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직장 다니면서 벼농사를 짓는다고?

[리뷰] <틈만 나면 텃밭으로 달려가는 도시농부들 이야기>

등록 2005.04.08 10:24수정 2005.04.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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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직장과 텃밭을 오가는 이들은 엄연한 도시농부다.

직장과 텃밭을 오가는 이들은 엄연한 도시농부다. ⓒ 이혜영

못 떠나는 신세. 속이 탄다, 속이 타. 나무도 타고, 천년 고찰도 타고, 가난한 집들도 싸그리 타버렸다. 그렇잖아도 숲을 태운 검은 연기로 뒤덮인 하늘이 심란한데, 이제 또 올 것이 왔다.

황사. 황사로 누리끼리해진 하늘이 옛날에 뒷집에 살던 황달 걸린 근식이 아저씨 낯빛 같다. 무서워서 한숨도 못 쉬겠다. 한숨 뒤에 숨을 가득 마셔야 하는데 공기가 이 모양이니….


봄마다 당해온 일이라지만 산을 삼켜버린 시뻘건 불길을, 누렇게 내려앉은 하늘을, 이렇게 속절없이 바라보기만 하는 마음은 참 무력하다. 원망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마음은 결국 공범자이기도 한 자기 가슴을 치고 마는 것이다.

아이들이 뛰어놀 안전한 땅은 고사하고 길이란 길은 자동차에게 헌납한 콘크리트의 도시, 정수기로 거르지 않고는 물 한 모금도 안심이 안 되는 이 목 막히는 도시를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난다. 그렇다고 갑자기 어디 산골짜기로 들어갈 수도 없다. 먹고 살 일을 생각하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잖은가. 어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꼬…. 언제나 이것이 고민이다.

좌충우돌 텃밭일기

이 사람, 좀 당황스럽다. 우선 보기에 목발을 짚는 불편한 몸이 그렇고, 약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커다란 웃음소리가 그렇고, 그 몸으로 농사를 짓는다니 또 그렇고, 생명과 농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무시무시해서(?) 또 그렇다.

이 사람 안철환씨는 귀농본부 안산농장인 '바람들이 농장'의 교장이면서 그 자신이 도시농부이기도 하다. 몸이 불편하니 그이의 말마따나 기어다니면서 농사를 짓는다. 도시에서야 기어다니면 동전이나 던져줘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흙에서는 기어다니거나 굴러다니거나 제 맘이라나.


a <틈만 나면 텃밭으로 달려가는 도시농부들 이야기> 안철환 지음 / 소나무 / 9천원

<틈만 나면 텃밭으로 달려가는 도시농부들 이야기> 안철환 지음 / 소나무 / 9천원 ⓒ 소나무

안철환씨가 쓴 <틈만 나면 텃밭으로 달려가는 도시농부들 이야기(이하 '도시농부들 이야기')>(소나무). 고심 끝에 내놓은, 이 지나치게 긴 제목의 책은 '바람들이 농장'의 도시농사꾼들 이야기다.

바람들이 농장은 주말농장이다. 다섯 평씩, 열 평씩 텃밭을 분양받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그래도 흙이라도 좀 밟아 보며 텃밭을 일군다. 그런데 이 회원들이 주말에만 오는 게 아니라 어째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린다.


아침 일찍 출근 전에 들러 밭을 돌보는 아저씨, 한낮에 아기를 들쳐 업고 밭을 매는 아줌마, 저녁이면 그날 먹을 저녁거리를 솎으러 오는 가족…. 조그만 텃밭에는 가지, 고추, 상추, 옥수수, 오이, 들깨 잎이 싱그러운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게 다가 아니다. 함께 두레농사를 짓는 콩밭도 보이고, 더 놀라운 것은 공동으로 논농사까지 지었다는 것.

