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국립정신병원 전경. 외부 환경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 정신질환 환자들의 치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국가인권위원회
환자들은 병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따라서 생활공간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가 무척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두 병원 모두 매우 공간이 협소하다는 평가다. B정신병원은 침상과 침상 사이가 지나치게 좁았고, A정신병원은 주어진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이 기거하는 등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정신질환 수용자들은 외부와의 소통도 자유롭지 못했다. 두 병원 모두 외부 전화 통화는 주1회 정도만 허용되고, 그것도 간호사나 보호사가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외부로 보내는 편지 역시 대부분 의사의 검열을 거쳤다. 의사들은 이러한 조치를 치료 목적상 어쩔 수 없다고 했으나, 관련 전문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환자의 건강한 신체와 사회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도 부족했다. 두 병원 모두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설비를 갖춘 대표적인 정신과 시설이지만 환자들이 운동이나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부족했다. 야외활동이 어려운 한겨울에는 심각한 운동 부족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병동에서 환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제 등 일상용품에 대해 병원측은 모두 병원에서 제공한다고 했다. 하지만 B정신병원의 환자들은 상당수가 직접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박조치, 환자가 이유와 기간 인지 못해
강박조치는 정신과 관련 의료시설에서만 행해지는 독특한 치료 행위다. 강박조치는 통상 환자를 침상에 눕히고 묶어 놓는 형태를 말한다. 정신과 의사들에 따르면 강박조치는 매우 중요한 치료방법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서구와 우리나라의 강박조치 정도를 비교하면, 서구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 빈도나 강도, 시행 시간이 매우 빈번하고 강력하며 장시간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었다.
A정신병원과 B정신병원을 비교했을 때, A정신병원이 강박조치의 시행 횟수나 기간 등이 더 짧았다. 무엇보다 신체 구속이 치료 수단으로 실시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구속사유에 대한 환자의 인지 정도가 A정신병원은 높은 편이었다. B정신병원의 경우 내규상 강박조치를 24시간까지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 환자들의 간호사 기록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3~4일간 지속적으로 강박조치를 시행한 사실도 발견됐다.
환자가 구속 사유를 모르는 경우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단순 처벌 위주의 구속이거나 환자와 의사의 관계 및 치료 환경이 매우 불량한 경우다. 병동 내부의 분위기도 치료 효과와 관련되는 중요한 환경 조건이다. 이에 두 정신병원은 상당히 대조적인 분위기를 보여 주었다. B정신병원은 조사관이 방문했을 때 내부는 매우 조용했으며, 환자들은 침상에 정좌한 채 움직이지 않았고, 방장 및 실장으로 보이는 환자들이 병실 입구에 한두 명씩 정렬해 있었다. 마치 군대에서 점호나 내무반 점검 때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었다.
반면 A정신병원은 조사관들이 병동에 들어서자 환자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가 하면 심지어 조사관들을 껴안으려는 환자들도 많았다. 자유분방하다 못해 상당히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러한 차이는 평소에 환자를 관리하는 병원측의 태도를 반영하며 환자들 내부의 관계가 상이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환자들 내부 분위기는 병원 운영과 관련이 있다. 환자들의 일부는 병원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A정신병원은 봉사원이라고 불리는 환자들이 병원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참여는 운영에 부가적인 요소였으며, 그것이 다른 환자에 대한 강압적인 통제로 이용된다는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비해 B정신병원에서는 환자들로 구성된 실장과 방장이 환자들을 통제했다. 실장 및 방장 제도는 우선 환자 개개인의 의견이나 요구사항의 전달과정이 실장→방장→간호사 등 직원→의사로 이루어지면서 정신병원의 의사소통 구조가 상명하달식의 위계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의 요구가 의료진에 전달되지 않거나 환자에게 과중한 책임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
환자들 내부의 불평등 현상과 권력관계는 치료환경 및 인권보호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이라 할 수 있다. B정신병원은 실장과 방장으로 불리는 환자들이 다른 환자들의 강박조치에 참여하면서 그 시행 기간이나 이유 등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행위인 강박조치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시행하는 사람은 간호사나 보호사에 한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환자에 대한 강박조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환자 내에 평등한 관계를 무척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병원 내 신체질환자에 대한 처우도 문제로 지적됐다. 병원에서는 신체질환자를 합병증 환자로 부르며 별도로 수용하고 있지만 이들의 질병에 대한 치료비는 지급되지 않는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의료급여는 환자 1인당 동일액을 지급하는 정액수가제로 운용되고 있다. 신체질환자의 진료비용은 별도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이런 구조는 중환자들에 대한 처우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실제 A정신병원의 중환자실에 수용된 환자들은 몸이 어린아이처럼 오그라들어 있었다. 장시간 누워 있는 환자들은 매일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펴 주어야 하는데 현재의 의료비 체계로는 그러한 간호가 불가능해 생긴 일이다.
최소한의 생존 위한 기본 규정 미비
지금까지 소개한 두 병원의 실태는 국가인권위가 지난 2002년 10~11월에 진행한 조사 결과다. 이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환자의 인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안이다.
정신병원은 질병 치료를 위해 환자를 수용하면서도 입원 환자의 최소한의 생존 및 인간적인 삶을 위한 기본적인 규정조차 마련하고 있지 않았다. 조사단은 이번 조사에서 정신의료기관 체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사의 판단에 대한 검증 시스템 △정신의료기관의 시설 기준 및 운영상의 기준이라고 판단했다.
조사 결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단기적 과제로는 △강박조치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 마련 △증상별 환자의 분리 수용 △보호자의 보호 의무 및 접근권 강화·확대 △화재나 재난에 대한 대비 등이 지적됐다. 이와 함께 장기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정신의료 기관의 의료 인력 확충 △개방형 구조로 시설 변경 △재활 및 치료 프로그램의 실질적 운용 △국가의 지도 감독 강화 △정신질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 개선 △지역보건의료 단위 치료 및 재활시설의 설치 등이다.
국가인권위는 이 실태조사와 그간의 진정사건 조사를 토대로 조만간 정신과 시설에 대한 종합적인 인권 개선방안을 권고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에는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공청회가 열리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4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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