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은둔자의 삶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등록 2005.04.09 14:05수정 2005.04.0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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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장래를 촉망받던 이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전성기인 32세 때 연주회는 ‘고통일 뿐인 속임수’라며 이후의 모든 연주회를 거부하고 온전한 음악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자신만의 스튜디오 속으로 숨어버린다.

a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동문선, 221쪽, 7000원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동문선, 221쪽, 7000원 ⓒ 동문선

그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기벽과 기행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그가 남긴 뛰어난 음반 가운데 하나인 골드베르크 연주곡을 녹음하기 위해 1955년 뉴욕의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는 6월이었음에도 두꺼운 코트, 머플러, 베레모에 장갑까지 끼고 뉴욕의 물은 마실 수 없다며 사온 생수 두 병과 5개의 약병 그리고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사용하던 아주 작은 어린이용 피아노 의자를 들고 나타났다. 이밖에도 연주를 할 때 끊임없이 흥얼거리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녹음 기사들은 질색을 했고 결국 그는 방독면을 쓰고 연주를 하기도 했으며 세균 감염을 극도로 두려워해 다른 사람과 악수하는 것조차 꺼려했다고 전해진다.

미셸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는 제목처럼 글렌 굴드라는(Glenn Gould, 1932-1982) 이 괴팍한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에 대한 전기다.

저자 자신이 1988년부터 1991년까지 프랑스 문화성의 음악과 무용 분서를 지휘, 감독했던 만큼 일반적인 전기 작가들과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이 책은 일반적인 전기의 순차적인 연대기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형태를 따라 전후 두개의 아리아와 서른 개의 변주로 구성된 각각의 장이 글렌 굴드라는 연주자에 대한 심도 있는 감상처럼 이어진다.

덕분에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보다 그가 어떤 식으로 연주를 해왔는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어려서 읽은 대부분의 전기가 어떤 인물의 위대함만을 우리에게 강요했던 반면 이 책은 글렌 굴드라는 인물에 대한 이해와 애정, 예술에 대한 경건함을 일깨워준다.

생전에 굴드는 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예술의 정당화라는 것이 인간의 얄팍하고, 외부적으로 드러나고, 대중에게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을 발화하는 내적 연소라는 것을 믿는다. 예술의 목적은 순간적으로 발동한 아드레날린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 동안 점차적으로 굳히는 경이와 평온의 경지를 구조화시키는 것이다.

확실히 그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하나의 치기로 드러내는 행동이 아니라 온전한 굴드 자신이었다는 사실은, 그 모든 것들이 오로지 온전한 음악을 위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련 마음 한 켠에 아픈 감동을 준다.


봄이고 비가 온다. 그리스에 가서 그리스 비극을 읽는 사치는 무리지만 비 오는 휴일 오후에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이 전기를 읽는 맛은 매우 각별하다.
봄, 비, 바하, 글렌 굴드 이상적인 조합이다.

<< 저자 및 역자 정보 >>

지은이 -미셸 슈나이더

1988년부터 1991년까지 프랑스 문화성의 음악 · 무용 분서를 지휘, 감독. 1980년 이후로 여러 편의 소설, 수필을 발표함.『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는 1988년 갈리마르사에서 발간되어 이듬해 Femina Vacaresco상을 받은,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에 대한 전기물이다.

역자 - 이창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응용언어학 과정 이수. 역서로『앙드레 말로』『1930년대 미술』『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가 있다.

(출처 YES24)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 지음, 이창실 옮김,
동문선,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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