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첩국과 단짝인 부추, 걍상도에서는 정구지, 전라도에서는 솔이라고 부른다이종찬
재첩회는 그릇에 배를 무채처럼 썰어넣고 부추와 상추, 봄동, 양파, 달래를 넣은 뒤 재첩 알갱이를 얹어 초고추장에 쓰윽쓱 비벼 먹으면 된다. 재첩회덮밥은 그렇게 비빈 재첩회를 고슬한 밥 위에 올리면 그만. 조금 색다른 재첩회덮밥을 즐기고 싶다면 참기름, 부추, 실파 등 갖은 양념을 넣은 양념장에 비벼먹는 것도 좋다. 재첩전은 밀가루 반죽에 부추와 재첩을 버무려 기름 두른 후라이팬에 구워내기만 하면 그만이다.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섬진강에 나가면 발에 밟히는 기 모두 재첩이었다 아입니꺼. 그때까지만 해도 재첩국을 끓일 때에는 껍데기까지 같이 끓여 먹었지예. 아마 하도 먹을 게 귀했던 시절이었으니까 국물 한 방울이라도 아끼려고 그랬던 것 같아예. 하긴 그렇게 대충 먹어도 몸 아픈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거 보모(보면) 재첩이 몸에 좋기는 좋은 모양이라예."
하동에서 재첩국 장사를 시작한 지 40여년이 훨씬 넘는다는 '동흥식당'(경남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 주인 최숙연(54)씨. 어릴 적부터 어머니 어깨 너머로 재첩으로 만드는 여러 가지 조리를 배웠다는 최씨는 "재첩국에는 다른 양념이 하나도 필요 없고. 정구지(부추)와 소금(천일염)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하동 재첩국의 종가라 불리는 '동흥식당'에서 파는 재첩조리는 크게 네 가지다. 재첩국(5천원)과 재첩회, 재첩회덮밥, 재첩부침개가 그것. 그중 재첩 원액으로 만들었다는 푸르스름한 안개빛이 감도는 재첩진국이 특미다. 이른 새벽 섬진강에 자욱하게 낀 새벽안개를 닮은 이 집 재첩진국은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을 때마다 어젯밤 늦게까지 마신 술이 저절로 씻겨내려가는 것처럼 시원하고 맛이 깊다.
▲재첩국이 끓기 시작하면 부추를 흐르는 물에 깨끗히 씻어 물기를 뺀다이종찬
▲보글보글 끓고 있는 재첩국이종찬
재첩진국을 먹으며 창 밖을 바라보는 풍경도 곱다. 은빛 윤슬이 톡톡 구르는 파아란 섬진강과 그 섬진강물을 거울 삼아 얼굴을 비추는 짙푸른 소나무숲. 재첩진국에 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고, 사각사각 씹히는 과일과 함께 쫀득하게 씹히는 재첩회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다.
'음식은 손맛'이라는 주방 아주머니는 재첩국은 부추와 잔파가 궁합이 딱 맞는다며 겨울철에는 부추 대신 잔파를 잘게 썰어넣어도 맛과 향이 좋다고 한다. 중국산 재첩과 섬진강 재첩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자 "중국산 재첩은 섬진강 재첩보다 크고 반듯하게 생겼지만 살이 질기고 국물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마치 중국산 재첩이 섬진강 재첩국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섬진강 재첩국 본래의 깊은 맛을 잘 모른다는 투다. 하긴, 어디 그뿐이겠는가. 80년대 중반 이곳에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는 바람에 섬진강의 환경까지 바뀌어 예전에 비해 재첩이 그리 많이 잡히지도 않는단다.
"요즈음 가정집에 재첩국을 배달하는 재첩국 공장도 생겼다면서요?"
"재첩국은 끓여서 곧바로 먹어야 깊은 맛이 나지예. 무슨 음식이든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하기 시작하면 그 본래의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예. 중국산이 수입되든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하든 결국 맛으로 승부를 해야지예."
▲요즈음 재첩국이 맛도 좋고 향이 깊다이종찬
그렇다. 문제는 우리 민족 대대로 내려온 고유한 맛을 찾는 일이다. 수입 농산물이 아무리 값 싼 가격으로 백화점과 시장바닥에 날개를 휘젓고 다녀도 맛이 없으면 누가 먹겠는가. 반만년 동안 우리 민족을 지켜온 고유의 맛, 그 맛을 지키려면 우리 스스로 우리의 땅에서 나고 자란 농산물을 먹어야 되지 않겠는가.
재첩의 맛과 향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요즈음 가까운 시장에 나가면 재첩국이 많이 나와 있다. 그중 재첩 알갱이가 자잘하고 국물이 푸르스름한 새벽 안개빛을 띤 것이 좋다. 깊어가는 봄날, 오늘 식탁 위에는 맛도 좋고 향이 좋은 재첩국을 올려보자. 한 수저 한 수저 뜰 때마다 이 세상의 시름과 숙취가 씻은 듯이 사라지리라.
| | 섬진강 재첩국 이렇게 끓여야 제맛 난다 | | | 국물 끓을 때 잘게 썬 부추 넣고 볶은소금으로 간해야 | | | |
| | ▲ 재첩국은 부추와 소금만 있으면 그만 | ⓒ이종찬 | 재료/재첩, 부추, 소금, 물
1. 재첩을 맹물에 3~4시간 담가 해감을 시킨 뒤 바락바락 문질러 깨끗이 씻는다.
2. 냄비에 찬물을 붓고 잘 씻은 재첩을 넣어 입이 벌어질 때까지 팔팔 끓인다. 이때 생기는 거품은 모두 걷어낸다.
3. 입이 벌어진 재첩을 건져 찬물에 헹군 뒤 알갱이를 빼내고, 재첩을 끓인 뽀오얀 국물은 면보에 거른다.
4. 흐르는 물에 부추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4cm 길이로 썬다.
5. 재첩국물을 냄비에 담고 재첩 알갱이를 적당량 넣어 중불에서 팔팔 끓인다.
6. 재첩국물이 바글바글 끓으면 썰어둔 부추를 넣고 볶은 소금으로 간을 한 뒤 국그릇에 담아 밥과 함께 상 위에 올리면 끝.
※맛 더하기/부추를 넣은 재첩국에 팽이버섯을 넣어 먹어도 감칠맛이 나고, 재첩 알갱이에 배와 부추, 상추, 봄동, 양파, 달래를 넣고 초고추장에 비벼먹는 재첩회도 향긋하게 씹히는 맛이 끝내준다.
/ 이종찬 기자 | | | | |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진주-남해고속도로-하동 나들목-하동읍-하동교육청-동흥식당(055-884-2257)
※이 기사에 있는 재첩국 사진은 섬진강에서 직접 사 온 재첩국을 집에서 조리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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