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식 과장법

확대과장과 사실왜곡의 전형을 보여준 <조선일보> 데스크칼럼

등록 2005.04.12 14:58수정 2005.04.1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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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1일, 조선일보는 데스크 칼럼에서 조선중앙방송의 내용을 문제삼으며 북한 정권을 맹비난하였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중요시되고 있는 가운데, 조선일보는 전혀 남의 일이라는 듯 또다시 북한의 정권을 힐난하는데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역지사지’의 자세를 아는가

“사소한 우발적 요인에 의해 조(朝)·미(美) 쌍방 간에 전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위험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①4월 4일 조선중앙방송) “부시가 취임식에서 떠벌린 자유란 온 세계를 전쟁의 불바다로 만들고 지배하는 힘의 자유다.”(②2월 9일 평양방송)

①은 주한미군의 전략 기동군(機動軍)화를 비난한 것이다. 기동군화란 한 곳에 머물기만 하는 군대가 아니라 한반도를 들락날락하면서 분쟁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이다. ②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밝힌 미국식 민주주의의 전파를 비판하다 나온 것이다.
- 2005. 04. 11. [조선데스크] 북한식 과장법


미군의 기동군화는 조선일보의 말대로 한반도를 들락날락하며 동아시아 전체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움직임이다. 그 전략 안에서 과연 북은 제외되어 있을까.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자국을 ‘악의 축’으로 선언한 초강대국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최첨단화시키고 유동화 시킨다는데 위협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또한 얼마 전 ‘민주주의 증진법’으로 한층 구체화된 부시 2기 정부의 미국식 민주주의 역시, 탈북자 양산과 북의 체제붕괴를 조장하는 ‘북한 인권법’과, 말도 안되는 핑계로 침략을 감행한 이라크에서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려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서, 자국의 정치·경제적 제도를 전세계에 심어놓으려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어떻게 보면 오만하기까지 한 모습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지금의 시점에서, 전쟁이라는 최악의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전세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설파하겠다는 것은 미국의 패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줄 따름이다.


단순한 사실관계마저도 왜곡하는가

이런 북한식 표현법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오래됐다. 표현도 점점 과격해지고 있다. 1990년대에는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해서 한동안 남북관계를 얼어붙게 만든 기억도 생생하다.
- 2005. 04. 11. [조선데스크] 북한식 과장법


언젠가는 김정일 위원장이 골프 한 게임에서 홀인원을 다섯 번이나 했다고 한 적도 있다. 홀인원은 공을 한 번 쳐 홀에 넣는 것이다. 파 3에서나 가능하다. 파 3은 18홀 중 4홀이다. 이는 골프 황제라는 타이거 우즈도 꿈꾸지 못하는 스코어다.
- 2005. 04. 11. [조선데스크] 북한식 과장법


메이저 신문사의 정치부 차장대우가 큰따옴표는 직접인용에 사용한다는 기본적인 규칙을 몰랐을까. 사설에 큰따옴표로 인용된 부분은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실무접촉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가 “서울이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라고 말한 것을 인용한 것이지만, 보는바와 같이 직접인용조차 마음대로 바꾸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비공개를 전제로 진행된 회담내용을, 그것도 일부분만을 의도적으로 공개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악의적 의도가 엿보인다. 더군다나, 당시 격렬한 토론이 진행되던 가운데 전쟁 발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도 불바다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전쟁은 배제하자’라는 차원에서 나온 발언을 앞뒤 맥락은 싹둑 잘라버린 채로 ‘불바다’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더 선정적인 왜곡편집이 아닌가.

a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의 발언을 왜곡보도한 조선일보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북측 박영수 대표의 발언을 왜곡보도한 조선일보 ⓒ MBC방송화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골프 실력을 비꼬는 부분은 더욱 어이가 없다. 이는 2004년 7월 12일자 오마이뉴스 기사 "<뉴욕 타임스>, 김정일 위원장 때리다 '망신'"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1년전 호주의 파이낸셜 리뷰지가 오보한 내용을 얼마 전 NYT와 국내 수구언론들이 의도적으로 유포했다가 비난을 받은, 거짓임이 이미 만천하에 밝혀진 허위정보이다. 이러한 사실을 몰라서 또다시 써먹었는지, 알고도 독자들은 모르겠거니 하고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느 쪽이라 할지라도 기자의 본분 망각과 독자에 대한 우롱이라는 측면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 스스로부터 되돌아보라

문제는 이런 표현들이 너무도 쉽게, 곳곳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사실과 다른 것이 대부분이고, 어느 한 대목에 사실이 있더라도 엄청나게 과장됐다. 책임을 거꾸로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예도 흔하다
... 중략 ...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경우는 더 많아졌고, 자기들이 한 말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직설적 표현을 자제하고 외교적 수사를 동원하는 일도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 2005. 04. 11. [조선데스크] 북한식 과장법


과연 ‘불바다 발언’의 왜곡인용, 허위정보의 유포 등 사실과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이 어느쪽인지, 냉전 논리 속에서 북한에 관련된 일이라면 왜곡ㆍ과장을 밥먹듯이 해온 쪽이 어디인지, 수많은 사회문제와 병폐 속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전도시켜 자신들의 기득권과 상업이윤을 유지해온 것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만이라도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이제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독자들의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이제 언론은 자신들의 말에 더욱 정확성을 기해야 하며, 그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 따끔한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이며, 그로부터 새로운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더 이상 왜곡과 과장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박일순 기자는 언론비평웹진 필화(pilhwa.com)의 기자로 활동중이며 본 기사는 미디어오늘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일순 기자는 언론비평웹진 필화(pilhwa.com)의 기자로 활동중이며 본 기사는 미디어오늘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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