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모과 대풍의 비밀

자연친화적 '진딧물 테이프 구제법' 주효했다

등록 2005.11.11 16:48수정 2005.11.12 14:48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 서북쪽에 누옥(陋屋)을 장만해 한 세대에 이르도록 붙박이로 사는 것은 마당가 담장을 따라 나란히 뿌리를 박고 자라는 세 그루의 유실수가 정을 붙이도록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a 만추의 양광을 받아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과. 노란색이 짙어가면서 향기도 짙어진다.

만추의 양광을 받아 탐스럽게 익어가는 모과. 노란색이 짙어가면서 향기도 짙어진다. ⓒ 이덕림

해마다 가을이 되면 주황색과 황금색의 탐스런 결실을 맺어 집 옆을 지나는 이들의 탄성(歎聲)을 끌어내 그 소리를 들은 집주인을 흐뭇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은연중 가격(家格)을 높여주기도 하니 생각할수록 고마운 나무들이다. 한 그루는 15년생 모과나무요, 두 그루는 11년생 동갑내기 대봉감나무다.

올해는 모과나무가 어느 해보다 더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가지가 찢어지게 달렸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대단한 '다산(多産)'이다. 하루가 다르게 샛노란 병아리 색으로 바뀌며 익어가는 요즘엔 정말 가지가 찢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런 마음으로 쳐다보곤 한다.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볼라치면 파란 하늘과 노란 모과가 어울려 생생한 정물화(靜物畵)로 다가온다.

a 한가지에 옹기종기 달린 모과.

한가지에 옹기종기 달린 모과. ⓒ 이덕림

뿌리로부터 세 가닥으로 갈라져 나와 정립(鼎立) 형태를 이룬 우리 집 모과나무. 세 갈래의 줄기가 서로 경쟁을 벌이듯 모과를 매달고 있다. 기둥줄기에서 다시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열매들이 몇 개나 될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세기도 어렵지만 "무릇 나무에 달린 열매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세는 게 아니다"라는 할아버지 말씀이 떠올라 대충 눈대중으로만 훑어보더라도 한 줄기에 서른 개씩, 적게 잡아도 아흔 개는 될 것 같다.

이는 한창 청년기에 이른 모과나무의 왕성한 생산력 덕택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지난 봄 내내 한바탕 전쟁을 치르며 진딧물로부터 나무를 지켜낸 결과일 것이다. 모과나무는 진딧물이 잘 끼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왜 특별히 진딧물이 모과나무를 좋아하는지는 모르지만 새 순이 돋기가 무섭게 진딧물이 꼬인다. 이때 진딧물을 제대로 막지 못하면 그 해 모과나무는 결국 '불임(不姙)'이 되고 만다.

a "참 많이도 열렸다" 지나는 이들마다 한 번씩 쳐다보고 감탄하게 만드는 15년생 모과나무.

"참 많이도 열렸다" 지나는 이들마다 한 번씩 쳐다보고 감탄하게 만드는 15년생 모과나무. ⓒ 이덕림

집집마다 대개 모과나무 한두 그루씩은 있는 우리 동네 골목에서 유독 우리 집 모과나무만 대풍을 이룬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충분히 근거 있는 얘기이다. 진딧물 피해를 입지 않은 건강한 잎사귀들이 열심히 광합성(光合成)을 함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진딧물에 시달린 이웃의 모과나무들이 결실을 맺지 못한 채 아직도 추레한 모습으로 서 있는 모습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진딧물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테이프 구제법(驅除法)'이 그 비결이다. 농약을 쳐서 진딧물을 없애는 쪽을 택하지 않고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진딧물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에서 생각해낸 것이 '테이프 법'이었는데 그 방법이 주효했음을 확인한 보람이 크다('테이프 구제법'은 지난 5월 이 난을 통해서 소개했다. 2005년 5월13일자 기사 참조).

a 모과나무 전경.가지가 두엇 찢기고 비바람에 낙과가 생긴 뒤라 처음보단 모과 숫자가 줄었다.

모과나무 전경.가지가 두엇 찢기고 비바람에 낙과가 생긴 뒤라 처음보단 모과 숫자가 줄었다. ⓒ 이덕림

'테이프 법'을 다시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4~5월 나무에 새싹이 나면서 진딧물이 꼬이기 시작할 때 모과나무 줄기에 널찍한 포장용 테이프를 붙여 진딧물과 진딧물의 공생(共生) 파트너인 개미, 둘 사이의 접촉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이때 끈끈한 면이 겉으로 드러나게 테이프를 붙여야함은 물론이다. 테이프는 위 아래로 서너 군데 나누어 붙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 곳을 통과했더라도 다음 단계에서 걸리게 하기 위해서다.


테이프에는 먼저 개미들이 달라붙고 이어서 개미들의 보살핌을 못 받게 된 진딧물들이 나무를 타고 내려오다가 잡힌다. 흔히 진딧물은 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습기 찬 날 아침, 특히 비온 뒤끝 햇볕이 따스하게 비쳐오기 시작할 때면 모과나무를 타고 기어오르는 무수한 진딧물 무리를 볼 수 있다. 진딧물을 퇴치하니 모과나무는 기쁜 듯 많은 꽃잎을 피워냈다.

만추의 양광(陽光)을 받고 황금빛으로 숙성해가는 모과. 나무 아래에 서 있으면 있는 듯 없는 듯 은은한 모과 향내가 풍겨온다. 소탈한 웃음을 띈 편안한 사람의 얼굴 같은 과일 모과. 모과를 볼라치면 달관과 후덕함, 익살과 너그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주관(主觀)일까. 모과의 향기는 바로 거기에서 기인(起因)한 것이리라.

모과는 결코 과물전 망신을 시키지 않는다. 도리어 과물전을 향기롭게 할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