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장 논검(論劍)
하남 북쪽에 위치한 제원(濟源)에 자리한 일심관(一心館)은 권무도장(券武道場)으로서는 꽤 이름난 곳이었다. 그곳을 운영하는 일심관주는 소림에서 권(券)을 수학한 바 있는 제관흥(齊款興)이란 인물이었는데 소림의 백보신권(百步神券)을 맛본 것을 기화로 백여명이 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던 자였다.
헌데 어느 날밤 갑자기 가족은 물론 가솔 여덟 명까지 모조리 목이 잘린 채 발견되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 안면이 있는 포두들이 나와 조사했지만 흉수가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비단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던 정구(鄭九)란 자는 인심이 넉넉한 사람이었다. 거지가 아무리 드나들어도 그는 항상 몇 푼의 동전 주는 것을 잊은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나이 사십에 장가를 들어 이제 돌이 지난 사내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일가족 모두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조그만 고을의 학당에서 글을 가르치는 것으로 노년을 보내던 학유(學諭) 역시 일가족 모두 살해당했고, 유명한 반점(飯店)의 점소이도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와 비슷한 사건은 열세 군데 사십육명이 죽음으로서 끝이 났다.
끔찍하고 괴상한 일이었지만 흉수가 누군지, 왜 죽었는지 아무리 조사해도 나오는 것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없었다. 다만 산서성과 하남성의 경계 근처에 살던 사람들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라면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같은 날 밤에 죽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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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음식은 팔보돈비압(八寶焞肥鴨)을 주로 하여 간소가자(干燒茄子), 화폭우심(火爆牛心)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푸짐한 음식에도 불구하고 냉혈도 반당은 채소 몇 가지와 삶은 낙화생을 조금 먹고 있을 뿐 육류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매우 열심히 먹는 듯 보였다. 낙화생 한 알을 입에 넣어도 아주 천천히 조금씩 씹어 먹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죽엽청(竹葉靑)이란 것은 본래 이렇듯 귀한 벽옥잔(碧玉盞)으로 마셔야 제 맛이 나는 법이오.”
반당과는 달리 육능풍은 대식가였다. 손 하나만으로도 보통사람 두 배나 되는 거구라서 그런지 그가 먹는 양은 엄청났다. 그는 팔보연자죽(八寶蓮子粥) 두 그릇, 팔보돈비압의 오리 한 마리를 간단하게 해치우고는 화폭우심을 세 접시, 진흙에 구운 닭 한 마리를 먹은 후 화권만두(花卷饅頭) 열아홉 개를 먹어 치웠다. 그의 배는 밑이 뚫려 있는 것 같았다.
어디 그 뿐이랴. 오룡차를 세잔 마시고 죽엽청을 벌써 열 잔째 비우고 있었다. 십선과정(十鮮果晶), 밀전감과(蜜錢甘果) 역시 탐욕스럽게 바라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대접하는 주인의 입장에서는 사실 반당처럼 소식하는 사람보다 육능풍같은 대식가가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러한 대식가가 육능풍 같은 능구렁이만 아니라면 말이다.
“허, 정말 맛있구려. 이렇게 맛있는 것이 많아서 이곳에 쥐새끼들이 들락날락 하는 것 같구려. 그렇지 않소. 풍장주?”
육능풍의 말에 풍철영은 가벼운 미소를 베어 물었다. 이제 시작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풍철영이 이 자리를 만든 의도였다. 더 이상 방치한다면 철혈보에서 무슨 수를 쓰던지 할 것이고, 그것은 그가 본래 원했던 방향으로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쥐새끼치고는 고양이도 물어 죽일 정도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쥐새끼라 본 장주의 눈에는 쥐새끼로 보이지 않고 살쾡이 같이 보이오만.”
“하하, 쥐새끼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어보았자 결국 쥐새끼 아니겠소? 뭐 쥐새끼던 살쾡이든 상관있겠소? 그렇지 않아도 밥만 축내고 있어 장주께 미안도 하고, 할 일이 없어 답답하던 참에 괜찮은 놀이라고 생각하고 있소만, 물론 장주만 좋다면 말이오.”
육능풍은 이제 노골적이었다. 이 정도까지 노골적으로 나설 거라고는 풍철영도 생각하지 못한 바였다. 육능풍이 기습을 한 셈이었다.
“어찌 육노선배의 손까지 빌릴 수 있겠소? 그저 이곳에 계셔주는 것만으로도 본 장주로서는 영광일 따름이외다.”
육능풍은 지금 벌꿀에 재였다가 졸인 밤(栗)을 세 개째 먹고 있었다. 입안에 꿀의 향기가 가득 퍼지다가 한번 씹으면 사르르 녹아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풍철영의 말에 목구멍으로 사르르 넘어가던 밤이 갑자기 목에 걸리는 것 같았다.
