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84회)

등록 2005.05.10 10:01수정 2005.05.1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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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장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으나 채유정은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만했다.

"분명 그 돌 상자 안에는 두 개의 유물이 들어 있었어. 안 박사가 이 따위 갑골조각을 위해 목숨을 바치진 않았을 거야."


김 경장이 턱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나머지 유물을 네가 빼돌린 것 다 알고 있다. 순순히 내놓으시지."

"무슨 일로 그러시는 거요? 도대체 당신 정체가 무엇이오?"

그러자 채유정이 허리에 손을 잡고 크게 웃다가 문득 정색을 하며 말했다.
"내가 누구라 생각하고 있지?"

"당신은 돌아가신 안 박사님의 제자가 아닌가요?"


"제자이긴 하지. 하지만 난 일부러 그의 제자가 되었었지."

"그게 무슨 말이오?"


"안 박사가 우리 땅에 있는 피라미드에 관심을 가지고 유물을 발견하려는 것을 알고 일부러 그에게 접근했지."

"일부러 그에게 접근을 했다면…."

김 경장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옅은 탄식을 내뱉었다. 채유정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늘게 입술을 씰룩이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우린 그의 발굴 능력을 높이 샀던 게요. 그래서 그가 유물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유물을 빼앗으려 했었지."

"그런데 실패했다 말이군."

"난 그의 제자가 되어 부지런히 따라다녔지. 하지만 박사는 언제부터인가 날 의심하기 시작했어. 그래서 날 교묘히 따돌리고는 그 유물을 감추었던 거야."

"그럼 박사님을 죽인 것도?"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어. 우린 그를 협박하여 유물을 찾으려고 했지. 하지만 박사는 오히려 그 유물을 세상에 알리겠다면서 협박을 하더군. 그래서 할 수 없이 처치할 수밖에 없었지."

문득 김 경장의 양미간이 심하게 좁혀졌다. 그의 얼굴은 침통함과 분노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관자놀이를 씰룩이는 것이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럼 당신이 조선족이라는 것도 다 거짓이라 말이야?"

"완전한 거짓은 아니지. 우리 어머니가 바로 조선족이니까 내 몸에도 그 피가 반쯤 흐르고 있다고 봐야지."

"그런데 왜 중국의 편에 서서 일하는 거요?"

"조선족이, 아니 조국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다는 거야. 걸핏하면 여기 와서 거드름을 피우고, 돈으로 우리 자존심을 팍팍 죽여 놓곤 하지. 난 그런 조국보다는 차라리 우리 중화민국을 택한 것이오."

그렇게 말하는 동안 문이 열리면서 두 명의 사내가 방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둘은 모두 건장한 체격으로 위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두 사내가 김 경장을 향해 달려들 자세를 취하자 채유정이 손을 내저었다. 서둘지 말라는 표시였다. 그녀는 시선을 다시 김 경장을 향한 채 총을 들어 보였다.

"이제 순순히 그 유물을 내놓으시지."

"내놓지 못하겠다면?"

"그러면 당신 목숨은 우리 가져가겠지."

채유정인 손에 총을 든 채 가까이 다가왔다. 그 뒤의 사내도 양옆으로 늘어섰다.

"내가 죽으면 그 유물을 영영 얻지 못 할 텐데."

"그것 또한 우리가 바라던 바이기도 해. 너도 박사와 같이 죽어주면 그 유물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테니까."

순간 김 경장의 턱이 완강하게 다물어졌다. 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려고 입술 근육을 뒤틀었으나 어색한 것은 감출 수 없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후, 그는 눈을 가늘게 홉뜨며 그녀의 자취를 좇고 있었다. 이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벽 한쪽에 나 있는 작은 창문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다.

그는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몸을 옆으로 돌리는가 싶더니, 이내 힘껏 뛰어 창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와장창, 창문이 깨어지며 그 파편이 안으로 튀는 바람에 방에 있던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겨우 몸을 일으킨 채유정이 창가로 달려갔다. 깨어진 유리조각 사이로 몸을 내밀었으나 밖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 밑으로 양철지붕이 덧대어져 있었다. 김 경장은 창문을 깨고 나와 그 지붕을 굴러 밑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채유정의 얼굴이 밀랍 같이 창백해지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어서 잡아와."

그러자 서 있던 두 명의 사내가 얼른 밖으로 뛰쳐나갔다. 빠른 속도로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왔지만 어디에도 김 경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이 깨진 밑을 보았으나 떨어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채유정도 밖으로 나와 있었다.

"어디에 숨은 거야? 저기서 떨어졌다면 그 충격도 만만치 않을 텐데…."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으나 역시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채 멍하니 서 있는데 어디선가 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건물 뒤쪽에서 흰 먼지를 날리며 승용차 한 대가 옆으로 스쳐갔다. 그 차는 건물을 휘돌아 나가 순식간에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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