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 학교 멋지지?"

딸과 함께 교정을 거닐면서

등록 2005.05.11 00:37수정 2005.05.1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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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에 가서 올해 대학에 들어간 딸을 만났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도권에 있는 대학을 가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딸의 대학입학식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딸이 다니는 대학이 어떻게 생겼을까 대학생활은 잘하고 있을까 항상 궁금했는데 모처럼 나도 서울 나들이를 할 기회가 생겨서 딸이 다니는 학교를 찾았다.


학교 정문이 마치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을 보는 것처럼 그리스식 기둥으로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교정은 분홍색의 진달래, 빨간 철쭉으로 화려한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 학교가 내 딸이 다니는 학교라고 생각하니 나의 모교에나 온 것처럼 마음이 흐뭇했다.

딸이 지방대학에도 합격을 해서 어디로 보낼까 고심하다가 서울로 결정을 했지만 무척 돈이 많이 들었다. 기숙사비 등의 부담이 벅차서 그냥 지방의 대학을 보내버릴까 후회도 했지만 공원처럼 아름다운 동산의 교정을 보니 이 학교에 보내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쨌던가. 50년대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서 어렵게 학교를 다녔다. 가난 때문에 실업계 학교를 다녀야 했고 고교를 졸업한 후 취업을 했다. 한창 낭만을 즐겨야 할 나이인 20살 어린 나이에 취업을 해서 어른들의 눈치, 꾸중을 들어가며 직장생활을 했다.

군 제대 후에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간대학을 다녔다. 직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교로 달려가도 항상 지각이었다. 거의 24시간을 가득 운용하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만도 한데 여전히 마음의 여유를 모르고 살고 있다. 아마 살아온 습성 때문인가 보다.

나는 즉 475세대다. 70년대 당시, 통기타에 청바지를 입고서 낭만과 여유를 즐기는 대학생들이 그리 부러웠다. 그런 주간에 다니는 대학생들을 볼 때 무척 열등감에 사로 잡혔다. 군대에서도 최전방에서 생활했는데 대학에 다니다 온 친구들은 교련혜택을 받아서 2-3개월 빨리 제대를 했다.


하루하루가 지겨운 군대생활에서 2-3개월 빨리 나가는 것은 대단한 혜택이었다. 그들을 보면서 젊은 나이일 때라 열등감에 괴로워 했다.

그래서 내 자식만은 서울로 대학을 보내 내가 못한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기게 하리라 다짐을 했다. 내가 못 이룬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 싶었다. 그 목적을 어쩌면 내 딸이 이루어 주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했다.


딸을 만났다. 딸이 팔짱을 끼었다.

"아빠, 우리 학교 멋지지. 캠퍼스가 공원 같아서 휴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놀러와. 그래서 우리학교를 00랜드라고 해."

딸의 말투는 몇 개월 만에 상냥한 서울 말씨로 변해 있었다. 무뚝뚝하고 선머슴 같아서 무척 걱정을 했는데 녀석은 상냥한 아가씨로 변해 있었다.

딸은 점심을 하면서도 우리 학교가 어떻고 내내 자랑이다.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다. 딸을 키울 때 생각들이 가을 산들바람이 코스모스 줄기를 스치는 것처럼 스쳐갔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아침이면 시내버스를 타고 부모님 댁에 딸을 맡기고 출근을 했다.

또 저녁이면 딸을 데리고 왔다. 딸은 끌려 다니면서 자랐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가 끝나고 도서관에서 12시 넘어까지 공부를 하는 딸을 데려오는 일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했다.

a 딸과 함께 사색의 광장에서

딸과 함께 사색의 광장에서 ⓒ 조갑환

딸과 팔짱을 끼고 캠퍼스교정을 걸으면서 확 트이고 꽃들로 덮인 광장이 나왔다. 그 광장에 긴 탑이 서있고 탑에 '사색은 진리를 꿰뚫고'란 글이 새겨 있다.

"아빠, 이곳을 사색의 광장이라고 해. 이 곳에서 사진 한 장 찍어."

딸과 팔짱을 끼고 꽃을 배경으로 사진 한판을 찍었다. 이런 게 자식 키운 보람이로구나. 새삼스레 느껴졌다. 계절의 여왕 5월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덧붙이는 글 | 딸의 학교에 가서 딸과 함께 교정을 거닐며 행복에 젖어 보았다.

덧붙이는 글 딸의 학교에 가서 딸과 함께 교정을 거닐며 행복에 젖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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