지난해, 바람들이 농장 회원들은 함께 기른 콩으로 가을에 두부 만들어 먹는 잔치도 열었다. 모두들 초보 농부들이지만 안철환씨의 지도로 벼농사까지 지었으니 당당한 농부라 할 만하지 않은가. 농사짓는 재미에 폭 빠진 도시농부들은 낮에는 각자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틈만 나면 밭으로 달려가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투잡스족인 셈이다.

봄에 뿌린 씨앗에서 오물오물 터져 나오는 새싹을 보며 어쩔 줄 모르고, 끝없이 기어 나오는 벌레들과 처절한 전쟁을 치르고, 음식물 쓰레기로 함께 퇴비를 만들고, 처음 해보는 논농사에 논에 물이 안 차서 발을 동동 구르고, 뙤약볕 아래서 무섭게 자라는 풀 매기의 공포에 떨고, 함께 끓여 먹은 뜨끈한 가마솥 수제비 맛에 신이 나고, 가슴 뭉클한 수확의 감동을 함께 나눈, 농장 회원들의 농사 이야기를 편집하다가 실은 나 또한 이렇게 마음먹었다.

'그래, 올해는 나도 다시 텃밭을 일궈보는 거야.'

도시에서 밥상 자급하기

나도 나름대로는 주말농장에서 텃밭을 일궈 본 경력이 3년이다. 그런데 이것이 봄에 씨를 뿌리고 욕심껏 모종도 갖다 심을 때는 의욕에 불타다가도 한두 번 때를 놓치고 나면 슬슬 꽤가 생기는 것이 문제다.

a 가마솥에 수제비를 날리며 도시에서 농사문화를 나눈다.

가마솥에 수제비를 날리며 도시에서 농사문화를 나눈다. ⓒ 이혜영

여름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잡초가 뒤덮여 다시 밭에 갈 엄두를 못내고 자포자기한 적도 있었다. 뭐 주말농장의 다른 밭들을 보건대 대체로 다른 집의 사정도 나와 다르지 않지 싶다.

1부의 텃밭일기로 한껏 흥을 올린 뒤에 안철환씨는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2부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텃밭 가꾸기를 단순한 취미로 여기는 수준을 넘어서서 가족의 밥상을 자급하겠다는 목표로 접근하자는 것이다.

해마다 목표를 정해 봄여름의 푸성귀를 마련하는 것에서, 김장 자급으로, 장과 양념 자급으로 폭을 넓혀가는 것이 적당하다. 여력이 된다면 쌀 자급도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텃밭 가꾸기는 도시에 농사문화를 자급하는 의미도 갖는다. 각자 텃밭을 가꾸는 가족들이 모여 도시의 소비문화에서 벗어나 서로 농사를 돕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들꽃 공부를 하는 체험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바람들이 농장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황토염색, 두부만들기, 별보기, 텃밭영화제, 목공 배우기를 해나갈 작정이다. 선생님을 따로 모셔오는 것이 아니라 농장 회원들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식이 될 것이다.

텃밭 가꾸기의 길잡이

<도시농부들 이야기>는 도시인들이 흙과 만나 나누는 즐거운 대화일 뿐만 아니라 텃밭농사의 길잡이이기도 하다. 계절별로 봄농사, 여름농사, 가을농사, 겨우살이로 나누어 각 계절마다 때에 맞게 해야 할 농사일도 그림과 함께 세심하게 설명해 놓아서 실질적인 농사지침서로서도 몫을 톡톡히 한다.

도시살이가 답답하다면 도시에서 신나게 사는 법을 궁리할 일이다. 내년에, 내년에… 이렇게 삶을 유보하지 말고, 지금 당장! 장기계획은 그만 세우고 몸을 앞세우며 살아보자. 봄이 왔다. 산천에 연두빛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자, 호미를 들고 텃밭으로!

도시농부들 이야기 - 틈만 나면 텃밭으로 달려가는

안철환 지음,
소나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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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살이 14년차, 제주도 농경사회 공부하며 기록하는 작가. '세대를 잇는 기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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