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화폐 발행, 일본 업체만 좋은 일 하나

ATM 핵심부품 국산화 앞둔 업계 "조금만 늦췄으면..." 아쉬움 토로

등록 2005.04.20 11:58수정 2005.04.2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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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새 지폐 발행 시기를 놓고 미묘한 의견차가 드러나고 있는 한국은행과 현금자동입출금기 제조업체. 사진은 한국은행 휘장(왼쪽)과 현금자동입출금기의 핵심부품인 BRM.

새 지폐 발행 시기를 놓고 미묘한 의견차가 드러나고 있는 한국은행과 현금자동입출금기 제조업체. 사진은 한국은행 휘장(왼쪽)과 현금자동입출금기의 핵심부품인 BRM.

한국은행의 새 은행권 발행이 자칫 일본업체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새 화폐의 발행은 필연적으로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교체를 수반하는데, 새 화폐를 인식할 수 있는 핵심부품을 여전히 일본 등으로부터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새 화폐를 인식하는 핵심부품의 국산화 일정과 한국은행의 새 화폐 발행 일정이 일치하지 않아 이같은 우려는 결국 현실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양쪽의 일정을 비교하면 한국은행의 신권 발행 일정이 다소 앞서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1만원권 신권 발행시기는 2007년 상반기. 1만원권 화폐는 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지폐단위다. 하지만 국산 핵심부품을 탑재한 새 현금자동입출금기의 첫 출시 시기는 2007년 말이나 돼야 가능하다. 따라서 당분간 핵심부품의 수입은 불가피하다.

개당 1000만원짜리 고가부품 일본 수입에 의존... 2007년 국산화 예정

논란이 되고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의 핵심부품은 BRM이라는 '횡방향 지폐 환류모듈'이다. 지폐의 입출과 인식을 담당하는 센서다. 모듈 하나 가격만 무려 900만원에서 1000만원 수준에 이를 정도로 고가다. 우리나라 현금자동입출금기 제조업체는 이 모듈을 일본으로부터 거의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다.

2003년 당시 이 모듈의 대(對)일 수입총액은 대략 9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000억원 정도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해 산업자원부는 조폐공사, 전자부품연구원, LG엔시스, 청호컴넷, 노틸러스 효성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 2003년부터 국산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국산 모듈 개발에 이르기까지 투입되는 총 투자비용은 3년에 걸쳐 약 140억원. 정부가 80억원을, 민간이 60억원을 매칭펀드 형태로 투자해 집중 개발할 계획이었다. 현재 이 사업은 차근차근 계획대로 진행되면서 올 2007년 1월이면 국산화 모듈이 빛을 보게 된다. 다만 제품 상용화 시기는 2007년 말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새 1만원권과 1000원권을 2007년 상반기로 못박으면서 관련 업체로부터 볼멘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일정을 조금만 늦추면 현금자동입출금기의 증가된 수요에 맞춰 전량 국산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말로 새 화폐 발행늦추면 ATM기 국산으로 교체 가능


한국은행의 새 화폐 발행 계획에 따라 전국적으로 교체해야 할 현금자동입출금기의 물량은 4만여대로 추정된다. 여기에 현금출금기(CD)까지 포함하면 7만대 규모에 달한다. 4만대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약 4000억원의 신규 시장이 창출되는 셈인데, 이 가운데 상당수를 일본 제품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횡방향 지폐 환류모듈 국산화 사업단의 주간사를 맡고 있는 노틸러스 효성 기술연구소의 전석진 부소장은 "국산화 모듈은 2007년 1월에 개발이 완료되고 상용화는 2007년 말이나 가능하다"면서 "화폐도안 변경이 갑작스럽게 발표돼 아직 어느 정도나 내부 부품을 바꿔야 할지 아직 판단을 할 수가 없다"고 당황스러워했다.

전 부소장은 "현재 보도되는 기사들을 보면 생각보다 화폐 도안이 많이 바뀌는 것 같다"면서 "그렇게 되면 인식 모듈 뿐 아니라 시스템 전체를 바꿔야 할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대일 수입액이 예상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당장 새 지폐가 발행되게 되면 일본으로부터 계속 수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체의 설명이다.

문제는 정책당국이 관련 일정 등을 전혀 조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핵심부품 국산화를 주도해 온 정부는 "신권 발생시기에 맞게 바꿔가고 있다"며 문제없다는 반응이지만, 정작 한국은행은 "굳이 국산화 일정에 맞출 필요가 있느냐"며 협조할 뜻이 없음을 내비치고 있다.

산자부 "일정과 맞춰놨다" - 한국은행 "국산화 일정 맞출 이유없다"

산업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핵심모듈 국산화 사업단에 조폐공사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새 지폐가 나오더라도 그에 따라 적절히 대응하도록 프로그램 돼 있다"며 "지폐가 바뀌게 되면 (인식이) 되도록 해 놨다"고 장담했다.

반면 한국은행의 발권정책 담당자인 박운섭 차장은 "(발행시기 등을) 따로 협의하지도 않았다"며 "굳이 시기를 100% 맞출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권 발행으로 현금자동입출금기가 일제히 교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산화 전에는 수입을, 국산화 뒤에는 국산제품을 활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박 차장은 "2007년에 신권을 발행하더라도 구권을 2년 동안 써야 하기 때문에 기존 ATM기를 사용해야 한다"며 신권 발행시기와 현금자동입출금기 핵심모듈의 국산화 일정을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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