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한은 염려치 말게. 시일이 다소 걸리더라도 소상한 내막을 캐는데 열중하도록. 대신 닷새에 한 번은 반드시 기별을 띄우게. 알아낸 바가 있든 없든 말이지. 그리고 평안도 쪽에 들어서는 절대 감영이나 기타 영읍의 신세를 지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야. 이 일은 좌포청에도 알리지 않았고 병조에서도 모르는 일인즉, 타 관읍에 노출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니. 자네들이 위기에 빠졌거나 긴급을 요할 때만 부득이하게 관의 힘을 빌게."
"예, 알겠습니다. 하오면 연락 방법은 예전 그 방법으로 하면 되겠사옵니까?"
종사관 이덕기가 물었다.
"그래, 각 역의 역졸을 이용하되 문서는 반드시 밀봉하여 인(印)을 박아 둘 것이야. 이 종사관은 포졸 둘을 거느리고 황해 감영에 머물며 해주 일대를 기찰하고 개성에도 수하 둘을 보내 기찰토록 하게. 그리고 이곳 포청과 평안도 사이를 잇는 연결 역할을 잘 해주도록 하고.
조 부장은 수하 셋을 거느리고 평안도 평양에서 안주에 이르는 서로(西路)일대를 탐문토록 하게."
"예."
"저......포장 나으리."
종사관 이덕기는 호쾌하게 대답을 마쳤으나 부장 조필두가 말꼬리를 흐렸다.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우포장 신명순이 물었다.
"그것이......다름이 아니오라, 개성 쪽 기찰도 제 수하를 보냈으면 하옵니다."
조필두가 종사관 이덕기의 눈치를 슬금 살피며 대답했다.
"이봐, 조 부장! 포청 나졸에 네 수하 내 수하가 어디 있는가. 이 사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종사관 이덕기가 포도대장의 눈치를 보면서도 분을 참지 못하고 나직이 쏘아붙였다.
조필두 이놈이 완력 좀 있고 따르는 무리가 많다고 사사건건 안하무인이다. 겸록부장과 무료부장, 가설부장을 합쳐 70명 가까운 부장 중에 수석 노릇을 하는 처지라고 종6품 종사관 알기를 아주 개떡으로 아는 것이다.
단단히 벼르고는 있으나 워낙 완력이 출중하고 강단이 있는 놈이라 설 건드려서는 망신만 당하기 십상이었다. 더구나 따르는 무리도 많으니 자칫 불편한 관계를 맺었다간 한참 아랫것들에게 따돌림 당하기 뻔한 상이라 어찌하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어쩐 일인지 포도부장에게 조 부장의 불경한 언행을 일러 바쳐도 아랫것들 속성이란 게 매양 그런 거 아니냐며 늘상 끼고 돌 뿐이었다. 그러던 차인데 포장 앞에서 오늘은 대놓고 이러니 위신 때문이라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종사관 나으리. 애초에 개성 쪽 기찰은 제가 청해 놓고 있던 터입니다요. 이미 수상한 감을 잡아 놓았구요. 행여 물정 모르는 분이 나섰다가 괜히 일을 그르칠까 두렵습니다요."
조필두도 얌전하게 말하고는 있으나 대놓고 빈정대고 있었다.
"무.....무엇이라? 이, 이놈이......"
이덕기는 분을 참지 못했다. 이놈의 속셈은 뻔했다. 어떤 핑계를 대든 개성에 가기만 한다면 홍삼 잠상을 잡아 오는 건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근래까지 중국과의 포삼(홍삼)무역에 대해 감액, 증세 정책을 고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역관과 한양 상인의 이익을 보장해 주고 있었다. 따라서 포삼무역의 생산자이며 대청무역을 주도했던 개성상인과 의주상인은 자연 밀수상인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었다.
황해, 평안도의 감영과 병영은 사신이 왕래하는 큰 길과 주변의 사잇길 모두에 파수꾼을 두어 첩문(帖文)이 없고 관인이 찍히지 않은 포삼 꾸러미는 샅샅이 잡아내도록 하고는 있었으나 개성부와 의주부 및 서로(西路)의 각 영읍은 각기 그들의 재정을 마련키 위해 이들의 홍삼 밀조와 밀수출을 눈감아 주고 형편이었다.
개성의 거의 모든 포주가 직접 삼을 재배하고 있었고 인삼을 쪄내는 증포소를 운영하고 있으니 불법으로 홍삼을 밀조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눈만 제대로 뜨면 한두 놈 옭아 매는 건 일도 아닌 것이다.
포삼수출량 감소에 따라 얼마 전 개성부에서 일어난 11,000여 근 홍삼 밀조 사건도 지방 관아에서 적발한 것이 아니라 우포청에서 파견된 경포교가 적발한 것이었다. 그런 노린자 지역에 자기 수하를 보내 공로를 독차지하겠다는 조필두의 얄팍한 수작이다.
"그래, 개성 쪽은 조 부장이 알아서 사람을 보내도록. 아무래도 짚히는 바가 있는 모양이군?"
"끙......"
오늘은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고 벼르던 종사관 이덕기는 포도대장의 한 마디에 할 말을 잃었다. 그저 어금니가 아리도록 깨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오늘 준비를 마쳐서 내일은 떠날 수 있도록 하게. 닷새에 한 번 기별하는 것 잊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종사관 이덕기와 부장 조필두가 동시에 대답하고 물러났다.
대청을 내려와 신을 신으며 이덕기가 조필두를 쏘아 보았다. 조필두는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입을 비죽하고는 무시해 버렸다.
'기다려라. 어쩌면 이번 기찰길이 내 운을 틔워줄지도 모르겠다. 네깟 종사관, 내 발 아래 누이리라!'
조필두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포졸들의 수직소로 가벼운 걸음을 놓았다.
덧붙이는 글 | 내일부터는 제4장'해도(海島)' 편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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