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야, 고맙다?

낙지로 부부싸움을 풀었습니다

등록 2005.04.13 08:33수정 2005.04.1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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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은 어디를 가나 꽃길이다. 특히 봄에는 그렇다. 가로수가 온통 벚꽃이다. 어디 벚꽃뿐이겠는가. 개나리도 피었다. 인근 야산에는 진달래도 피었다. 조금 도시를 벗어나면 복사꽃과 살구꽃도 피었을 것이다.


어제 밤에 우리 부부는 꽃길을 걸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아내는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간간이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소리내어 웃기도 했다. 나는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옆 눈으로 아내를 훔쳐본다. 더 이상 서운한 감정 같은 건 없어 보였다. 며칠 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까.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뿐이었다.

어제 퇴근길이었다. 나는 마산 어시장에 들렀다. 문어가 먹고 싶었다. 문어를 안주로 아내와 소주를 한잔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문어를 살 수 없었다. 세 마리에 1만원하던 문어가 한 마리에 1만원이다. 내가 발길을 돌리려 하자 가게 주인이 잡았다. 문어는 비싸니 낙지를 사라는 것이었다. 요 며칠 사이 가격이 많이 내렸다고 했다. 두 마리가 1만2000원이다. 전에는 한 마리가 1만원이었다. 나는 문어 대신 낙지를 샀다.

"내 말이 좀 심했지?"

나는 운전하는 후배를 보며 말했다. 후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말 한마디에 얼마나 마음이 상하는데. 그러나 진심은 아니었어. 나는 기분이 좋을 때 곧잘 농담을 하곤 했잖아. 그런데 아내는 그렇게 받아들이질 않았던 거야. 전화 속의 아내는 이미 예전의 다정한 아내가 아니었어.'


나는 몇 번이고 스스로를 책망한다. 그때 무언가가 발 밑에서 꼼지락거린다. 낙지다. 나는 낙지가 든 비닐봉지 머리를 한 번 더 죄었다. 그때 후배 휴대폰이 울린다. 후배 집사람인 모양이다. 후배는 몇 마디 하다가 전화를 끊어버린다. 집사람 목소리가 중간에서 잘린다. 나는 놀란 눈으로 후배를 바라보았다.

"너 그렇다가 내 꼴 난다."
"형님하고는 다르지요. 저는 운전중이잖아요."
"이 사람아, 여자들 마음은 그게 아니야.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내가 이렇게 곤욕을 치르고 있잖아."
"그 날 형님은 좀 심했어요. 형수님이 서운해할 만도 합니다."


그러니까 지난 주 금요일이었다. 퇴근길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녁 먹고 꽃길을 걸어보자는 것이었다. 밤에 보는 벚꽃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 입에서 엉뚱한 말이 뛰어나오는 것이었다. 나도 여간 놀란 게 아니었다.

"그럴 시간 있으면 글을 한 줄 더 쓰겠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 날부터 아내는 내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 썰렁함이라는 게 여간 고통스런 게 아니었다. 나는 아내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보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책도 사다주고 열심히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토라진 아내의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삼일이 갔다.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 카드를 쓰기로 했다.

아내는 유독 문어를 좋아한다. 나는 문어로 담판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문어 값이 너무 비싸다. 아내는 비싼 걸 싫어한다. 오히려 비싼 문어를 사갔다가 아내로부터 미움만 더 살지 몰랐다. 고민 끝에 나는 낙지를 사기로 했다.

a 낙지가 힘이 엄청 좋습니다

낙지가 힘이 엄청 좋습니다 ⓒ 박희우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낙지를 씻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런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나를 슬쩍 밀쳐내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보기가 민망했던 모양이다. 나는 못이기는 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아내가 비명을 질러대며 내 허리를 꽉 껴안는 것이었다.

"여보, 낙지가 제 손을 물어뜯고 그래요."

나는 재빨리 아내의 손을 감고 있는 낙지다리를 떼어냈다. 정말 잠깐이었다. 아내가 무안한 듯 내 허리에서 손을 풀었다. 나는 헛기침을 몇 번했다. 아내를 뒤로 물리쳤다. 나는 낙지다리를 잡았다. 힘이 엄청 좋았다. 나는 아내더러 가위를 달라고 했다. 가위로 낙지다리를 잘랐다. 아내는 잘려진 낙지다리를 접시에 담았다.

낙지를 사이에 두고 아내와 나는 마주앉았다. 나는 낙지를 초장에 찍었다. 아내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내가 못이기는 체 입을 벌렸다. 그러다 수줍게 웃었다. 낙지는 연신 접시 위에서 꼼지락댄다. 나는 낙지 한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입에 넣었다. 낙지가 척척 입천장에 달라붙는다. 술잔이 오갈수록 아내의 표정이 밝아진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 벚꽃 구경갈까?"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아내는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 말고도 벚꽃 구경나온 사람은 많았다. 밤에 보는 벚꽃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아내를 보는 순간 갑자기 춘흥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흥에 겨워 나는 아내를 꼭 껴안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힐끔 우리 부부를 쳐다보았다.

아내가 내 품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때 눈송이 같은 게 머리 위에서 흩날렸다. 벚꽃이었다. 벚꽃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아름드리 벚꽃나무였다. 아내와 나는 벚꽃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어제는 달도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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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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