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감시할 눈보다 얘기 들을 귀 필요"

대구 청소년 발언대, 교육정책을 꼬집다

등록 2005.05.16 12:28수정 2005.05.1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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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기자회견에서 "청소년 자유발언대 공간에서 누가 집회에 참석했는지를 찾는 감시의 '눈'보다는,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청소년 자유발언대 공간에서 누가 집회에 참석했는지를 찾는 감시의 '눈'보다는,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허미옥
"어른들은 이야기합니다. '너희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냐?' 그렇다면 우리는 '수학은 고차방정식을 배우고, 국어는 현대문학을 배웁니다'고 답해야 합니까?" (고1)

"요즘은 전산프로그램이 너무 발달되어 있어서, 중간고사 끝나면 바로 그 다음날 시험성적이 발표됩니다. 시험에 대한 해방을 느끼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하는 거죠." (고3)

"전교 1등하는 친구에게, 수학 문제를 물었다. 그가 노트에 자세하게 적어주었다. 나는 그 내용을 달달 외워서 시험지에 적었다. 하지만 점수는 바닥이었다. 선생님에게 물어봤더니, '증명과정에서 중요한 내용은 모두 빠지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적었다'고 했다. 1등하는 친구는 '내가 점수 받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적어준 것 같다'." (고1)


지난 15일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청소년 발언대에서 쏟아진 말들이다.

고교내신등급제 적용대상인 89년생, 즉 현재 고등학교 1학년생뿐만 아니라, 고3, 대학생까지 자신이 겪은 경험들을 털어놓았고, 친구를 적으로 여겨야 하는 교실 내 비인간적 분위기에 힘들어했다.

1년 365일, 청소년은 쉴 시간이 없다

15일 오후 5시 30분 대구시 대구백화점 앞.


대구지역 청소년운동단체((사) 우리세상, 우주인, (사) 반딧불이)와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대구지역 24개 단체)는 '청소년의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이후, 청소년들은 '자유발언대' 코너에서 현 교육정책에 대해 많은 불만들을 쏟아냈다.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이두옥 상임대표는 "어른으로서, 이런 자리가 부끄럽다"며 "청소년 스스로가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스스로 자유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미향 (사)우리세상 상임이사는 "직장인도 주 5일 근무를 하고, 이틀을 쉴 수 있는데, 학생들은 1년 365일 휴식이 없다"며 "대구에서 입시교육에 대해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며, 입시교육 변화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학생들의 정치활동과 사회참여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는 한국 현실을 우려하며, 청소년이 의사결정과정과 학교 내외 정치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법률, 지침, 교칙을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가 있음을 강조했다.

'남을 죽여야 사는 경쟁사회, 싫어!'

청소년 자유 발언대. '우리는 교육부의 실험쥐가 아니다'라는 주장 등 현 교육정책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청소년 자유 발언대. '우리는 교육부의 실험쥐가 아니다'라는 주장 등 현 교육정책에 대한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허미옥
한편 기자회견을 마친 후 대구지역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유발언대' 코너를 만들어, 양복 입은 어른들(교육공무원), 둥근 지붕이 있는 집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정치권)에게 쓴 소리를 날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우리 학교에는 벌점제도가 있다. ▲머리길이 ▲머리를 묶지 않았을 때 ▲복장문제(하복을 입을 시기, 날씨가 서늘해서 가디건이라도 입으면 벌점) ▲옷의 단추를 풀어도 안됨 등.

월별로 합산해서 벌점이 5점 이상이 되면, 그날 그 학생은 학교수업을 못하고, 운동장에서 벌을 세운다. 그런데 이 제도 시행 초기에는 5점 이상으로 벌을 받는 학생들이 없었다. 그랬더니 학교 측에서는 벌점 규정을 3점으로 낮춰버렸다. 처벌을 위한 처벌 규정을 만든 것이다." (고3)

"서울에 있는 아저씨(정치권)들은 우리처럼 고등학교 생활을 겪지 않았고, 자식들을 외국으로 모두 보냈기 때문에, 오늘의 현실을 모를 것이다. 학교 교육은 '지덕체'를 요구한다고 하지만, 학교에서는 오직 '지'만을 가르치고 있다." (고1)

