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 한번 당하고 '남는 장사' 한 그룹 2인자들

불법자금 전달하고 대부분 집유... 그나마 사면으로 '면죄부'

등록 2005.05.07 21:01수정 2005.05.0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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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청와대가 불법 대선 자금 전달자들을 사면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의 사면을 두고 정치권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가려 경제인들의 사면복권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강금원 회장 뒤에 거론된 기업인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삼성그룹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LG그룹 강유식 부회장,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롯데쇼핑 신동인 사장, 현대자동차 김동진 부회장, 대한항공 심이택 회장, 아시아나 박찬법 사장, 두산 이재경 사장. 이들은 모두 그룹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돈 전달자, 그룹 핵심 중의 핵심

a 삼성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LG 강유식 부회장, 아시아나 박찬법 사장.(왼쪽부터)

삼성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LG 강유식 부회장, 아시아나 박찬법 사장.(왼쪽부터)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 본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의 제2인자다. 1주일이나 열흘에 한번씩 이건희 회장을 독대하고, 삼성 구조조정본부를 8년 넘게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령탑이다.

이학수 본부장은 여야 대선캠프에 385억원의 불법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삼성 답게 무기명 채권으로 불법자금을 전달해 자금추적을 어렵게 했다는 게 당시 검찰의 설명이었다.

삼성은 2003년 말 대선자금 수사로 곤욕을 치른 이학수 본부장을 2004년 초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를 두고 궂은 일을 맡은 대가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불법자금 150억원을 차떼기로 전달한 장본인인 LG그룹 강유식 부회장도 구본무 회장을 그림자 보좌하는 2인자다. 언급되는 것 만으로도 부끄러운 차떼기 150억원을 전달한 대가로 강유식 부회장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후 그룹에서 강유식 부회장의 위치는 더욱 확고해졌다.

100억원의 대선자금을 전달한 혐의로 징역2년에 집유4년을 선고받은 김동진 현대차 총괄부회장 역시 현대차그룹의 핵심인사다. 이들 3명은 이건희, 구본무, 정몽구 회장이 불입건 처리되는 데 막대한 공을 세웠다.


총수가 가장 신임해, 돈 전달자 역할을 했던 그룹 2인자들은 대부분 불구속기소에다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롯데쇼핑 신동인 사장은 징역1년에 집유2년, 아시아나 박찬법 사장은 징역10월에 집유2년, 대한항공 심이택 회장은 징역8월에 집유2년, 두산 이재경 사장은 징역8월에 집유2년을 각각 선고 받았다.

한진 조양호 회장은 집행유예를 받고도 항소한 끝에 벌금형으로 선처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가 재벌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이들은 총수 대신 검찰에 몇 번 출두하고, 언론에 불법자금 전달자로 찍혀 창피를 당했지만 결국 총수의 신임과 함께 그룹에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청와대는 재계가 사회투명협약 체결에 참여했고, 경제 살리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경제인 사면을 단행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하고 있지만, 어딘지 석연치 않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은 맞는 이야기지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인에게 면죄부를 줘도 된다는 데 동의할 국민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불법정치자금 제공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은 기업인들의 특별사면이 언급되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특혜와 선처를 누렸던 이들에게 또 특혜를 주는 것"이라면서, "지금 국가경제가 어려운 이유중의 하나가 기업인들에게 선고된 집행유예와 벌금형 때문인가"라고 반문했다.

참여연대는 이어 "정부는 재벌의 이익을 위해 법집행을 유보하거나 친재벌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다"면서, "바로 그러한 친재벌적 태도가 재벌기업인들이 다수인 이번 사면복권 시도로까지 이어지고 나아가 '참여정부'가 재벌공화국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이와 함께 무분별한 대통령의 사면권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오는 12일 이후 최종 사면 대상을 결정할 예정이다. '부정부패사범에 대한 사면, 복권을 엄격히 행사하여 법 집행의 실효성을 확보하겠다'던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시험대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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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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