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62회

등록 2005.04.15 08:07수정 2005.04.1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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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찍어 누른다면 아무래도 단전 아래에 허점이 생긴다. 그 단전을 찔러 가면 복부를 뒤로 미는 수밖에 없고, 목과 다리에 허점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상대가 아예 몸을 회전시키며 팔방풍우의 초식을 펼친다면 찔러가던 검은 목표를 잃고 물러서게 되는데 그 상황에서 상대가 무릎을 노려 발길질을 해온다면 자칫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막기보다는 물러나야 할 터. 그 때 봉황삼점두로 찔러 온다면 더 이상 물러설 여지도 없게 되는 것이다.

“시간적인 배합이 너무나 적절하고 정교한 공격이오. 하지만 무릎을 노린 발 공격을 추운각(趨雲脚)으로 마주쳐가 그 힘을 빌려 몸을 수평으로 뉘이며 백사토신(白蛇吐信)으로 공격하겠소.”


무릎의 공격을 발바닥으로 막으며 상대의 힘을 이용해 몸을 수평으로 눕히면 봉황삼점두의 공격은 그 목표를 찾아 다시 아래로 향하게 되는데, 이 순간 백사토신이 펼쳐지면 공격하던 반당의 하체는 허점이 생기는 것과 함께 최소한 허벅지가 베이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었다.

반당은 고개를 끄떡였다. 무리(武理)를 아는 청년이었다. 그의 내력을 알고자 시작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 목적은 나중이었고, 그는 기대에 섞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부운추영(浮雲趨迎)으로 신형을 허공에 띠워 공자의 머리를 타고 넘으며 다시 한번 직도황룡을 펼치면?”

그 말에 다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백사토신을 피한다고 몸을 허공에 띠우는 것은 어리석은 동작이었다. 자칫하면 복부에 검이 박힐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담천의는 그가 생각하는 의도를 읽었다. 반당은 몸을 회전시킨다고 했지만 회전이라기보다는 아마 자신의 머리 위를 타고 허공에서 물구나무를 서듯 신형을 일직선으로 하여 자신의 뒷머리를 노리며 내리치는 모습이 상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순간이라면 담천의로서는 두 가지 선택 밖에 없었다. 그의 도를 마주쳐 가 막는 것과 고개를 숙이며 앞으로 빠르게 튕겨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곧바로 떨어지는 그의 도를 막는다는 것은 그보다 공력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공력이 비슷하다 할지라도 위에서 일직선으로 전신의 공력이 응집된 도를 막는 것은 아무리 잘 막아도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튕겨나가는 것도 역시 어깨부분의 허점을 노출시킬 수 있었다.


“무서운 공격이오. 피하려고 한다면 오히려 큰 손해를 면치 못할 것이오. 소생은 어쩔 수 없이 회두번신(回頭翻身)으로 몸을 바닥에 누이면서 선인지로(仙人之路)의 한수로 반선배의 미간을 노림과 동시에 연환십팔퇴(連環十八腿)로 옆구리를 가격할 수밖에 없소.”

피하기보다 마주쳐 가는 것이니만큼 떨어지는 칼날에 담천의의 다리 쪽이 베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검은 반당의 미간을 노리게 될 것이고 동시에 연환십팔퇴에 의해 옆구리를 가격 당하게 된다면 오히려 반당이 치명적인 손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반당은 웃었다. 무공 뿐 아니라 승부가 무엇인지 아는 젊은이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둘 중의 하나구려. 동패구상하던지 아니면 공격을 거두고 물러나는 것. 공자는 내가 어찌할 것이라 생각하시오?”

“아직 반선배를 잘 알지 못해 뭐라 대답하기 어려우나 반선배께서는 공격을 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고, 소생은 큰 부상을 입었을 것이오.”

무공 운용과 임기응변이 뛰어나고, 직관력과 판단력도 정확했다. 반당을 만난지 겨우 반시진 정도다. 이미 예기만으로도 그의 무공수위를 판단했을 것이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성격도 파악했을 것이다. 반당이 손을 거두고 물러나는 경우는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 그는 물러나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죽기를 원하는 자였다.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소. 나 또한 공자의 검에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이오.”

“받아들이기 어려운 과찬이시오.”

실내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등골을 나고 오르는 서늘함에 누구하고도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비록 논검(論劍)이었고 몇초식 정도였지만 그토록 거침없이 그 순간에 가장 적절한 초식을 펼칠 수 있을까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다.

쨕-쨕--쨕---!

