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경북 포항에서 실시된 한미합동군사훈련 모습. 미군 공기부양선과 장갑차가 해안으로 접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미국 관리들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이 사안은 '미국의 주권 사항'이라는 인식이다. 미군이 한국에 있을 때 주한미군이 되고 그들의 유일한 임무는 한국을 방어하는 일이지만, 미군이 한국을 떠나면 그들은 더 이상 주한미군이 아니며 이에 따라 임무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펜타곤의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미군이 한국의 영토·영해·영공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처럼 단순화할 문제는 아니다. 가령 중국-대만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해 오산에 있는 미국 공군기가 출격할 경우 이는 한국의 주권을 침해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안보도 위협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이 관리는 구체적인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작년에 만난 중국의 전문가의 지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년 7월 상하이에서 만난 중국의 안보전문가는 "주한미군이 양안 분쟁에 개입하는 것은 한국이 미군의 영토 사용을 허용하는 것"이라며, 이는 한국이 중국에 대해 위해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미-중 사이의 인식 차이는 크다. 동북아에서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대단히 민감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flow-in' 강조하는 미국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현상은 이 계획이 한국에도 이롭다는 점을 최근 미국 정부가 부쩍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주한미군의 해외 이동(flow-out) 뿐만 아니라 해외 주둔 미군의 한반도 투입(flow-in)에도 주목하라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이는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장 강조하는 논리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논리는 간단하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미국 군사력 전체에 해당되는 것이고, 한반도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한국 방어를 위해 한반도 밖의 미국 군사력도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도 이롭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주한미군의 해외 차출을 의미하는 'flow-out'을 정당화하는 유력한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 즉, 한국이 유사시 주한미군 이외의 미국 군사력도 투입(flow-in)되는 것을 희망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주한미군의 차출을 반대하는 것은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인터뷰에 응한 미국 국방부 관리의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는데, 일본이 주일미군의 한반도 출동을 반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그 얘기는 중국과 대만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은 주한미군의 출동에 대해 노(No)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Yes)"라고 답했다.
이처럼 미국이 '투입'을 근거로 '차출'을 정당화하려는 것에서 두 가지 차원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노무현 정부가 전략적 유연성을 비롯한 주한미군과 관련한 협상을 벌일 때, "한국의 안보에 이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미국에게 '역이용'당할 소지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우려에 대해 미국은 110억 달러를 투입해 주한미군의 전력을 증강시키고 한국 이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도 한반도 유사시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왔다. 이를 통해 주한미군의 '변형'(transformation) 및 차출을 포함한 전략적 유연성을 관철해온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미국의 일방적인 해석이다.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 증원군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계획'이다. 신속성과 그 성격에 있어서 차이가 있더라도, 미국 군사력의 추가적인 '투입'이 새로운 계획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주한미군의 '차출'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상당 부분 합의해주었다고 생각했다가 노 대통령이 3월 8일 연설에서 이를 강하게 부인하는 발언을 하자 펜타곤은 충격과 불만에 휩싸여 있다. 그리고 협의는 하겠지만 주한미군의 해외 차출은 미국의 주권 사항이기 때문에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초기 대응부터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낸 노무현 정부는 뒤늦게 대통령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직접 나서서 제동을 건 상황이다. 안 그래도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협상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외교안보팀의 안일함과 대통령 및 외교안보팀 사이의 의사소통 체계의 왜곡, 그리고 NSC의 정책 조율·총괄 기능의 부실함으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딜레마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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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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