계시고 그렇지 못한 분도 계시지요. 실은 조금 아쉬움이 있어요. 관객들이 전시장을 무심히 휙 둘러보는데는 불과 5분 정도도 걸리지 않거든요.(웃음) 다른 분들도 그렇겠지만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자신에 대한 어떤 존경심도 바라지 않아요. 관객들이 좀 더 사진 속의 대상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이죠. 제 생각입니다만 일반적으로 국내 관객들은 그런 주제들보다는 파인 아트(Fine Art)적인 사진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 이런 다큐멘터리 사진작업들의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 역시 작업에 대한 책임감과 어려움들 때문에 흔들리던 순간들이 있어요. 그래도 이런 기록들 덕분에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그런 면에서 우선 개인적인 보람을 느낍니다. 예를 들면, 한국인 원폭피폭자들의 경우 작업과 함께 일본 변호사들도 힘을 합쳐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소장을 제출했는데 현재 의미 있는 성과가 진행 중이라고 하더군요. 이런 사진들을 통해 사람들이 타인의 부당함과 억압을 보고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 작가정보 -
신 동 필

▲ 석탄 광부를 주제로 작업할 당시의 작가 모습.
1965 강원도 원주 출생

1990 한국 외국어 대학교 철학과 졸업

2000 상명 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사진학과 졸업

현재 잡지등을 통해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photoqs.com
- 사진에 담아내는 시간은 찰나의 순간인데, 그 전후의 과정에서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적지 않을 텐데요.
"작업기간은 매번 다 달라요. 미전향장기수의 경우 송환까지 시간이 촉박해서 석 달간 집에도 거의 가지 못하고 매달려 있던 적도 있고, 어떤 경우는 단지 며칠 정도 머무르면서 촬영하는 경우도 있어요. 시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 번은 그동안 찍은 사진에 담긴 시간이 얼마나 될까 계산해본 적이 있어요. 한 컷이 보통 수십에서 수백분의 일초인데 10만 컷 정도 찍으면 대략 10여분이 되더군요. 20년간 사진을 찍었는데 실제로 사진에 담긴 시간은 몇 십분 밖에 안 되더라고요.(웃음)"

- 앞으로의 계획이나 희망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요?
"우선 그동안 작업하고 발표하지 않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싶어요. 중간 중간에 했던 작업들은 발표도 하고 책으로 묶기도 했는데 사진에서 제일 처음 시작한 주제는 아직 정리가 안 된 상태니까요. 그리고 제 사진의 변화도 모색 중이에요. 뭐라고 할까요. 쉽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충격보다는 감동? 그런 것들을 줄 수 있는 작업들을 하고 싶어요. 거기서 내가 찍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을 찾고 싶고요. 무엇보다 더 이상 그분들의 아픈 모습을 기록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꿉니다."

a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들의 불행한 삶도 우리의 삶도 고립된 섬처럼 고독할 뿐이다.(사진은 신동필의 '교토 40번지')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들의 불행한 삶도 우리의 삶도 고립된 섬처럼 고독할 뿐이다.(사진은 신동필의 '교토 40번지') ⓒ 심은식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그의 사진들을 돌아보면서 불현듯 최근의 독도 사태를 떠올렸다. 사진을 통해 알기 전까지 그들의 소외된 삶, 아무도 돌보지 않는 슬픔들이 마치 외딴 섬처럼 홀로, 그렇게 고립되어 있었다고 말이다. 나는 그러한 고립이 그들뿐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마음도 메마르고 황폐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혹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가 말한 것처럼 우선 그들의 삶을 좀 더 오래 바라보고 관심을 갖는 일.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씩 변화해갈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북극곰의 카툰 인터뷰란? 

각 분야의 젊은 예술인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인터뷰 대상은 아직 대중적인 인지도는 적어도 가능성이 엿보이는 주목할만한 신인과 각 분야의 중견들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기존의 딱딱한 텍스트로 이루어진 인터뷰를 벗어나 카툰이 가미된 형식을 시도합니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북극곰의 카툰 인터뷰란? 

각 분야의 젊은 예술인들을 만나 그들의 삶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인터뷰 대상은 아직 대중적인 인지도는 적어도 가능성이 엿보이는 주목할만한 신인과 각 분야의 중견들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기존의 딱딱한 텍스트로 이루어진 인터뷰를 벗어나 카툰이 가미된 형식을 시도합니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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