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숭례문 밖 타락동 민가.
이미 성문이 닫힌 지는 한 식경이 훨씬 넘었고, 머잖아 야간통행금지 시간인 2경(오후10시)을 알리는 종이 울릴 것 같은 다 늦은 밤이었다. 싸리나무로 울을 성하게 두르고 길 안쪽으로 우묵하게 자리 잡은 민가엔 아직 호롱이 밝았다.
호롱이 힘겹게 어둠을 몰아내는 가운데 눈들이 충혈 된 사내들 여섯이 방안에 가득 차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혹자는 연신 곰방대를 빨아대고 있어 흡사 너구리굴을 방불케 했다.
“다들 까보슈!”
큼지막한 손으로 투전목을 조이던 한 사내가 좌중을 향해 말했다.
“젠장헐, 다섯 끗….”
“네… 끗”
“이히히, 갑오!”
너도 나도 힘없이 투전목을 내려놓는데 갑오를 지은 큰 손의 판꾼 하나만 만면에 희색을 띄고 판돈을 쓸어가려 손을 뻗었다.
“잠깐만, 나는 이땡인데 너무 성급한 것 아뇨?”
주름이 깊게 팬 한 사내가 뒤늦게 투전목을 던지며 판돈 수거를 제지했다.
“이런, 니미럴 땡이면 진즉 내놓았어야할 것 아녀!”
큰 손의 사내가 거칠게 방바닥을 치며 역정을 냈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땡을 내놓은 주름 깊은 사내가 바닷길을 오가는 선원이며, 판꾼도 아니면서 그의 뒤편에서 자리를 뜨지 않는 또 다른 젊은이를 통해 그가 도사공 직임에 있는 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닷바람에 그을린 40대의 주름 사내가 완력으로는 큰 손 사내에 댈 게 아니었으나 뱃사람 강단이야 소문이 뜨르르한 터여서 뱃놈 뱃놈 무시를 하면서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미안하게 됐네. 우리 이제 지루한 ‘돌려대기’ 말고 ‘동동이’로 바꿔보는 게 어떻겠나?”
주름의 사내는 여유 있게 응대하며 다른 방식의 투전을 제안했다.
주름의 사내는 송여각네 도사공 이만근(李萬根)이었다. 강바람 바닷바람에 시달리는 고된 뱃길 행로를 끝내고 나면 습관처럼 노름방을 찾았다. 국법으로도 금하고 있고 이 나이 되도록 변변한 재물 하나 마련하지 못하게 한 안 좋은 습관이었지만 고된 뱃일의 고통을 말끔히 씻어내게 하는 유일한 낙이었다. 손가락 너비에 겨우 다섯 치 길이의 이 종잇장을 조일 때의 느낌이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었다.
방 안에서 한참 이런 광경이 벌어지고 있을 때 울바자 사이로 다가와 몸을 낮게 숙이며 민가를 에워싸는 예닐곱의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모두가 쇠털을 댄 미투리를 신었는지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차림이 죄다 벙거지에 검은 쾌자를 걸친 자들인데 맨 앞에서 울 너머를 기웃거리는 자만 평복에 맨머리였다. 벙거지 하나가 평복의 사내를 가리키며 옆 사람에게 말했다.
“장바닥 왈짜 주제에 제가 무슨 숙지(熟知:도둑을 잡는데 활용되는 도둑)라도 되는 줄 안 모양입니다요 부장나리.”
“그런 말 말거라. 저래 뵈도 배고개 태봉이하면 아는 놈은 안다. 저 놈이 힘이 없어 저러는 줄 아느냐.”
“결국 그게 그거 아닙니까요. 제 아무리 한성에서 알아주는 왈짜라 해도 송 여각네 도사공이면 녹녹한 상대는 아닙죠. 뱃놈들 근성도 근성이지만 한성에선 송 주인 입김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던데….”
“그건 태봉이도 마찬가지지. 세력이야 송 여각에 못 미친다지만 만득이 뒤를 봐주는 이주하란 이도 대원위 대감 후광을 입고 있다는 설이 있어. 만득이 제 놈도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 저러는 게지. 태봉이놈 떨거지들도 예사는 아니야. 머릿수로 보나 근성으로 보나. 언 놈인지 태봉일 잘못 건드린 게야”
“천하의 태봉이면 뭘 합니까요. 얼마 전 마포 나루에서 웬 갓쟁이에게 요절이 났다면서요? 기실 도사공이나 다른 선원들은 거기 낄 새도 없었다는데요 뭘.”
“그러니 저 놈이 약이 바짝 올라 나를 찾은 것 아니겠느냐.”
“참말 저 도사공 뒤에 뭔가 굵직한 게 있긴 있는 겁니까요?”
“별반 친하다고까지는 못해도 오래 지켜봐서 잘 아는데 태봉이가 빈말할 놈은 아니야. 사주전이든 잠상이든 큰 게 연루된 자들이라 하니 믿어볼 밖에.”
“그래도 이거 괜한 수고나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
“그만 혀 좀 재우거라. 가뜩이나 만리재와 멀어져 좌포청 관할까지 들어오는 통에 공연한 잡음이나 일지 않을까 조바심이 이는 통에, 너까지 입 초시를 떨 참이냐?”
부장이란 자의 말에 포졸이 입을 다물고는 가만히 평복차림의 태봉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태봉이란 이는 지난 날 마포나루까지 모화를 쫓아왔다가 권기범 일행에게 봉변을 당한 배고개 깍쟁이들의 우두머리였다. 주인 이주하는 그날의 일에 책임을 물지 않았으나 장바닥 깍쟁이로 평생을 살았고 떨거지까지 거느린 우두머리로서의 자존심이 허락질 않았다.