“더구나 색깔이 다른 쥐새끼들마저 설쳐대니 골라서 잡을 수도 없고 곤란하기도 하오.”
자신이 은밀하게 풀었던 수하의 죽음을 고의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또한 같이 움직이던 또 한명의 수하에 대해 손을 쓰지 않았다는 것 역시 은근하게 비추고 있었다.
(빌어먹을, 또 한방 맞았군.)
육능풍은 기가 막혔다. 능글맞은 것에 대해서는 자신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헌데 풍철영은 전혀 능글거리지도 않는데도 자신보다 더 심한 것 같았다. 이런 자하고 한시진만 앉아 있다가는 목 뒤 혈관이 터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전 처음 보는 강적(?)이었다. 이런 경우에 노골적으로 상대와 맞부닥치는 것은 의도한 바를 자신의 손으로 망가뜨리는 몰상식한 일이라는 것쯤은 이미 예전에 터득한 터. 이런 경우에는 다른 상대를 찔러 들어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고, 마침 이 자리에는 그 상대가 아주 명확하게 그 표시를 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허어, 인중지룡(人中之龍)이라더니 담공자에게 꼭 어울리는 말이구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문(師門)을 물어봐도 되겠소?”
담천의는 갑작스런 그의 물음에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사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곤란했다. 특별히 사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익힌 무공 역시 태극산수를 제외하고는 어디에서 연유되었는지 자신도 몰랐다.
“과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하지만 그 질문에는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소이다.”
“허, 사문을 밝히지 말라고 사부께 엄명을 받으신 모양이구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부는 계시나 사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육능풍은 담천의의 눈을 직시했다. 분명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문이 없는 자가 저 나이에 저 정도의 무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웠다. 바닷가의 모래알만큼이나 중원 곳곳에 은인자중하고 있는 기인들이 많다고는 하나 그들 역시 무림문파에서 가지 쳐 나간 경우가 많다보니 대개는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는 터였다.
하지만 이 청년에게는 도대체 뿌리라는 것이 없었다. 기껏해야 태극산수 정도인데 태극산수 역시 근원은 무당이되, 무당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무공. 또한 그의 검이란 것도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런 검이 아니었다. 풍철영이 싸고도는 것으로 보아 뭔가 연관이 있을 법해서 물어 본 것인데 그 또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럼 사부가 뉘신지 물어보아도 되겠소?”
“그 또한 대답 드리기 어려운 질문이외다. 소생 또한 사부의 함자조차 모르니 말이오.”
진짜 감추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인가? 하지만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전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정말 고결한 학과 같이 세속을 떠난 은인(隱人)이신 모양이구려. 정말 존경할만한 분인 것 같소. 누가 담공자 같은 인물을 키워 수 있겠소.”
반은 감탄이오, 반은 호기심이었다. 이 청년의 말이 맞는다면 그 사부란 인물은 전혀 알 수 없는 인물이기도 했고, 정말 위험한 인물이기도 했다.
“실망을 드려 죄송하외다.”
담천의는 가볍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그때였다. 육능풍이 입을 열기 전에 반당의 입에서 감정이 없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내가 이 자리에서 직도황룡(直道黃龍)의 초식으로 담공자의 머리와 가슴을 일거에 베어간다면 어찌하겠소.”
담천의와 냉혈도 반당의 위치는 정확하게 맞은편이 아니었다. 그 곳에는 독고상천이 앉아 있었고,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담천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반당의 도가 자신의 정수리를 두 쪽 낼 듯이 내려쳐지는 그의 도기를 느꼈다. 아주 간단한 초식이었지만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경우에 피하기 어려운 공격이었다. 옆으로 피하는 것은 이미 직도황룡에 내포된 세 가지 변화가 그것을 차단할 것이었고, 몸을 뒤로 물린다면 머리는 피할지언정 복부가 갈라지는 것을 면치 못할 터였다.
“소생은 의자의 다리를 부러뜨림과 동시에 주저 않겠소. 그리고 검을 뽑아 창룡출해(蒼龍出海)의 초식으로 반선배의 단전과 목을 동시에 노리며 찔러가겠소.”
실내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서서히 긴장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몇 마디의 말 뿐이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반당과 담천의 간의 대결이 머릿속에 떠올라 있었다. 이미 무림에 널리 알려져 있는 초식으로 그들의 혈투는 막이 올랐다.
“적절한 임기응변에 알맞은 공격이오. 그렇다면 나는 몸을 오른쪽으로 회전하면서 팔방풍우(八方風雨)로 찔러오는 검을 튕겨낸 후 몸을 낮추어 오른발로는 공자의 무릎을 타격하고, 도(刀)는 동시에 봉황삼점두(鳳凰三點頭)로 공자의 미간(眉間)과 천돌(天突), 그리고 거궐혈(巨闕穴)을 찔러 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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