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선생 '얼' 깃든 화석정, 일본 소나무 '톱질'

파주시, 일본 망언 항의차원 리키다 소나무 베어내고 밤나무 대체

등록 2005.04.05 15:46수정 2005.04.0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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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시장 유화선)가 최근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망언에 대해 항의하는 차원에서 이율곡 선생의 얼이 깃들어 있는 '화석정(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주변 6천여평에 일본 '리키다 소나무'를 베어내고 율곡 선생의 탄생설화와 관계 있는 '밤나무' 1천 그루를 대체해 심었다.

유화선 파주시장과 이학순 파주시의회 의장, 지현미 율곡1리 이장 등은 식목일인 5일, 화석정에서 율곡선생의 탄생설화에 등장하는 '나도밤나무(밤나무와는 품종이 다르고 잎이 닮음)' 심기 행사를 가졌다.

a 유화선 시장과 이학순 시의회 의장, 율곡리 이장 등이 나도밤나무를 심고 있다.

유화선 시장과 이학순 시의회 의장, 율곡리 이장 등이 나도밤나무를 심고 있다. ⓒ 김준회

율곡 선생이 성장했고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냈던 화석정이 있는 파평면의 율곡리는 밤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곳으로 한국전쟁 이후 일본 수종인 '리키다 소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주로 식목돼 있었지만 최근 일본의 독도망언 등으로 인한 일제 잔재청산 차원에서 파주시가 복원사업을 추진해 왔다.

a 화석정 전경 사진.

화석정 전경 사진. ⓒ 김준회

복원사업은 지명인 율곡리와 선생의 탄생설화를 토대로 4일 화석정 주변 6천여평 부지에 토종 밤나무 999그루를 심었고 이날 '나도밤나무' 1그루를 심었다. 또 이를 위해 지난 3월부터 군사협의와 문화재현상변경허가를 받고 일본 수종인 리키다 소나무 등의 벌목을 완료했다.

유화선 시장은 "일본의 침략야욕에 대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 선생의 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화석정 주변을 일본 수종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복원사업 추진계획을 밝혔다.

한편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율곡은 명종 19년(1564년) 호조 좌랑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 홍문관 교리로 임명된 후 당시 국제정세를 파악, 국방의 안전을 위해 10만 양병설을 강력히 주장했다.

한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파주시 율곡리에서 '율곡’이라는 호를 따왔던 선생은 1584년 1월16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평생을 청렴하게 산 그는 저승 갈 때 입을 수의마저 없었고, 수중에 값나가는 물건이라곤 부싯돌 하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74년 경기도 유형문화제 제61호로 지정된 화석정은 세종 25년(1443년) 건립 후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6년 현재 모습으로 복원, 오늘에 이르고 있다.

a 화석정에서 내려다 본 임진강의모습.

화석정에서 내려다 본 임진강의모습. ⓒ 김준회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이곳 화석정의 건물 정면 중앙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 뒷면에는 율곡 선생이 8세 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팔도부시(八歲賦時)'가 걸려있다.


한편 율곡선생 탄생과정에 밤나무가 얽혀 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가 인천에서 수운판관으로 재직할 때 사임당을 비롯한 식솔들이 사는 봉평으로 오던 중 날이 저물어 평창군 대화면 한 주막에서 여장을 풀게 되었다.

"이번 길에 댁에서는 귀한 인물을 얻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환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원수는 주모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주모에게 혹시 그 화를 막을 방도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주모가 이르기를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으라는 것이었다.

이원수는 장차 태어날 아들 생각에 주모가 시키는 대로하였다. 몇 해가 흐른 뒤 어느 날, 험상궂은 중이 시주를 청하며 어린 율곡을 보자고 하였다. 그러나 이원수는 주모의 예언을 떠올리며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중은 밤나무 1천 그루를 시주하면 아들을 데려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원수는 '옳다'하며 쾌히 승낙하고 뒤뜰에 심은 밤나무를 모두 시주하였다. 그러나 밤나무 한 그루가 모자랐다. 한 그루가 자라지 못하고 썩어 버렸던 것이다.

이원수가 사색이 돼 떨고 있는데 숲 속에서 나무 한 그루가 '나도밤나무!'하며 크게 소리쳤다. 그 외침을 들은 중은 호랑이로 변해 멀리 도망치고 말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율곡 선생은 그 화를 면하고 잘 자라서 유명한 대학자가 되었는데 고향에는 지금도 밤나무와 비슷한 '나도밤나무'란 나무가 있는데 그 때에 그 나무가 이율곡 선생을 살렸기 때문에 일명을 활인수(活人樹)라고 하고 동리 명칭도 율곡리로 하였으며 선생의 호도 율곡(栗谷)이라 호칭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출처=파주시 지명유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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