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뿌려지는 짜릿한 칼 맛

[현장]제3회 대한민국 조선세법 경연대회

등록 2005.05.16 10:55수정 2005.05.2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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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조선세법. 장영희(47세, 대전시청) 씨는 "허공에 뿌려지는 짜릿한 칼 맛"때문에 검도를 한다고 한다.

조선세법. 장영희(47세, 대전시청) 씨는 "허공에 뿌려지는 짜릿한 칼 맛"때문에 검도를 한다고 한다. ⓒ 윤형권

2005년 5월은 동학농민혁명이 일어 난지 111년이 되는 해이다. 전북 정읍에서 처음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부정부패로 얼룩진 봉건사회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려고 백성들이 죽창을 들고 분연히 일어난 항쟁의 역사다.

이러한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이어받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지난 15일 전북 정읍에서 '조선세법'(朝鮮勢法)이라는 조상의 얼이 담긴 검법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남녀검객들이 자웅을 겨뤘다.


참가한 남녀검객들은 조상님들이 산과 들에서 조선세법을 익히며 호연지기를 길렀을 즈음의 복장을 현대적 감각에서 재현하려고 애를 썼다. 또 한 동작 한 호흡마다 동학농민의 함성과 열망의 눈빛을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조선세법은 조선시대 이전의 검법으로 추측되는데, 중국 명나라 때 모원의라는 사람이 <무비지>라는 책에 '조선세법'(조선에서 얻은 검법이라는 뜻)을 소개한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문헌상 최초의 기록이다.

또 조선 정조 때 완간한 <무예도보통지> 2권에 '예도'(銳刀)가 있는데 조선세법과 동일한 검법이다. <무예도보통지>는 <무예제보>와 <무예신보>를 증보하여 집대성한 것인데, 모원의의 <무비지>에서 '조선세법'과 '예도'가 왜 이름이 다르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조선세법이 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모원의가 쓴 <무비지>를 1982년 미국 버클리(U.C. Berkeley)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하면서 비롯되었다. 이종림(대한검도회 실무부회장)씨는 버클리 대학에 <무비지>라는 책이 있음을 전해 듣고 복사본을 얻었다.

이렇게 얻은 조선세법이 학계와 일반인, 검도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1999년 한국체육학회지에 <조선세법고>(朝鮮勢法考)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조선세법고>는 검리(劍理)와 역학원리(力學原理)에 입각해서 24세 중 8세를 실기로 해석했는데, 이는 조선세법을 학문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것으로서 그 의의가 크다.




무비지에 실린 조선세법은 24세로 되었는데, 처음에 안법(眼法), 격법(擊法), 세법(洗法), 격법(格法), 자법(刺法)을 배운다고 했다.


안법은 곧 눈싸움을 말하는 것이다. 단순히 눈싸움을 말하는 게 아니고 상대를 살피는 신체적인 눈과 마음이 눈을 말한다. 또 격법은 둔기로 치는 것 같이 칼을 쓰는 법, 세법은 깨끗하게 씻을 듯이 칼을 쓰는 법을 말하며, 자법은 찌르는 법을 말한다.

a 조선세법

조선세법 ⓒ 윤형권

조선세법에서 말하는 격법은 치는 것인데 치는 방향에 따라 다섯 가지로 간략 하게 나누었다.

▲표두격(豹頭擊)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것 ▲과좌격(跨左擊)은 왼쪽으로 걸쳐 치는 것(스쳐 아래로) ▲과우격(跨右擊)은 오른쪽으로 걸쳐 치는 것(스쳐 아래로) ▲익좌격(翼左擊)은 왼쪽에서 후려치는 것(빗겨 위로 혹은 옆으로) ▲익우격(翼右擊)은 오른쪽에서 후려치는 것(빗겨 위로 혹은 옆으로).

자법은 곧 찌르는 것인데 방향(부위라 할 수도 있다)에 따라 다섯 가지로 구분하였다.

▲역린자(逆鱗刺)는 목을 찌르는 것 ▲탄복자(坦腹刺)는 배를 찌르는 것 ▲쌍명자(雙明刺)는 명치를 찌르는 것(혹은 미간) ▲좌협자(左夾刺)는 왼쪽을 찌르는 것(주로 가슴) ▲우협자(右夾刺)는 오른쪽을 찌르는 것을 말한다(주로 가슴).

