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흔적없이 죽이는 양계장 분쇄기 없었다"

< PD수첩> '김형욱 양계장 암살설' 현장검증... 3일 밤 방영

등록 2005.05.03 13:12수정 2005.05.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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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암살한 특수공작원의 인터뷰를 실은 <시사저널> 808호 표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암살한 특수공작원의 인터뷰를 실은 <시사저널> 808호 표지. ⓒ 시사저널

MBC < PD수첩>이 "양계장 분쇄기에 집어넣어 닭모이로 처리했다"는 이른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양계장 암살설'에 대해 현장검증한 내용을 3일 밤 11시 5분 방영한다.

< PD수첩>은 이날 '현장검증! 김형욱 양계장 암살' 편에서 북파공작원 출신 이모씨가 김씨를 프랑스 파리 근교 한 양계장 사료분쇄기를 통해 살해했다는 <시사저널> 보도의 사실확인을 시도한다.

지난 4월 11일자 <시사저널>은 이 같은 내용을 암살자 자신이 고백했다며 이모씨 인터뷰를 덧붙이고, 실종 전 김형욱씨와 밀접한 관계였던 김경재 전 의원 인터뷰로 이를 뒷받침했다. <시사저널>은 이모씨 증언을 토대로 배우 최지희씨가 김형욱씨를 파리로 유인했다고 보도했다.

<시사저널> 보도 이후 대부분 언론은 이를 크게 인용했지만 진실규명에 책임이 있는 국가정보원은 대체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최지희씨는 <시사저널>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며 명예훼손으로 간주,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양계장 암살설' 주장 이모씨 중앙정보부 위장간첩이었나

그런 와중에 < PD수첩>은 이모씨가 주장하는 암살 공작 루트를 이모씨, 이를 보도했던 정희상 <시사저널> 기자와 동행, 현장검증을 했다. 애초 “프랑스는 인권범죄나 반인륜범죄의 공소시효가 없어 위험하다”며 동행을 꺼려하던 이모씨는 취재진 설득으로 파리로 갔고, 자신이 주장하는 김형욱 납치 현장에 섰다고 < PD수첩>측은 밝혔다.

이모씨는 자신이 중앙정보부 위장간첩이었으며 여러 차례 북파 활동을 했고 김일성 전 주석을 만나기도 했다고 진술한 인물. 또 부친이 조총련에서 중요한 인물이었고 북한에 들어가 활동한 고위인사였다고 하기도 했으며 청와대에 불려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술잔을 받은 게 김형욱 암살 결심을 한 계기라고까지 진술했다.


이 같은 이모씨 주장은 과연 어디까지 사실인가. < PD수첩>은 이모씨 주장의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해 그의 고향부터 출신학교 등 곳곳을 취재했고 부친이 활동했다는 일본 취재, 북파활동을 했다는 동료 등도 취재했다. 이에 대해 < PD수첩>측은 "일부는 사실로 확인됐으나 그의 주장을 모두 믿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최지희씨, 김형욱씨 유인 사실인가


< PD수첩>은 이어 김형욱 암살 당시(79년) 여배우 최지희씨를 납치현장에서 봤다고 한 이모씨 진술 확인에도 나섰다. 최씨가 김형욱을 파리로 유인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 김형욱에게 러브레터를 보내 파리에서 만나자고 제안한 여자가 있다는 사실은 김경재 전 의원이 쓴 책에도 기술돼 있다. 이씨는 이를 여배우 최씨라고 지목한 것이다.

< PD수첩> 제작진은 오랜 설득 끝에 최지희씨를 직접 만나 주장을 들었다고 밝혔다. 최씨는 김형욱씨가 실종되던 날 자신은 일본에 있었다며 당시 그녀가 쓴 일기장을 증거로 제시했다. 일기장에는 그날 비가 왔다고 적혀 있다. 제작진은 이를 일본 현지에서 당시 기상청 기록 등에서 당일 비가 내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김형욱은 양계장에서 살해됐나

< PD수첩>은 김형욱씨가 사라진 카지노와 이모씨가 주장하는 납치지점인 카지노 옆 레스토랑에 대한 검증도 시도했다. 또 '양계장 암살설' 주장의 핵심이 되는 양계장 존재 및 사료분쇄기 설치 여부와 사료분쇄기로 살해가 가능한지 등을 프랑스 현지 관계자, 전문가들 인터뷰를 통해 점검했다.

최승호 PD는 "현장 검증을 시도한 결과, 최지희씨 주장은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며 "'양계장 암살설'은 사실 믿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게 우리 제작진의 결론이었다"고 말했다. 최 PD는 "프랑스 관련협회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해보면 양계장용 사료분쇄기로 사람을 흔적 없이 죽이는 일은 불가능하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프랑스 현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사료분쇄기가 도입된 것은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며 "그나마 양계장에 있는 분쇄기도 조개껍질을 갈 수 있는 수준으로 사람을 형태도 없이 갈아 없애는 분쇄기는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보도됐을) 초기 국정원이 사실확인에 나섰더라면 좋았을 텐데 검증을 거치지 않은 주장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도록 둔 게 아쉽다"며 "'양계장 암살설'은 사실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무책임한 보도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기자 "< PD수첩> 결론 확인할 만한 내용 없었다"

그러나 이번 취재를 동행한 정희상 <시사저널> 기자는 < PD수첩> 제작진과 상반되는 주장을 펼쳤다. 정 기자는 "양계장 암살설이 불가능했고, 그런 분쇄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뒷받침 할만한 취재내용이 없었다"며 "이번 취재를 현장검증으로 인정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정 기자는 "파리 근교 양계장 존재 확인과 관련, 사전 섭외도 안돼 있었고 4월 28일 파리에 도착한 뒤 다음날 하루밖에 취재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 기자는 "당일 현지에서 섭외한 양계장은 이모씨가 주장했던 위치와 규모가 전혀 달랐다, 나중에 파리근교에 7개 양계장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현장에 가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기자는 '사람을 죽일 만한 분쇄기가 없었다'는 < PD수첩> 취재내용에 대해서도 "그 내용은 < PD수첩>이 호텔에서 협회 관계자를 전화로 인터뷰한 것이고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정 기자는 "현장 가서 양계장 검증도 못했고, 드라마 연출하듯 취재하면서 나도 그 배역 중 하나에 불과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정 기자는 "이모씨와 최지희씨 행적을 알아보기 위해 일본 현지에서 출입국기록과 숙박기록 등을 확인하려 했지만 열람을 거부하거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60∼70년대 분쇄기 살해가 범죄 수법으로 쓰였는지 아닌지에 대해 당시 프랑스 범죄통계 등을 통해 검증해봐야 한다"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 PD수첩>이 성급하게 보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기자는 '양계장 암살설'을 주장한 이모씨가 이번 < PD수첩> 취재 이후 국정원이 조사한다면 당당히 응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79년 당시 동행했던 곽모씨 존재도 공개할 용의가 있다는 것.

정 기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섣불리 결론을 내리기보다 국정원에게 진상조사하도록 넘겨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정 기자는 이번 현장검증 동행기와 < PD수첩> 보도의 문제점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기사를 다음 주 발행될 <시사저널>에 싣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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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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