"지난주 토요일 집회에 나오려고 했지만 학교 담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각도 짧은 게 무슨 짓이냐. 시위하면 모두 잘라버린다.' 학교에서 친구에 의해 사물함도 부서지고, 노트도 찢어지고 있다. 어른들은 '정부가 잘 해결할 것이다'고 하지만, 그들이 잘 해결한다면 학교에서 이런 일은 없어야 하지 않나?" (고1)

"옆에 앉은 짝을 밟고 일어서도록 가르치는 것이 학교다."

"남을 죽여야 살아나는 경쟁사회 너무 싫다."


등이다.

이날 '자유발언대'에는 청소년 관련 전문가수 엑기스의 박흥식군의 공연으로 흥을 돋우었다. 또한 김지하 시인의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의 조사'를 개작한 '한국 교육 장례식 조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짝을 밟고 대학 가고 싶지 않아요"


한국 교육 장례식 조사

▲ '소원나무', 많은 청소년들이 교육정책에 대한 바람을 적었다
교육이여!
너는 오래전에 이미 죽었다. 죽어서 썩어가고 있었다.
뼈 없는 교육이여!
반인격적, 비현실적, 현실의 교육이여!
썩고 있던 네 주검의 악취는 교정의 나무 한 그루가 되어
마침내 우리의 학원의 고유한 향이 되어 우리를 중독시킨다.

교육이여!
지금까지도 개악과 조어와 전언과 번의와 난동과 불안과 탄압의 고수요, 천재요, 거장이었다.
너, 교육이여!
너는 그리하여 교육 관료의 이상이었고, 학생들의 졸적이었다.
구교육을 신교육으로 교체하여 우리의 눈과 귀를 혼란시켰고
골백번의 발표와 교육관료 교체로 환란을 조장하였다.
해괴할 손 비현실적 교육이여!

어둡고 괴로웠던 지난 2개월 간 밤과 새벽 그리고 아침
수많은 학생들이 교육현실에 좌절하고 고통에 휩싸여
고귀하고 성스러운 생명을 버린 그 사건을 잊었는가?
현세와 저승의 문턱에서 괴로움에 허덕였을 그들을 모르는가?
그러나 너는 우리의 성스러운 의식에 대한 방해와 탄압을 시작하였다.
그 때 이미 우리는 알았다.

어느 봄날 새벽의 짖은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너, 내신등급제여.
너는 안개 속에서 죽은, 어불성설과 정체불명과 조삼모사와 모순의 상징이요,
혼합물질이었다.
한없는 교육정책 변화, 종잡을 길 없는 막연한 교육이념, 끝없는 혼란과
경쟁적이다 못해 친구조차 없는 우리네 현실, 방향감각과 주체 의식과 지도력의 상실,
이것이 곧 너의 전부이자, 너다.
이처럼 황당무계한 교육정책으로, 이같이 허무맹랑한 교육이념으로 우리를 가르치려 한다.
쇠줄의 묶인 개처럼, 우리를 속박한다.

그러나 교육이여!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바로 지금 거기서 네 옆 사람과 후딱 주고받은 그 입가의 야릇한 웃음은…
교칙에 따른 징계인가? 우리의 자유로운 발언을 막겠다는 얄팍한 심사인가?
그러나 시체여!
우리는 믿는다.
우리가 목 메이도록 원하는 것이, 교육 현실과 교육 이념의 완전한 상응인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이 죽은 학생들의 고귀하고 성스러웠던 가치인 것을…

※ 이 글은 국어 혹은 문학시간에 배웠을 '타는 목마름으로'를 쓰신 시인 김지하님이 1964년 5월 20일 서울대 문리대 교정에서 열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에서 한 조사를 현 상황에 맞춰 개작한 것입니다. / 대구지역 고등학교 1학년

덧붙이는 글 | 허미옥 기자는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http://www.chammal.org

덧붙이는 글 허미옥 기자는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http://www.chamm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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