육능풍이 크고 두툼한 손을 마주쳐 박수를 세 번 쳤다. 그것은 그가 만족할 때만 하는 버릇. 이제 얼추 배가 부른 모양인지 버릇처럼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뉘인 채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하오. 대단해. 어쩐지 장주가 쥐새끼들 걱정을 하지 않더니 저런 사람을 데리고 있어 그랬구먼.”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독고상천을 바라보았다. 독고상천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을 본 육능풍은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상천. 자네가 담공자와 손속을 나눈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될 것 같은가?”

그 질문에 철혈보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근심스런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육능풍의 의도야 모를 바 아니었지만 진정한 상대를 만났을 때 보여주는 독고상천의 저 눈빛을 보고도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은 자칫 화를 불러올 수 있었다. 하지만 독고상천은 담천의에게 고정된 시선을 돌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병기가 없는 상태라면 삼백초(三百招), 병기를 가지고 대결한다면 이백초(二百招) 안에 제자가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자네는 너무 자신을 과소평가했군. 자신의 능력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만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지만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야.”

단지 독고상천의 기를 살려주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독고상천의 누가 뭐래도 이 중원에서 가장 강한 문파인 철혈보의 소보주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윗사람들을 탄복케하는 천재성이 있었고, 그 번뜩이는 자질이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경계할 정도였다.

“허면 자네는 저 사람을 친구로 만들 셈인가, 아니면 적으로 만들 셈인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독고상천은 담천의를 주시하던 시선을 바로 걷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그의 몸속에서 맹렬하게 들끓었던 투지는 담천의를 한 순간에 맞붙어야할 상대로만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한 문파를 이끌어갈 사람이 버려야할 가장 나쁜 버릇이었다. 육능풍의 첫 물음에서 그것을 깨닫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제자가 너무 뛰어난 담공자의 무위에 시기심이 일었나 봅니다. 하지만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는 그의 능력보다는 마음이 우선입니다.”

외인이 자리에 있음에도 독고상천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함에 있어 주저하지 않았다. 스스로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그런 행동을 보이지 못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자네 말대로라면 친구가 되기 위해 일단 자네의 마음을 보이고 상대의 마음을 보아야 할 게 아닌가? 그래도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적이 되어야 하지.”

독고상천은 육능풍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자신이 나서달라는 것이다. 철혈보에 있어 친구와 적의 개념은 언제나 명확했다. 한번의 도움은 열 번으로 갚는다. 하나의 생명은 열개의 생명으로 갚는다. 독고상천은 싱긋 웃으며 담천의를 바라보았다.

“담형.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가 생선을 훔쳐 달아났소. 하지만 생선은 썩어있어 별로 먹을 만한 것이 아니오. 하지만 쥐새끼들은 그 썩은 생선 내를 맡고 몰려들었고, 고양이를 잃은 주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고양이를 다시 찾으려고 노력 중이오.”

독고상천이 하는 말을 못 알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독고상천이 아니라면 철혈보의 누군가의 입에서 나올 말이었다.

“헌데 그 고양이가 남의 집에 들어가 한 구석에 처박혀 머리조차 내밀지 않는 것이오. 그렇다고 주인에게 그 놈을 잡아달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또 주인장의 체면을 보아 직접 잡아내기도 곤란한 지경이오. 담형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하겠소?”

그의 말은 마치 정중하게 조언을 구하는 모습이어서 그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너무나 복잡했다. 자칫 담천의의 입에서 말이 잘못 나간다면 철혈보와 영원히 적이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는 이곳의 주인이 아니었다. 다만 풍철영의 태도에서 그런 듯 보였을 뿐이었다. 담천의의 얼굴에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이 떠오르더니 그것은 다시 가벼운 미소로 바뀌었다.

“독고형께서는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소. 이곳에서는 길 잃은 고양이가 불쌍해서 받아들였고, 그 고양이가 끌고 온 쥐새끼들이 분탕질을 치는 바람에 화가 나있소. 하지만 그 고양이를 쫒아내기 전에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보니 조금 늦어지는 것뿐이오.”

그 말에 독고상천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담천의의 말은 교묘해서 그 고양이를 잡아준다는 것인지, 아니면 쫒아낼 테니 잡아가든지 말든지 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담형의 말씀은?”

독고상천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담천의가 미소를 지우고는 신중하게 말했다.

“반드시 이 안에서 독고형의 손에 넘겨주겠소.”

그의 말에 철혈보의 인물들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하지만 이 안이라는 의미를 그들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 지금 그들이 식사하고 있는 곳은 장주의 거처인 신검각 귀빈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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