이미 사라져버린 그 선달 나부랭이는 찾을 수 없더라도 삿대를 꼬나 쥐고 덤벼들려던 그 뱃놈들이라도 요절을 내야 했다. 제 아무리 뱃놈들이 대가 세고 결집력이 있다 하지만 장바닥 왈패로 어찌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배가 송 여각에 딸린 배인지라 얘기가 달랐다. 송인석이라는 거상의 영향력을 모르는 사람은 한성에 없었다. 자칫 자신의 행동이 뒷배를 봐주고 있는 이주하에게 화를 끼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사적으로 은밀히 보복해야 했다.
더구나 마포 송 여각의 조운선이 종종 은밀히 취급되는 짐들을 싣고 오간다는 소문은 장사치들 사이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조운업에 손을 댄 자 치고 중간에 농간질 안 한 자가 없고 불법적인 품목을 다루어 재미를 보지 않는 자가 없으니 딱히 송 여각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관이 개입하자면 얼마든지 문제의 소지는 있었다.
자신이 갓 쓴 선달에게 당하던 그날의 분위기도 예사로운 출항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 선적한 짐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범상치 않은 선달과 그 동행인들이 그 배에 오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태봉이는 도사공이 운선(運船)을 다녀온 이래 이틀째 숭례문 밖 노름방을 차지하고 앉아 투전에 매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우포도청의 조필두 부장을 찾은 것이었다. 조 부장은 왈짜패 두목 태봉이 서로 구린 구석을 감춰주며 알고 지내던 이로, 태봉이의 보복을 대신 해 줌은 물론이요 혹 사주전 밀주나 인삼 잠상(潛商)과도 끈이 닿는 듯한 무리를 잡을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요사이 전국 각지에서 극성을 부리고 있는 사주전 밀주단이나 개성과 의주, 그리고 황해도 일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홍삼 밀무역상을 잡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종사관 승급은 따 놓은 당상일 것이다.
지금 잡으려 하는 이들이 송 여각에 소속된 이들이라는 것이 맘에 걸리기는 하였으나 어차피 국법으로 금한 도박에 매달리는 놀음쟁이들을 잡아가는 것이니 일단 잡아간 후 별 게 아닐 경우 놓아주면 그만이었다. 조필두로서는 그리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저 안에 화초쇠 만 뿌리 놈이 있는 게 확실하냐?”
“예?”
조필두 부장이 태봉이에게 살짝 다가와 묻자 태봉이가 반문했다.
“저 안에 도사공 이만근(李萬根)이 놈이 있는 것이 확실하냔 말이다!”
“아, 예… 두런거리는 소리가 그놈이 있음이 확실합니다.”
조필두 부장의 실수로 포졸들이 쓰는 은어인 변언으로 묻고는 정작 알아듣지 못하는 태봉이에게만 핀잔을 먹였다.
“우뚝 솟았댄다.”
다시 조필두 부장이 나지막하게 포졸들에게 알리며 소매에서 쇠도리깨를 슬며시 꺼내 들었다. 은어로 잡고자 하는 범인이 안에 있음을 전해들은 포졸들도 육모방망이며 쇠도리깨를 다잡았다. 어떤 이는 허리춤의 오라를 점검했다.
“덮쳐라!”
부장 조필두가 이때까지 길게 늘어뜨려 거의 땅에 닿게 했던 암등(暗燈)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삽짝으로 들어선 포졸들이 잽싸게 마당을 가로 질러 방문을 열어 젖혔다. 뒷방문 쪽으로도 포졸들이 달라붙었다.
“꼼짝들 말어라!”
연이어 조필두가 들어오며 소리쳤다. 큰 손을 가진 판꾼이 방문을 막아선 포졸 하나를 벽으로 밀쳐내고는 뛰쳐나갔다.
‘퍽’
그러나 조필두가 슬쩍 비끼며 내지른 도리깨에 뒷덜미를 맞았다. 맥없이 마당에 고꾸라졌다.
“어서요!”
잠시의 소란이 이는 짬에 젊은 선원이 등판으로 뒷 방문을 밀치며 도사공 이만근을 잡아끌었다.
‘꾸당탕’
문짝이 떨어져 나가며 젊은 선원은 뒷마당에 뒹굴었고 도사공이 포졸 사이를 뚫고 삽짝으로 뛰었다. 포졸 둘이 젊은 선원을 덮치고 포졸 하나가 도사공 이만근을 잡았으나 이만근의 팔꿈치에 턱을 맞고는 뒤로 나뒹굴었다. 이만근이 온 몸으로 울바자를 밀고는 넘어서려 허우적거리는데 앞쪽에서 날아온 무엇에 가격당해 눈에 불똥이 일었다. 애써 정신을 가누려는데 또 허연 무엇이 날아왔다. 무릎이었다. 고개가 확 젖혀지며 의식이 아련해졌다.
“네 이놈, 물정 모르는 뱃놈이 감히 배고개 태봉이를 몰라본 죄다 이놈아!”
어렴풋이 욕설이 들리고 울바자에 걸린 처진 머리 뒤로 발길질이 떨어지는데 통증은 흐려진 정신 속에서 전달 점을 찾지 못한 채 외돌기만 했다. 얼마 전 평안도 서방님을 모시고 출행하던 마포 나루에서 듣던 왈짜패 우두머리 목소리 같다는 기억을 끝으로 이만근은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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