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도가 막히고 심지어 화장실이 고장 나도 배관공 부르기가 쉽지 않다. 고장난 자동차 수리도 제때 받기 어렵고 요리사나 식당 종업원도 웃돈을 주고 모셔야 할 형편이다. 트럭 운전자도, 미용사도, 공장 근로자도 모자란다.
기능공들의 몸값이 억대 연봉을 호가하면서 대학을 나온 전문직 종사자보다 임금이 더 높다는 이야기까지 나돈다. 기술직 노동자뿐 아니라 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교사, 엔지니어, 토목기사 등 사회 전 분야, 전 직종에 인력이 달린다. 호주 전역에 일할 사람이 모자라는 것이다.
사정은 10년 후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지표와 경고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해결의 가닥이 잡히지 않으면 머지 않아 경제구조 자체가 거꾸러질 판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최근 호주 노동력 부족율은 6.2%로 지난 1979년 이래 최악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파악한 인력 부족분은 전 업종에 걸쳐 총 14만8000개. 10년 단위 평균 노동 인력 빈 자리 9만9000개를 훨씬 넘어선 수치다.
그중 비숙련 노동인력은 8만7000개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로 이 가운데 일반 노동자 또는 공장 조업자, 기계공 등이 1만4000명 정도, 관광업종과 서비스 및 외식업계에 당장 7000명 가량의 인력이 충원되어야 할 형편이다.
호주 경제는 1960년대 이후 80, 90년대를 거치면서 꾸준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누려왔다. 최근 14년간은 평균 3.7%의 성장률을 보이며 매년 17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어 왔고 실업률도 30년래 최저(5.1%)를 기록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최근 노동력 부족현상은 경제 호황과 이에 따른 구인난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15년 전만해도 사회 전 업종, 전 분야의 32%를 차지하던 45세 이상 고령 근로자의 비율이 10년 후면 85%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즉 이들이 은퇴하기 시작하는 향후 5년에서 10년 사이에 다음 세대가 그 자리를 메우지 못할 경우 노동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불어 닥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고령화와 그 결과 노동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단기 처방은 기술이민을 늘이는 것이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사람을 외국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호주는 농촌 지역과 기술 분야, 심지어 의료진까지 이미 '수입 인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앞으로도 단계적으로 총 2만여명의 기술 이민자들이 호주로 들어올 계획이다. 하지만 기술 이민쿼터를 늘이는 것으로 인력난을 보완하려는 방안에 대한 호주 본류 사회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호주인의 절반 가량은 외국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썩 내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보다는 활용 가능한 경제활동 인구를 사회로 끌어내는 일에 정부가 중점을 두길 바라고 있다.
15~69세 연령층 가운데 현재 노동력에 참가하지 않고 미취업 상태에 있는 숫자는 약 380만명. 이 중 120만명은 취업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분류됐지만, 실제로는 6만5000명 정도가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수치는 정부의 인력난 해소정책이 국내 노동시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나머지 110만명의 근로의욕을 저해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호주는 노동활동인구 6명 중 1명이 실업수당으로 먹고살며, 노동력의 7% 가량은 보다 지급액이 높은 장애인연금으로 살아간다. 각종 산업재해를 포함한 장애수당 수령액은 40년 전에 비해 3배가 늘어난 상태이다.
여성들의 경우 일하는 대신 홀부모 수당을 받아 생계를 꾸리는 숫자도 45만명에 달한다.
한마디로 일할 의사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정부의 지나친 복지혜택이 근로 의욕마저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각종 복지 수당을 줄여야만 유휴 노동력들이 먹고 살기 위해 비로소 일터로 나오게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정부는 복지예산을 대폭 삭감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한 기술이민 문호 개방이나 국내 유휴노동력의 적극 활용 방안은 나름대로 한계가 있다.
장기적이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아이들을 많이 낳아 길러 미래의 국가 동량이 되게 하는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호주의 출산율은 1960년대 초 3.6명에서 최근 1.7명으로 떨어졌다. 특히 여성 노동인구가 가장 많은 시드니는 0.86명으로 가장 낮다.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감소되면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여 고령인구로 편입되는 시점인 10년 후면 그들을 대신해 일을 하고 부양할 후세대가 사라져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는 가임여성의 출산 독려를 위해 지난 해 7월 1일부터 신생아 한 명당 3천 호주 달러(한화 약 240만원)의 출산보너스를 지급하고 있다. 출산 장려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출산보조금 지급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출산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며 다소 흥분한 상태이다. 파격적인 출산 수당 지급 발표가 있고 나서 9개월 만에 바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출산 계획이 없던 젊은 부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며 조심스런 낙관론을 펴고 있다.
작년에 태어난 호주 국내 신생아는 25만5000명으로 지난 9년래 산부인과가 가장 붐볐던 것으로 집계되자, '약발'이 받는다고 판단한 정부는 출산 보너스 금액을 2, 3년 내 자녀 한 명당 최고 5천달러(약 400만원)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만약 쌍둥이를 낳을 경우 출산수당도 ‘따블’이 됨은 물론이다.
그런가 하면 자녀가 많은 가정은 높은 세금감면 혜택도 주고 있다. 일례로 소득이 같다 해도 무자녀 독신가정은 한 주 7달러의 감면 혜택이 주어지는 반면 자녀가 셋인 가정은 104달러의 세제 혜택을 받는다.
한편 정부는 취업주부의 가장 클 걸림돌이 되는 육아문제 해결을 위해 놀이방과 유치원을 비롯, 초등학교 내 탁아시설을 확충하고, 자녀를 둔 기혼여성들의 직장 복귀를 쉽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 등 '사후 관리체계'까지 야무지게 약속하고 있다.
미래 인력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가정 복지 분야에 편성된 정부 예산액은 총 1억1700만 달러.
국가 경제구조 존립을 위한 궁극적 해결안이 될 출산율 증가를 위한 정부의 안간힘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국민 정서에 호소하며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도 방편 중 하나이다.
"하나는 아빠를 위해, 또 하나는 엄마를 위해, 그리고 한 명은 국가를 위해 셋을 낳아 달라(One for mom, one for dad, one for the country)"는 피터 코스텔로 재무상의 농담조의 호소는 호주의 자녀 셋 낳기 권장 캐치프레이즈로 자리잡았다.
덧붙이는 글 | 기사의 일부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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