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모두 스님이에요?"

숙부도 사촌도 불가에 귀의한 후배네 가족 이야기

등록 2005.05.16 09:17수정 2005.05.1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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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 가족은 김해에 있는 00사에 다녀왔습니다. 애초 계획은 삼천포에 있는 00사에 다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포항에 살고 있는 후배가 김해 00사에 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지스님이 자기 사촌형님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00사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습니다. 연등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아내가 연등을 한 개 시주했습니다. 후배 부인이 접수를 받고 있습니다. 저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얼굴이 밝습니다. 건강도 좋아 보입니다. 후배 부인은 작년에 무슨 병인가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완치가 된 모양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후배가 우리 가족을 데리고 경내를 구경시켜줍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절이지만 그래도 품위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대웅전 앞에 섰습니다. 많은 신도들이 부처님께 절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두 손을 모으는 것으로 부처님께 경의를 표했습니다.

후배가 주지스님을 모시고 제게로 옵니다. 저는 합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지스님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저는 얼른 주지스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스님의 손이 따뜻했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게 마치 동자 스님 같습니다.

a 부처님 오신 날 먹은 절밥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 먹은 절밥입니다 ⓒ 박희우

우리 가족은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줄이 여간 긴 게 아닙니다. 족히 백 미터는 넘어 보였습니다. 점심은 비빔밥이었습니다. 절편이 두 조각입니다. 파란 떡과 하얀 떡입니다. 반찬은 배추김치와 열무김치입니다. 그런데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이미 간이식당은 사람들로 빼곡합니다. 우리 가족은 대웅전 뒤편으로 갔습니다.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앉았습니다.

우리 가족만 그렇게 점심을 먹고 있는 게 아닙니다. 많은 신도들이 절 여기저기에서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아내는 절에서 만든 밥을 처음 먹어본다고 했습니다. 담백한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고시 공부하느라고 절에서 오래 계셨지요. 이게 진짜 절 음식 맞아요?"
"그럼, 절 음식 맞지. 한번 자세히 살펴봐. 고추장만 빼면 전부 나물이잖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러네요."


아이들도 비빔밥을 잘 먹습니다. 작은 놈이 제 몫으로 받은 절편을 달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떡이 맛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떡을 주었습니다. 아내도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큰 놈에게 자기 몫의 떡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 부부만 그런 게 아닙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형님, 불편하지요?"

후배였습니다. 저는 손사래를 치며 아주 밥이 맛있다고 했습니다. 후배가 제 옆에 앉았습니다. 제게 도란도란 얘기를 합니다.

"형님, 좀 이상하지요. 사촌 형님이 스님이라는 게요."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삼촌들도 전부 스님이에요. 물론 큰아버지는 오래 전에 파계를 하셨지요."
"그래?"
"나머지 삼촌 두 분은 지금도 스님으로 계십니다."
"왜 스님이 되셨을까?"
"아버지가 그렇데요. 못 먹고 못살아서 어릴 적부터 절에 들어갔다고요."
"…."
"참, 형님?"
"응?"
"죄송합니다"
"뭐가?"
"삼천포에 있는 사촌형님이 돌아가셨어요. 4달 전이에요. 연락을 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분도 한때는 스님이셨습니다. 제가 5년 전에 삼천포에서 그 분을 만났을 때는 이미 속세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 분은 불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하는 말이 제게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제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그 분이 화제를 바꿨습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아주 평범했던 것 같습니다. 기억에 별반 남는 게 없습니다. 아, 한 가지 있네요. 그분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막 그분 집을 나설 때였습니다. 그분이 제게 말하기를 부처님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우리들 마음 속에 부처님이 계시다고 했습니다.

"좋은 분이셨는데."
"이곳 주지스님이 그분의 큰형님이십니다."


저는 산사(山寺)를 내려왔습니다. 차가 산사를 막 벗어납니다. 저는 뒤를 돌아봅니다. 후배가 그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기묘한 인연입니다. 큰삼촌만 빼고 나머지 삼촌 모두가 스님이십니다. 사촌 형님 네 분 중 세 분이 스님이십니다. 그 중 한 분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돌아가신 그 분과의 인연을 깊게 맺으려 했습니다. 그 분 또한 저를 그런 인연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연은 여기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말로서 위로해보지만 그러나 그 애석함은 여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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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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