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 처방으로 모과나무를 살리다

모과나무 진딧물 자연 퇴치법

등록 2005.05.11 22:45수정 2005.05.1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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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편하고 재산 가치가 높다는 아파트를 마다하고 단독주택에서 살기를 고집하는 까닭은 나무와 꽃, 푸성귀를 심고 가꾸는 보람과 즐거움 때문이다. 26년째 살고 있는 지금의 누옥(陋屋)에도 비록 몇 평 안되는 뜰이지만 여러 종류의 초목이 어울려 자라고 있다. 면적에 비해 너무 많은 나무와 풀들이 심어져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때로는 식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대충 살펴 봐도 키가 7~8m에 이르는 감나무 두 그루와 자두나무, 모과나무 등 과수에 나이테가 최소한 30개는 그어졌을 라일락과 열매를 심어 싹을 틔워 지금 한창 예쁘게 자라는 마로니에, 벽돌담을 타고 지붕까지 기어 오른 능소화, 울타리를 감싼 덩굴장미 두 그루를 포함한 색깔이 다른 세 종류의 장미, 강원도 오지에 사는 친구가 보내준 마가목과 구기자, 인동초 등이 어렵사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a 근접해서 본 모과나무 꽃.연분홍에 보라색이 약간 감돈다.

근접해서 본 모과나무 꽃.연분홍에 보라색이 약간 감돈다. ⓒ 이덕림

화초류로는 군자란, 관음죽, 벤자민 등 화분에서 자라는 것 말고도 수선화, 산나리, 참나리, 금낭화, 백합, 옥잠화, 둥굴레, 미역취와 돌 틈마다 자리를 잡은 돌단풍과 맥문동, 범의 귀와 함께 돌나물, 돌미나리, 부추, 더덕덩굴이 자란다. 쑥과 박하는 괄시를 받으면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굳건히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사이 사이 틈새를 비집고 제비꽃 무리가 부지런한 번식력을 자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자급자족하는 상추, 쑥갓, 케일, 파슬리, 고추와 호박, 작두콩, 토마토가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쪽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좀 더 관심을 갖고 돌보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과일나무 쪽이다. 감나무와 모과나무엔 해마다 늦가을에 빼놓지 않고 '예비(禮肥)'를 준다. 열매를 맺느라 애쓴 수고에 대해 사례하는 의미에서 주는 거름이라 그렇게 부른다. 어릴 적 할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달리 정이 가는 것이 모과나무다. 15~16년생쯤 된 것으로 몇 년 전 집을 새로 짓느라 마당을 파내는 지인(知人)의 집에서 옮겨다 심은 것이다. 10리 가까이 되는 먼 데서부터 손수레에 싣고 아내와 함께 빗속에 끌고 밀며 옮겨 오느라 애쓴 추억이 서려 있는 나무다. 그새 내 팔뚝보다도 더 굵게 자란 세갈래 줄기와 거기서 뻗어 나간 가지들이 가을이면 두 주먹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열매를 10여 개씩 매단다.

그런데 건강하게 잘 자라던 모과나무가 시름시름 추레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잎사귀들이 뒤틀리고 가지 끝의 연한 새 잎들이 누렇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 담 위에 올라서서 오그라든 잎사귀들을 뒤집어 찬찬히 살펴 보았다. 벼룩만한 흰색과 연녹색의 작은 벌레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진딧물이었다. 햇살이 퍼지면서 진딧물의 활동은 한층 활발해졌다. 나무 줄기를 타고 긴 행렬을 이루면서 어떤 것들은 위쪽으로 기어 올라가고 또 어떤 것들은 나무 아래로 기어 내려가느라 분주했다. 신문지를 둘둘 말아 열심히 쳐냈지만 그야말로 중과부적이었다.

a 모과나무 잎과 꽃.꽃이 지면 씨방이 드러나면서 열매로 커간다.

모과나무 잎과 꽃.꽃이 지면 씨방이 드러나면서 열매로 커간다. ⓒ 이덕림

"이것들을 무슨 수로 소탕한다?"


옆집 목수 아저씨가 보다 못해 자기네 집에 분무기가 있으니 진딧물약을 사다가 뿌리라고 권했다. 그러나 나무 밑에서 자라고 있는 상추, 케일 따위 푸성귀들을 생각할라치면 함부로 농약을 쳐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자연친화적으로 퇴치하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를 거듭하던 끝에 퍼뜩 "테이프를 붙여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포장용 누런 색 테이프를 20cm 정도 길이로 잘라 간격을 두고 나무 줄기에 둘둘 감아 붙였다. 물론 접착 부분이 위로 드러나게 해서 말이다. 얼마쯤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 테이프에는 무수한 진딧물이 옴짝달싹 못하고 붙어 있었다. 테이프에는 진딧물과 함께 개미들이 달라붙어 꼼짝 못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테이프는 개미와 진딧물의 공동묘지였다.


a 모과나무 줄기에 붙인 투명 테이프.접착부분을 위로 해 진딧물과 개미가 달라붙게 했다.

모과나무 줄기에 붙인 투명 테이프.접착부분을 위로 해 진딧물과 개미가 달라붙게 했다. ⓒ 이덕림

'테이프 아이디어'는 대성공이었다. 지나가던 어르신 한 분이 설명을 듣고 나서 똑같은 문제로 골치를 썩었다면서 당장 그대로 해봐야겠다고 좋아하신다.

모과나무는 점차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연분홍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더니 어느새 검지손가락 마디만큼 커진 결과(結果)가 잎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농약을 치지 않고 진딧물을 퇴치하는 방법에 대해 2회에 나눠 쓰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농약을 치지 않고 진딧물을 퇴치하는 방법에 대해 2회에 나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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