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국공합작' 공적은 천수이볜?

중 후진타오와 대만 국민당 주석 롄잔의 국공수뇌담을 앞두고

등록 2005.04.24 13:30수정 2005.04.25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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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최대야당인 국민당의 주석 롄잔이 중국공산당 총서기 후진타오 초청으로 4월 26일부터 7일 일정으로 대륙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방문에서 롄잔은 난징을 방문, 국민당 창당의 아버지인 쑨원 묘지를 참배하고 연이어 상하이와 베이징을 방문해 후진타오와 국공수뇌회담을 예정하고 있다.

이번 후-롄 회담은 1949년 당시 장제스 정권이 대만으로 물러난 후 이루어지는 56년만의 "국공회담"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특히 이번 회담은 최근 중국정부가 대만 천수이볜 정권을 겨냥해 제정한 이른바 "반분열국가법"으로 인해 양안관계가 긴장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성사되었다는 점에서 양안간 정치세력들간의 역학구도에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공통의 적에 대항한 '국공합작' 사례들

이런 맥락에서 20세기 전반부 중국혁명기 동안 이루어졌던 양당간 이른바 '합작'의 역사적 사례들은 2005년 국공양당의 수뇌회담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까지 국공 양당은 이른바 "반제반봉건" 투쟁에 있어 각각 신중국 건립의 후보자임을 자처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민당은 분명 공산당에 비해 선두주자였다.

국민당의 원류인 중국혁명당은 이미 신해혁명의 주요한 행위자였으며 1919년 중국국민당으로 개칭한 이래 1949년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었다. 이에 비해, 1921년 코민테른의 주도하에 건립된 중국공산당은 그 수적, 조직적인 면에서 국민당에 비해 미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국공양당 모두는 단독으로는 전 중국을 석권할 역량을 갖추기 힘들었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국공양당간의 역사적 "애증관계"가 시작된다. 즉, 국공양당은 신중국건립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위해 대립각을 형성하였으나 만약 그와 같은 목표를 침해하는 "공공의 적"이 출현할 때면 그것에 대항해 어김없이 통일전선을 형성했던 것이다. 동일한 논리로 공통의 적이 소멸되면 국공양당은 또다시 격렬한 상호대립의 관계를 보였다.


1924년 국공양당의 제 1차 국공합작은 군벌이라는 공통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1921년에 창당된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군소정당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공산당에게 국민당과의 합작은 적절한 정치적 기회가 되었다.

사실, 쑨원의 국민당으로서도 통일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소련의 지원이 필요했으며 이런 맥락에서 코민테른의 영향하에 창설된 공산당과의 합작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23년 1월 쑨원-요페 선언을 통해 국공양당은 합작의 대강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공합작은 군벌이라는 공통의 적이 사라진 후 또다시 애증의 공식으로 빨려들어갔다. 즉, 북벌이 상당한 성과를 보인 1927년 국민당 총통인 장제스는 상해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국공합작을 붕괴시키면서 국공양당은 다시 10여년간의 치열한 상호투쟁기에 접어들게 된다.

공산당은 쟝시성 접경 산악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겨 해방구를 구축하고 이에 국민당은 수차례의 대규모 포위공격을 감행한다. 결국, 공산당은 1934년 10월 북서부 산시성으로 만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정을 단행하고 이듬해 연안에 도착 근거지를 구축하게 된다.

바로 이때 등장한 일본제국주의는 또 한번 국공양당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일본은 1931년 만주에 괴뢰정권인 만주국을 세우고 점차 중국전역으로 그 침탈을 기도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시 국민당 장제스 정권은 이른바 "안내양외(安內攘外)"의 구호하에 먼저 공산당을 일소한 후 항일을 한다는 정책을 표방한다. 그러나 장제스 정권의 이와 같은 반민족적 정책은 중국내의 강렬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1936년 12월 12일 장쉐량(그의 아버지인 만주군벌 장쭤린은 일본군의 폭탄테러로 사망했다)이 주도한 "서안사변"으로 국공양당은 제 2차 국공합작에 이르게 된다.

장정 후 척박한 연안의 산악지역에서 자신의 세력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있던 공산당으로서도 국공합작은 자신들의 생존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며 그 결과 2차 국공합작은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까지 일련의 긴장관계 속에서도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공통의 적 일본의 소멸은 국공양당으로 하여금 상호가 피할 수 없는 라이벌임을 또 한번 각인시킨다. 결국, 수년간의 치열한 투쟁을 거쳐 1949년 국민당은 대만으로 도피하고 공산당은 신중국 건립의 주체자가 되었다.

그 후 국공양당은 각각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을 지탱하는 주축으로서 수십년간의 대립기를 갖는다. 당연히 동서냉전의 국제적 상황은 그와 같은 대립을 고착화시키는 주요 변인이었다. 공산당은 국민당에게는 "도적"이었으며, 국민당은 공산당에게 미제의 "주구"였다.

동일한 논리로 80년대 동서냉전의 완화 및 붕괴가 현실화되자 국공양당의 관계 역시 극단적 대결을 지양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1992년 양안간 반관반민기구(대륙: 해협회/ 대만: 해기회)의 접촉형식으로 이뤄진 이른바 "구이공식(九二共識)"을 통해 한개의 중국원칙에 국공양당은 다시 한번 의견일치를 보게 된다.

그러나 1988년 장제스의 아들 장칭궈(당시 국민당 총통)가 사망한 후 대만 출신 리덩후이가 새 총통에 취임하면서부터 국공양당관계는 다시 미묘한 긴장관계로 접어든다. 공산당으로서는 리덩후이가 비록 국민당의 총통이지만 국민당 1세대 지도부와 달리 국공양당간 공통인식인 한 개의 중국 원칙에서 이탈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우려는 실제로 1995년 리덩후이의 미국방문을 통해 현실화되기에 이른다. 공산당 지도부는 이에 대항해 대만해협 미사일 발사훈련 등을 통해 소위 "실질적 대만독립 세력(暗獨)"에 대한 경고를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공통의 적은 천수이볜?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00년 5월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후보 천수이볜의 당선은 국공양당의 관계에 일대 전환을 발생시킨다. 이제 다시 국공양당에게 "대만독립세력(臺獨)"이라는 공통의 적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대선에서 패배한 국민당지도부 및 그 세력들(당시 국민당 총통후보는 롄잔이었으며 유력한 당내후보였던 송추위는 신당을 만들어 출마하였다)은 이제 대륙공산당이 아니라 집권여당인 대만 민진당과 정권경쟁을 벌여야 했으며, 대만독립에 단호히 반대하는 공산당의 존재는 국민당의 귀중한 정치적 자산으로 역할하게 된 것이다.

특히, 천수이볜의 저격 자작극 논란에 휩싸였던 2004년 3월 총통선거에서 국민당 후보 렌잔이 또다시 패배하게 되자 국민당은 더욱 공산당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공산당으로서도 천수이볜 정권의 견제에 있어 국민당과의 연계는 매력적인 전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2005년 5월 국공수뇌회담이 56년만에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다. 70여년 전 국공합작기 시절 국민당의 역량이 공산당을 압도했다면 현재는 그 상황이 반대라는 역사적 아이러니와 함께.

백여년에 걸친 국공양당의 애증관계! 분명히 대항관계에 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상대의 존재가 바로 내 자신의 존재이유이기도 한 국공양당의 역사적 애증관계! 그것을 바라다 보는 제 3자의 입장은 한편 흥미롭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선거 때만 되면 명패를 바꿔 다는 한국 정당들의 자화상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부러움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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