격법(格法)에는 세 가지가 세(勢)있는데 이는 치는 법이라기 보다는 형태(자세)를 뜻한다.

▲거정격(擧鼎格)은 머리 위의 칼 자세(치는 자세) ▲선풍격(旋風格)은 어깨 칼의 자세(베는 자세) ▲어거격(御車格)은 가운데 칼의 자세(찌르는 자세)

세법에도 세 가지의 자세가 있는데 베는 것을 말한다. 마치 목을 씻듯이 깨끗하게 벤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봉두세(鳳頭洗)는 내려 베기 ▲호혈세(虎穴洗)는 옆으로 베기 ▲등교세(謄蛟洗)는 올려 베기를 이르는 말이다.

조선세법은 위의 격(擊)ㆍ자(刺)ㆍ격(格)ㆍ세(洗) 법을 기초로 하여 24세를 만들어 놓았는데, 각각 독립된 검법이며 기(起)ㆍ결(結)ㆍ존심(存心)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a 사진 좌측부터 안법은 법 중에서 심안(마음을 읽는 눈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두 번째 사진 역린자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장영희 씨. 세 번째 사진 조선세법 중 과우세 오른쪽으로 걸터 앉은 자세라는 뜻이다. 마지막, 조선세법 여자부 우승자 김정주 씨(신탄진 검도관)의 우협세. 아버지 김영태 씨(대한검도회 7단)도 검도인이다.

사진 좌측부터 안법은 법 중에서 심안(마음을 읽는 눈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두 번째 사진 역린자 자세를 취하고 있는 장영희 씨. 세 번째 사진 조선세법 중 과우세 오른쪽으로 걸터 앉은 자세라는 뜻이다. 마지막, 조선세법 여자부 우승자 김정주 씨(신탄진 검도관)의 우협세. 아버지 김영태 씨(대한검도회 7단)도 검도인이다.

(1)거정세
오른발을 앞으로 내며 칼을 들어 올려 머리칼(상단)자세를 취하고 즉시 왼발이 나가며 앞을 향하여 가운데를 치고 걸음을 물려(왼발) 군란세를 한다.

(2) 탄복세
칼날을 비스듬히 위로 뽑아 오른발 오른손으로 배를 찌르고 앞을 향해 나아가 허리를 친다(왼발).

(3) 과우세
오른발을 약간 오른 방향으로 틀며 칼을 뽑아 훌 터내리듯 왼발과 오른손으로 오른쪽을 걸터치고 앞 을 향하여 왼쪽으로 횡격한다(오른발).

(4) 은망세
칼을 옆으로 뽑아 앞을 향해서 왼손 왼발로, 뒤로 돌아서 오른손 오른발로 내려치고 좌우로는 비스듬 히 내려벤다(왼발, 오른발).

(5) 요격세
왼발을 약간 비스듬히 앞으로 내며 칼을 뽑아 올 리고 즉시 오른발 오른손으로 왼쪽을 비껴 내려 친 후 앞을 향해 걸음을 나아가 역린한다(왼발).

(6) 전시세
제자리에서 칼을 밑에서 위로 뽑아 쳐 올리고 그 대로 돌려 오른발을 내면서 오른손으로 아래를 치고 걸음을 당겨 거정격을 한다.

(7) 과좌세
왼발을 비스듬히 왼쪽으로 약간 내며 칼을 뽑아 오른발 오른손으로 왼쪽을 옆으로 내려치고 다시 앞을 향하여 걸음을 나가며 쌍으로 친다(왼발, 오른발).

(8) 우협세
칼을 옆에서 위로 비스듬히 뽑아 몸을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왼발을 앞으로 내며 왼쪽 옆구리를 찌르고 걸음을 세워 거정격을 한다.


a 조선세법 실기부문 우승자 박종봉(검도 5단, 대전 백련검도관 관장) 씨.

