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문자 메시지와 편지를 보내는 남편

무뚝뚝한 외모에도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따뜻합니다

등록 2005.05.14 12:34수정 2005.05.14 14:5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평소에도 별로 말이 많지 않은 남편은, 첫눈에 보이는 외모에서도 과묵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남편은 눈에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와 1학년인 아들아이에게 수시로 휴대폰 문자를 보내 세심한 관심과 사랑을 보여 줍니다.


어느 날인가는 공부방에서 수업중인 딸아이의 휴대폰에 날아든 남편의 문자를 공부방 선생님께서 보시고는 "은빈이 아빠께서는 어쩌면 이렇게 좋은 말을 문자로 보내 주셨을까?"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남편의 소리 없는 자상함에 웃음을 지었던 적도 있습니다.

a 중학교 2학년인 은빈이입니다.

중학교 2학년인 은빈이입니다. ⓒ 한명라

며칠 전, 두 아이들의 중간고사 기간 중에 남편이 새벽녘에 집으로 돌아와서 간단한 메모형식의 글을 써서 아이들 책상위에 올려놓았던 편지입니다.

"은빈, 수고 많다. 아버지 시험 잘 쳤다 하니 진짜 기분 좋다. 최선을 다해서 은빈이 친구들로부터 공부 잘한다, 시험 잘 쳤다 들으니 보람되고, 고맙고, 기쁘다. TOP이 되지 못해도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것이 소중하고 고마운 일! 사랑하는 딸! 지금이 끝이 아니고 계속 노력해서 발전하는 딸 되길 아버진 빈다."

"승완! 시험 잘 쳤다니 고맙네! 아들! 자신감 가지고 항상 자신만만하게 최선을 다하는 아들이 되길! 시험 마무리 잘하고!"


그리고 중간고사가 끝난 5월 12일 부터 두 아이들은 같은 기간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 은빈이는 2박 3일 동안의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같은 중학교 1학년인 승완이도 2박 3일 동안 수련회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남편은 또 두 아이에게 간단한 편지와 함께 용돈을 봉투에 넣어 책상위에 올려놓아서 먼 길 떠나는 아이들에게 그 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a 우리집의 크고 작은 전쟁의 주인공인 승완이입니다.

우리집의 크고 작은 전쟁의 주인공인 승완이입니다. ⓒ 한명라

그 내용을 소개하자면, 먼저 딸아이에게 쓴 편지입니다.


"TO : 사랑하는 은빈에게
중간고사 시험 치느라고 수고 많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결과는 아쉬움이 없는 법. 아버지의 딸로써 최선을 다했으면 책망(야단치는 것?)은 의미 없음.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감 가지고 최선을 다 했으면 후회는 있을 수 없다! 여행 잘 다녀오고 자기 자신을 잘 갈무리하는 딸이 되길 아버진 매일 기도한다. 용돈 잘 쓰고, 맛있는 것 친구도 사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다음은 아들아이에게 쓴 편지입니다.

"TO : 아들!
중간고사 잘 쳤지? 성장판이 열리듯이 우리 사랑하는 아들 눈 뜬 영혼이 되길 아버진 항상 기도하고 희망한다! 현재처럼만 씩씩하고 열심히 하는 아들이 되길 축원하고 소원한다. 아침에 누나, 엄마 말로써 괴롭히지 말고, 누나, 엄마 돌보는 남자가 되길! (양보와 배려) 아버진 아침에 누나, 엄마, 승완이 싸우는 이야기 다 듣고 있음! 즐거운 여행되길 빈다!"


평소 늦은 밤에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잠든 아이들의 이마를 쓰다듬어주고, 이불도 잘 덮어주던 남편은 아이들 없는 이틀 밤이 못내 허전하다고 그 속마음을 저에게 내비칩니다.

이제 오늘 오후가 되면 두 아이들은 조금은 피곤한 모습으로 여행에서 돌아 올 것입니다. 남편의 바람처럼 아이들이 여행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들어서 정신적인 키가 쑥쑥 자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처럼 무뚝뚝해 보이는 외모만큼 남편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쉽게 드러내어 놓고 표현하지 못하지만, 그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2박 3일 동안 고요 속에 잠겨 있던 우리 집은, 오늘 오후부터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나듯 투닥투닥 크고 작은 전쟁 속으로 빠져 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쟁들조차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사랑과 관심으로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 주어야겠지요?

덧붙이는 글 | 다음(daum)의 블러그 "낮은 울타리의 마당 넓은 집"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daum)의 블러그 "낮은 울타리의 마당 넓은 집"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들려 드리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2. 2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3. 3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대세 예능 '흑백요리사', 난 '또종원'이 우려스럽다
  4. 4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영부인의 심기 거스를 수 있다? 정체 모를 사람들 등장
  5. 5 트럼프는 비판하면서 윤석열은 감싸 온 보수 언론 트럼프는 비판하면서 윤석열은 감싸 온 보수 언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