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69회)

등록 2005.04.14 07:48수정 2005.04.14 11:46
0
원고료로 응원
둘은 바닥에 풀썩 주저앉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흘러내린 땀이 식어 옷자락에 달라붙었고, 입에서는 단내가 났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 없이 달려온 그들이었다.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도 몰랐다. 김 경장은 어깨를 벽에 기대고 있다가 옆으로 돌아보았다.

"다리는 좀 괜찮아요?"
"조금 쑤시긴 하지만 견딜 만해요."
"어딜 봐요."


김 경장이 채유정의 발목을 들어 발목을 살피려하자 채유정이 몸을 옆으로 돌렸다.

"괜찮아요.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요 뭘."

김 경장이 다시 밖을 나갔다. 잠시 후 그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세수 대야에 찬물을 받아왔다.

"여기에 발을 담그면 좀 나을 겁니다."

채유정은 빙긋, 웃어 보이며 양말을 벗어 한쪽 발을 세수 대야에 담갔다.


"고마워요."

둘은 나란히 벽에 기댄 채 앉아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을 바라보았다. 한순간 숨죽이고 있던 숲이 깨어나는 듯 했다. 새소리가 요란하고, 풀벌레들이 찌르르 울어대고 있었다. 이전부터 그 소리가 퍼져나갔지만 긴장을 하느라 여태 듣지 못했던 것이다. 창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끈적끈적한 땀을 식혀주었다. 채유정이 물에 담그고 있던 발을 수건으로 닦으며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여기서 물러날 순 없죠. 반드시 그 유물을 찾아 내야죠. 그 유물 때문에 죽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 지 몰라요."
"정확히 어느 피라미드에 유물이 숨겨져 있는 것도 모른 채 모두 뒤질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포기하고 있자 말입니까?"
"분명 거기의 많은 피라미드 중 어느 한 곳에 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그걸 알아낼 수 있을 까요?"

김 경장은 정면을 바라보던 시선을 옆으로 돌려 채유정을 향했다.

"박사님이 돌아가시면서 분명 그 메시지를 남겼을 겁니다."
"메시지라면 그 살해현장에 있을 거란 말인가요?"
"그렇겠죠."
"하지만 그곳은 이미 불이 나서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아요."
"전 살해 현장 곳곳을 카메라에 담아두었습니다. 그걸 잘 살펴보면 어떤 단서가 생길지도 모르죠."

그러면서 바닥에 놓인 가방에서 은색의 네모난 카메라를 꺼내어들었다. 그 카메라는 디지털 카메라였다.

"이 안에 살해 현장의 모습을 백 장 넘게 담아두었어요."
"그걸 모두 살필 셈인가요?"
"지금 우리가 기댈 것은 이것 밖에 없어요. 여기서 단서를 찾을 수 없다면 그 유물을 찾긴 불가능할 겁니다."
"정확한 피라미드의 위치를 찾아낸다고 해도 그 피라미드의 어디에 유물이 있는지 알 수 없다면 힘들긴 마찬가지 아닐까요?"

김 경장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아무래도 그렇겠죠."

이어 그의 얼굴에 희미한 체념이,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설레임 따위가 얼굴에 팍 퍼져갔다. 입가의 근육이 비죽비죽 뒤틀리는 게 보였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문득 이렇게 묻는 것이다.

"우리가 보았던 피라미드가 장군총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그랬죠?"

채유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크기만 달랐지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에 있는 장군총의 모습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었어요."
"그 높이가 어떻게 되죠?"
"정확히 12.4 미터예요."
"우리가 보았던 피라미드의 높이가 50미터 정도 되었으니 장군총 보다 네 배 정도 큰 것이 되겠군요."

김 경장은 잠시 눈을 감고 무슨 생각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2. 2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3. 3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4. 4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