조선세법 실기부문 우승자 박종봉(검도 5단, 대전 백련검도관 관장) 씨. ⓒ 윤형권

<무예도보통지>의 쌍수도나 제독검은 검법 초식의 명칭이 대개 4자성어로 되어 있으며 치고 찌르고 막는 법이 방향에 따라 쉽게 설명되어 있다. 신라의 본국검법은 2자, 3자, 4자 성어가 섞여 있으며 중국의 대표적인 검법인 청평검법의 예에서만 보아도 360세 거의가 4자성어로 되어있다.

또 조선세법, 본국검법 그리고 청평검법에는 발초심사세(撥草尋蛇勢, 풀을 헤쳐 뱀의 머리를 벤다)가 들어 있는데 이는 한국과 중국이 검법을 교류했음을 알 수 있는 단서다.

또한 조선세법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 '이아이도'(居合道)와의 연관성이다. 일본 이아이도의 창시자는 '하야시자키 진스케'(林崎甚助)라는 사람이다. 그는 현재의 야마가따현 출생으로 1556년 당시 14살의 나이 때 신사에서 이아이도의 발상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생몰연대는 확실하지 않고 또한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이아이도를 창안하였다고 하여 신무소린자키류(神夢想林崎流)라고 한다. 이후 다미야류(田宮流), 가이코류(關口流), 에신류(英信流) 등으로 퍼져 나갔고 현재에는 전일본검도연맹에서 통일된 10본(本)의 거합을 세계적으로 보급시키고 있다.

이아이도의 동작과 조선세법의 동작이 흡사한 부분이 많다. 이아이도 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조선세법이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검법과 어떤 연관이 있었는지 앞으로 한중일 세 나라가 교류를 통하여 연구해야 할 과제다.

동학농민혁명과 조선세법

▲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김현 전 이사장과 조광환 현 이사장
2003년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조선세법경연대회를 만든 김현(61세 ․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 역임)씨는 "동학농민혁명정신과 검은 일맥상통하는 정신을 공유하고 있습니다"고 했다.

대한검도회 검도 4단이기도 한 김씨는 매일같이 정읍제일고에서 서래봉검우회 회원들과 함께 검도수련을 한다. 김씨는 "칼은 정의의 상징이고, 동학농민혁명정신도 학정과 부패에 항거한 정의의 실천이다"며 동학농민혁명정신과 조선세법과의 연관성을 말했다.

제3회 대한민국 조선세법경연대회 대회장인 조광환(45세 ․ 정읍학산여중 교사)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은 "5천년 역사 속에서 신분제도를 타파한 사회적 변혁을 이루어낸 혁명"이었기 때문에 "동학농민운동이 아니라 동학혁명이라고 해야 맞다"”며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조 이사장에 의하면 "일본이 집요하게 독도도발과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학농민혁명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며 국민들의 동학농민혁명정신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조 이사장은 또 "계승사업회는 대한민국 조선세법경연대회를 질적, 양적으로 더욱 확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 윤형권

덧붙이는 글 | *조선세법고 참고

제3회 대한민국 조선세법경연대회 입상자

<조선세법 실기>
남자부 : 우승 박종봉(백련감도관), 준우승 김태석(우석대), 3위 김선태(백련검도관), 황순호(중앙문화검우회) 
여자부 : 우승 김정주(신탄진감도관), 준우승 한아름(은평검도관), 3위 성재영(은평검도관), 김은옥(은평검도관)
단체전 : 우승 중앙문화검우회, 준우승 우석대A, 3위 은평검도관B, 백련검도관A

<베기>
우승 공병종(명성검도관), 준우승 장윤락(정무감도관), 3위 박재현(장유검도관)·박종봉(백련검도관)

덧붙이는 글 *조선세법고 참고

제3회 대한민국 조선세법경연대회 입상자

<조선세법 실기>
남자부 : 우승 박종봉(백련감도관), 준우승 김태석(우석대), 3위 김선태(백련검도관), 황순호(중앙문화검우회) 
여자부 : 우승 김정주(신탄진감도관), 준우승 한아름(은평검도관), 3위 성재영(은평검도관), 김은옥(은평검도관)
단체전 : 우승 중앙문화검우회, 준우승 우석대A, 3위 은평검도관B, 백련검도관A

<베기>
우승 공병종(명성검도관), 준우승 장윤락(정무감도관), 3위 박재현(장유검도관)·박종봉(백련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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