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도서정가제' 전면 실시에 반대합니다

등록 2005.04.14 18:11수정 2005.04.15 12:21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3월 31일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23명이 '출판 및 인쇄 진흥법 일부법률개정안'(이하 개정안)을 발의하였습니다. 이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도서정가제'의 전면적 실시입니다. 도서 판매자는 무조건 정가대로 도서를 판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정안의 제안이유에 의하면 온-오프라인 서점간의 형평성 보장, 출판관련 산업 육성, 소비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 '도서정가제'를 완전하게 실시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가 특정 시장에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가 자유경제시장 질서를 따르고 있다고는 하지만 공익을 위하고, 사회 보편적 가치에 준한다면 국가의 개입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도서정가제'의 전면적 실시가 제안이유에서 밝힌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또 상식적으로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한사람으로서 의문이 듭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네티즌들이 '도서정가제'의 전면적 실시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a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실시하고 있는 '도서정가제' 찬반투표 현황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실시하고 있는 '도서정가제' 찬반투표 현황 ⓒ 문동섭

네티즌들이 이처럼 반대하는 이유가 단순히 싼값에 책을 구입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명 부당한 면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연 '도서정가제'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소비자 처지에서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다른 문화콘텐츠와 형평성이 맞지 않다


개정안은 가격할인이 유통질서를 어지럽힌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격경쟁을 통한 할인을 주요 경쟁력으로 삼고 있는 경매관련 인터넷쇼핑몰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거의 대부분 인터넷쇼핑몰이 많은 품목을 할인가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개정안의 논리대로라면 이 또한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책은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직결되는 문화콘텐츠이므로 예외를 둬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콘텐츠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 음반, 공연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영화와 각종 공연 티켓은 인터넷예매를 통해 정가보다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습니다. 또 생산, 유통, 판매에서 책과 가장 유사한 음반 역시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할인가에 구입할 수가 있습니다.

다 같은 문화콘텐츠인데 영화, 공연, 음반은 할인가에 판매해도 되고 책은 안 된다는 것은 어떠한 기준과 근거에 의한 것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또 '도서정가제'의 전면 실시는 문화산업 전반을 아울러야 할 입법기관이 특정분야만 과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혹 이해관계에 있는 특정집단의 입김에 입법기관이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합니다.

소비자는 책 사보기가 불편해진다

현재 우리들의 생활주변에서 도서관이나 서점을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그 만큼 사람들이 책을 입수하는 과정 역시 힘들다는 것입니다. 물론 운 좋게 산보하듯 도서관이나 서점에 갈 수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책을 사려면 차를 타고 중심가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인터넷서점은 쉽고, 편하게 책을 찾고 입수할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거기에다 할인가에 책을 구입할 수 있으니 더욱 즐거운 일이겠지요.

그러나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 인터넷서점 역시 정가에 판매를 해야 합니다. 거기에다 배송료까지 부가해야 합니다(현재 무료배송을 하는 인터넷서점보다 배송료를 받는 인터넷서점이 더 많습니다). 즉 소비자는 책의 정가에 배송료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정가보다 비싼 가격에 책을 구입하게 됩니다.

설사 전면 무료 배송을 하더라도 책의 실물을 볼 수 없다는 점, 책을 받아보기까지 며칠씩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즉 '도서정가제' 전면 실시로 인터넷서점은 기존의 장점을 상실하게 되고, 이것이 불만족스러운 소비자들은 다시 책 구입을 위해 차를 타고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비자의 선택권이 없어진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상품을 할인해 주는 이유는 인터넷이라는 인터페이스를 활용하여 유통비,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시장의 단점을 다른 장점으로 극복하려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 가격할인은 사업자에게는 가장 큰 경쟁력이고 소비자에게는 절감된 비용만큼 부담을 덜어주는 혜택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소비자들이 인터넷쇼핑몰을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훨씬 많은 소비자들이 실물을 볼 수 없다는 점, 배송기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 보안 및 정보유출의 우려, 인터넷 활용능력 부족, 인터넷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의 이유로 오프라인 매장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도서구입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인터넷서점이 전체 도서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5%에 불과합니다. 여전히 도서시장의 85%는 오프라인 서점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앞서 이야기한 인터넷서점의 여러 가지 단점을 감수하고 가격할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그 단점을 감수할 수 없기 때문에 가격할인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즉 가격할인은 도서 구입의 절대적 기준이 아닌 선택사항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도서정가제'의 전면적인 실시는 시장의 환경변화에 의해 생겨난 소비자의 선택권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도서정가제'는 해결책이 아니다

실상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 그동안 가격할인을 경쟁력으로 삼았던 인터넷서점의 타격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에 따라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던 소비자의 불편과 비용부담 역시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인터넷서점을 찾던 소비자들이 오프라인 서점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편함과 비용부담으로 인해 도서 구입 자체를 꺼려하는 소비자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보자면 도서시장의 파이가 줄어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출판업계는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터넷서점의 가격할인과 싼 가격을 좋아하는 소비자 탓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책을 보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이 사회와 사람들이 점점 먹고 살기가 힘들어져 책 볼 여유가 없어졌다는데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 교양, 정보, 지식의 제공과 취미생활의 도구 등 과거 책이 해왔던 역할을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매체들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변화에는 주목하지 않은 채 단순히 책을 정가대로만 팔면 출판관련 산업이 살아나고, 독서문화도 향상될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근시안적 사고입니다.

지금이라도 입법기관은 이 '도서정가제'에 대해 폭 넓게 의견수렴을 하고 신중하게 검토하길 소비자의 한사람으로서 바랍니다.

관련
기사
- <주장> 누구를 위한 '완전도서정가제'인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부영, 통 큰 기부로 이미지 마케팅... 뒤에선 서민 등쳐먹나"
  2. 2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3. 3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4. 4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오빠가 죽었다니... 장례 치를 돈조차 없던 여동생의 선택
  5. 5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탐욕스러운 기업이 만든 비극... 괴물을 낳은 엄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