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65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5.09 08:19수정 2005.05.09 19:12
0
원고료로 응원
이번에 청국에 넘길 물량이 홍삼 2000근이었다. 지구력이 강해 등짐을 많이 싣는다는 나귀도 200근을 넘겨 싣지 못함을 생각하면 2000근이란 족히 나귀 10마리 분이 넘는 양이었다.

권기범은 이 행렬이 개성서 여기까지 기찰에 걸리지 않고 도달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이미 밥 먹듯 해상을 통한 거래를 성사 시키고 있는 개성 상단에서 이만한 대비 없이 일을 진행하지는 않을 터였다. 듣기론 채소 짐바리의 중간 이하에 홍삼을 담아 위장한다고도 하였고 관인을 위조하여 인증서인 첩문을 아예 도용한다고도 하였다. 또 의주나 해안에 이르는 요로의 관읍 치고 송상의 뇌물을 먹지 않은 곳이 없으니 설사 적발된다 해도 무슨 수가 있기는 있을 것이었다.


짐꾼들은 어둠 속에서도 능숙하게 나귀의 짐을 풀어 쪽배에 옮겨 실었다. 모선에 신호를 하자 쪽배의 줄이 당겨졌다.

[추르르-]

쪽배는 물뱀처럼 파도를 타넘어 금새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다시 모선에서 신호가 왔다. 하역을 마친 모양이었다. 이번엔 이편에서 줄을 당기자 금세 쪽배가 해안으로 끌려왔다.

그러기를 수 차례 반복하며 짐을 옮겼다.

"외람된 소립니다만, 왜 이번 거래 물목량이 급작스레 늘었는지.......? 마련해 둔 물량이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다른 상단의 물목도 수소문하고 저희쪽 증포소에서 무리하게 작업을 하여 겨우 양을 맞추기는 했습니다만은......"


짐꾼들의 작업 광경을 지켜보며 개성 상단의 행수 서문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정이 그리 되었습니다. 서둘러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시일이 촉급하다 하여 개중에 파삼(把蔘)이 섞여 있진 않겠지요?"


권기범이 확인하듯 물었다.

조선 내에서 자연산 인삼뿐만 아니라 가삼재배가 성행하자 가공기술도 발전했다. 4~5년 된 가삼을 밭에서 뽑은 것을 생삼(生蔘) 혹은 수삼(水蔘)이라 하는데 이것은 수분을 포함하고 있어 오래 보관할 수 없다.

따라서 생삼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자연 건조 시켰는데, 이를 건삼(乾蔘) 혹은 백삼(白蔘)이라 한다. 그러나 건삼은 오래되면 부서지는 단점이 있어 조선에서는 일찍이 크고 작은 인삼을 혼합하여 끓여 말리는 방법을 썼고, 이를 파삼(把蔘)이라 하였다. 조선에서는 양삼각(洋蔘角)이라 하여 몸체는 작으나 결백하고 품질이 좋은 자연삼을 선호했으나, 중국인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파삼을 선호했다.

인삼을 팽조(烹造)하는 방법은 17세기 이전부터 알려졌던 것인데, 인삼 재배가 시작되면서 생삼 건조는 끓여 말리는 방식에서 쪄서 말리는 증조의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즉 빈 공간에 시렁을 만들어 그 위에 생삼을 얹은 다음 시렁 밑에서 숯불을 피워 말렸는데 이를 홍삼(紅蔘)이라 하였고, 이렇게 홍삼을 제조하는 곳을 증포소(蒸包所)라 하였다.

"그런 염려는 놓으십시오. 아무리 밀무역이라 하나 오늘날 송상이 이만치 행세를 하는 데는 크고 작은 장사를 불문하고 오로지 신의로써 행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서문길이 점잖게 답변하고는 있으나 껄끄러운 마음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거 괜히 죄송합니다. 못 믿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

권기범 스스로도 오늘따라 평소답지 않게 조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익숙한 육상이 아닌 바다라는 점도 그랬고, 거래대상이 워낙 부가가치가 큰 물목이다 보니 자연 신경이 쓰였다.

"이해는 합니다. 저희에게도 홍삼 2000근이란 게 적은 물량은 아닙니다. 정조 대왕 이래 홍삼을 대청 공식 수출품으로 공식화한 '포삼제' 시행 이후로도 포삼 1근의 가격은 천은(天銀) 100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은화 1냥은 동전 3냥 3전 내지4냥 2~3전으로 거래되고 있었으니 포삼 1근의 가격은 동전 300냥에서 400냥에 달하고 이것을 법정 미가(米價)로 환산해도 60석 내지 80석에 달하는 고가품이라는 이야깁죠.

이런 홍삼이 청나라에 가면 적게는 은화 350냥 정도에서 많게는 은화 700냥씩에 팔리게 됩니다. 동전으로 환산하면 1100여 냥, 많게는 2300냥에 달하니 이 정도 물량이면 파는 입장에서나 사는 입장에서나 쌍방간에 부담이 큰 거래임은 사실이지요. 그러니 대장께오서 예민해 계신 것 또한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번 거래에 나설 때마다 저도 부담이 되기는 매한가지니까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AD

AD

AD

인기기사

  1. 1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징역1년·집유2년' 이재명 "이것도 현대사의 한 장면 될 것"
  2. 2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3. 3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