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보다 먼저 하객들의 주연이 베풀어졌다.김우출
이 무한경쟁시대에 도시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좋은 직장이나 잘 나가던 직업을 훌훌 벗어 던지고 귀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통나무집이나 흙집을 짓는 학교를 나오거나 동호회를 만들어서 심산유곡에 집을 짓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나빠진 건강을 다스리기 위하여 요양 차 시골생활을 자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용기가 없어서 실천을 못하고 있을 뿐이지 필자 역시 늘 동경하고 있는 삶이다.
어릴 때부터 동생 친구인 최아무개를 오랜만에 만났더니 달라진 가치관으로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었다. 내가 알고 있던 최아무개가 아니었다. 너무나 걸림이 없고 편해 보였다.
어느 지인의 결혼식에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알만한 사람들이 많이 올 거라고 했다. 신랑은 남방 차림으로 축하객들 속에 묻혀 있었으며, 이미 막걸리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결혼식에서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한다. 필자는 오래 전에 <계간 영주문화>의 '문화풍속도'라는 꼭지에서 '결혼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다음 손님 때문에 시간의 여유도 없이 속도감 있게 새로운 신랑 신부를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예식장 문화를 꼬집은 적이 있다.
산업사회의 시스템을 갖춘 이런 결혼식보다는 모교 운동장에서 천막을 치고 축하객들에게는 국말이 밥과 막걸리를 대접하는 결혼식을 제안했었다. 이를테면 모교의 은사를 주례로 모시고 예식을 치른 후, 마을 사람들 전체가 참여하여 하객들과 함께 즐기는 축제로 승화되는 그런 결혼식을 꿈꿔왔던 것이다.
꽃이 피어서 산에 갔지요/ 구름 밖에 길은 삼십 리/ 그리워서 눈감으면/ 산수유 꽃 섧게 피는 꽃길 칠십 리.
- 곽재규(시인)의 '산수유 꽃 필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