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원으로 온 가족이 행복했습니다

입맛 잃은 남편 위해 아내가 해준 보양식

등록 2005.04.18 08:07수정 2005.04.2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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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인삼을 사왔다. 몸통은 없고 다리뿐이다. 이것을 미삼이라고 한다. 인삼만이 아니다. 미나리도 사왔다. 파란 줄기에 군데군데 검은 색깔을 띠었다. 향기가 좋은 게 '한재 미나리'라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닭 한 마리도 사왔다. 아내는 내내 얼굴에 미소를 흘렸다.


"이게 전부 얼마인지 아세요. 인삼 3500원, 미나리 500원, 닭 3000원, 합해서 7000원이에요. 어때요, 싸지요. 당신이 봄을 타는 것 같아서 좀 사왔어요."

내가 봄을 탄다. 일견 그럴 만도 했다. 요즘 내 눈이 말이 아니다. 흰자 위에 실핏줄이 거미줄처럼 퍼졌다. 밥맛도 없다. 나는 과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쉴 수는 없었다. 하루라도 쉬면 다음날은 더 고되다. 내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등기소 일이라는 게 본시 그랬다.

나는 인삼을 씻었다. 인삼 특유의 냄새가 났다. 갑자기 어릴 적 일들이 생각난다. 내 고향은 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이란 곳이다. 인삼은 여름에 캔다. 금방 캐낸 인삼을 수삼이라고 했는데 오래 보관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인삼을 깎아서 말리는 것이었다. 이것을 건삼이라고 했다. 인삼을 깎는 날에는 온 마을이 인삼 냄새로 진동을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약방을 지날 때면 고향 생각에 젖어들곤 한다. 한약 달이는 냄새와 인삼 말리는 냄새가 일견 비슷했기 때문이다.

a 인삼에 미나리 무침입니다

인삼에 미나리 무침입니다 ⓒ 박희우

나는 미나리도 씻었다. 오늘 사온 미나리는 여느 미나리와는 사뭇 다르다. 향긋한 냄새가 입맛을 자극한다. 나는 미나리를 씻다 말고 작은 이파리를 씹어먹는다. 달착지근한 게 여간 맛있는 게 아니다. 아내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오늘 할인점에서 있었던 일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2만4천원 하는 쇠고기가 1만원 하는 거 있지요. 그래서 사왔어요. 닭도 4000원인데 3000원 하더라고요. 저녁 여덟 시가 넘으면 더 싸게 팔아요."


아내가 인삼과 미나리를 고추장에 버무린다. 식초를 넣고 깨소금을 뿌린다. 나는 양념이 잘된 미삼 한 뿌리를 씹었다. 아주 맛있다. 쓴맛도 나질 않는다. 아내는 접시에 미삼과 미나리 무친 것을 담았다. 빨간 색깔을 내는 게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솥에서는 진작부터 거품이 푹푹 새어나온다. 닭을 삶고 있다. 아내가 솥뚜껑을 열었다. 젓가락으로 닭의 가슴 부위를 쿡쿡 찔러본다. 머리를 끄덕이는 걸로 보아 닭이 다 익은 모양이다. 아내는 닭을 꺼내어 접시에 담았다.


a 닭이 개구리처럼 생겼습니다

닭이 개구리처럼 생겼습니다 ⓒ 박희우

아내는 떡국을 끓일 모양이다. 닭 삶은 물에 떡을 집어넣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쌀을 넣고 죽을 끓였을 것이다. 아내는 닭 삶은 물에 떡국을 끓여먹는 것도 별미라고 했다. 나는 식탁을 정리했다.

오늘 준비한 음식들을 식탁에 올렸다. 인삼무침과 백숙 그리고 떡국이 차례로 놓였다. 다른 반찬은 없었다. 아내는 동동주까지 준비했다. 나는 동동주 통을 세게 흔들었다. 유리잔에 동동주를 따랐다. 색깔이 우유처럼 뿌옇다.

아이들은 닭고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닭의 모양새가 좀 이상하다. 마치 개구리가 벌렁 누워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는 깔깔대며 웃었다. 나는 동동주를 한 잔 마셨다. 조 껍데기로 만들어서 그런지 고소한 냄새가 났다. 떡국 국물도 시원했다. 그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닭 삶은 물에도 떡국을 끓인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내가 그런 나를 보며 말한다.

a 닭 삶은 물에 떡국을 끓였습니다

닭 삶은 물에 떡국을 끓였습니다 ⓒ 박희우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원래는 떡국을 끓일 때 꿩을 썼대요. 꿩이 귀하다 보니까 닭을 쓴 거래요. 어때요, 꿩 대신 닭, 맛있지요?"

아내의 설명이 제법 그럴 듯하다. 나는 닭고기 한 점을 찢었다. 그 위에 인삼 무침을 얹었다. 아내가 오늘 고생했다. 못난 지아비 입맛 없다고 이렇게 보양까지 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나는 인삼무침을 아내의 입에 넣어 주었다. 아내가 못이기는 척 인삼무침을 받아먹었다.

그때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가족의 웃음 속에 바로 행복이 있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이렇게 풍성하게 저녁을 먹었는데도 비용은 7000원 밖에 들지 않았다. 웬만한 식당의 1인분 식사 값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족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당신, 진심으로 사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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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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