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만한 통나무만 골라 톱으로 잘랐다.전희식
나는 때로 나무꾼이다. 그래서 오늘은 나무를 했다. 그런데 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산을 등지고 시내로 갔다. 요즘 나무꾼은 산으로 가지 않고 도시로 나간다. 동화 속 나무꾼은 지게와 도끼를 가지고 다니지만 요즘 나무꾼은 트럭과 고무 바를 가지고 다닌다.
아침 일찍 시내 공사장에서 연락이 왔었다.
"어이 전씨. 나무 가져 가. 이번에는 통나무야."
통나무라는 말에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부랴부랴 트럭을 끌고 나갔다. 정작 나에게 보여 준 통나무는 이름만 통나무지 사실을 썩은 고목나무들이었다. 산비탈을 허물고 건물을 짓는 모양이다. 작년쯤에나 벌목 했을 성 싶은 나무들이라 고자리가 묵어서 불땀도 없어 보였다.
다음 일들이 바쁜지 일꾼들이 몰려와 큰 나무들은 공사장 포크레인으로 실어주고 작은 나무들은 어깨에 메고 와서 실어주었다. 쓸 만한 나무는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래도 가리지 않고 다 싣고 왔다. 그것이 이분들에 대한 예의라 여기기 때문이다.
예의 때문만이 아니다. 폐목을 돈 들여가며 원칙대로 처분하지 않고 때때로 외부의 눈을 피해 땅 속에 묻는다고 들었다. 공사판에서 나무를 땅에 묻는 것은 위반이다. 지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썩은 나무도 우리 집에 가져오면 버리는 법이 없다. 도시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해도 일단 우리 집에 오면 귀한 손님이 된다. 뭐든 그렇다.
썩은 나무야 비 좀 더 맞혔다가 바수어서 질소질이 많은 거름자리에 섞어버리면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 농사를 제대로 짓는 농부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자원이 된다. 나뭇잎도, 잡초도, 흙도, 비닐도, 심지어 똥오줌도 그렇다. 마당 구석에 작게나마 미나리꽝을 만들면 설거지물이나 빨랫물도 다 폐수라는 오명을 벗는다.
트럭을 몰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 내내 톱으로 나무를 잘랐다. 단단하고 곧은 것은 같은 크기로 잘라 따로 쌓았다. 나는 지금 나무로 우리 집 토담을 만드는 중이다. 통나무의 굵기나 무늬를 살펴가며 짚을 썰어 넣은 황토와 잘 쌓아올리면 담장에 원하는 도형을 새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