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한 학년을 마무리하는 아이들 학교의 종업식 광경이 이따금 떠오를 때가 있다.
종업식의 이런저런 순서 중 학부모들의 관심은 무엇보다 시상식에 쏠렸다. 자기 아이가 상을 받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뉘 집 아이가 무슨 상을 받나 하고 모두들 눈과 귀를 단상으로 집중했다.
호명이 시작되자 한 여학생이 시상대에 올랐다. 이어 학년 별로 수상자 명단이 발표되면서 학생들이 줄을 이어 단상에 오르는데, 대부분 여학생들이고 남학생은 어쩌다 한둘뿐이었다.
우수 여학생 편중 현상은 저학년이나 고학년 구분 없이 공통적인 데다, 성적 뿐 아니라 각종 특기생들도 여학생 숫자가 남학생을 앞질렀다. 그 날 종업식은 여학생들을 위한 잔치에 남학생들이 들러리를 서는 것으로 끝이 났다.
아들만 둘을 둔 필자의 처지도 그렇지만 이쯤 되면 남자 아이가 있는 집은 절로 풀이 죽을 일이다. 같은 나이라 해도 어렸을 때는 여자들이 남자보다 정신적, 정서적으로 성숙도가 앞서지만, 10대 후반이 되면 엇비슷해지면서 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능력에 차이를 보이지 않던 것도 이제는 옛말인 듯하다.
평소 학교생활도 '똑똑한 여자아이들'에게 주눅이 들어 남자아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더니 학년말이 되자 그 결과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진학이나 취업, 국가고시 등에서 여학생 성적 우수자들이 다수 배출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는 현상은 호주에서도 상당히 일반화됐다.
호주 교육부는 사회 진출 이전에 이미 벌어지기 시작하는 여학생 우위의 남녀간 학력차를 좁히기 위한 시도로 남학생들을 위한 특별 장려비를 책정하는 등 '풀죽은 남학생 기 살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이를 위해 전국적으로 350개의 시범학교를 선정, 2년간 약 700만 달러의 특별 교육비를 투입하여 '남학생 구제'를 위한 3단계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교육부의 이같은 '특단'에 대한 각급학교 교사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환영 일색이다. 시범교 선정과정부터 학교 간 경쟁이 심했다는 후문이 들릴 정도로 일선 학교마다 남학생들의 학교생활 부적응과 이로 인한 학력저하 현상이 심각한 상태이며,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반증했다.
1. 2단계는 두각을 드러내는 여학생들에 비해 남학생들의 뒤처진 학업능력을 향상시키고, 상대적으로 위축된 심리와 자신감 결여를 메워주는 것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3단계 전략. 목표는 바람직한 남성 이미지 심어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래의 자기 모습 그려보기, 닮고 싶은 인물이나 영웅 묘사하기 등을 통해 남학생들에게 꿈과 비전을 심어주는 교육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의 경우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과 인생설계를 비교적 야무지게 다지는 데 비해 같은 또래의 남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막연하게 내다보거나 그때그때 충동적으로 휩쓸리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초등학교 때부터 심화되기 시작한 학력차로 대입지원 학생들의 남녀간 점수 차가 20%까지 벌어지자 남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남녀 학생 분리수업을 실시하기도 했다. 분리 수업 결과, 남학생의 읽고 쓰기 능력이 여학생 수준에 가깝게 향상됐으며 수업태도와 동기부여, 학습의욕 등도 눈에 띄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범수업에 여교사 대신 남자 교사를 배치한 것도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나 초등학교의 남자교사 부족 현상이 남아들에게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비교적 순응적인 여학생들 위주로 여교사가 수업을 끌어나가는 사이, 일부 남학생들이 방치되면서 학력 저하 현상이 고질화됐다는 것이 원인 분석이다.
학교마다 남자 교사의 절대 부족으로 초등학교 6년 내내 여자 선생님과 생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남자 아이들의 정서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학생 기살리기'를 위한 교육 프로젝트의 특명은 '등대지기'. '잘 나가는' 여학생들로 인해 기죽고 소외되고, 정서적 고립감을 느끼는 남학생들에게 망망대해의 등대처럼 편안한 길잡이가 되어 주겠다는 학교와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의미를 담고 있다.
공부에 흥미를 잃거나 학습태도 불량, 학칙 위반 등으로 정학을 당하거나 혹은 졸업 전에 학교를 그만두는 등 방황하는 남학생들을 보면서 한때는 차별 당하는 여자들을 향해 용기와 격려를 보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 배경과 과정이야 어찌됐건 고개 숙인 남학생들의 기를 북돋우기 위해 마련한 프로젝트 '등대지기'. 실효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한국교육신문> 4월 4일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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