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가는 남편한테 산 새우 먹이모 안되니더"

<음식사냥 맛사냥 21>톡톡 튀는 '붉은새우' 산 채로 까먹는 맛

등록 2005.05.16 15:13수정 2005.05.1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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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살아 파다닥거리는 산 새우 드셔 보셨나요?

살아 파다닥거리는 산 새우 드셔 보셨나요? ⓒ 이종찬

기다랗게 놓인 방파제 너머 검푸르게 넘실대는 죽변 앞바다. 갈매기 서넛이 그림처럼 날고 있다. 파도는 수평선을 입에 물고 끝없이 달려왔다가 방파제 앞 울퉁불퉁한 바위를 힘차게 때리며 하얗게 가라앉는다. 하얀 물거품을 톡톡 터뜨리며 파랗게 흔들리는 미역. 그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방파제를 담으로 삼아 줄줄이 늘어선 횟집들.

그 횟집들을 동무 삼아 방파제를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횟집 끝자락에 물회, 울진대게, 자연산 전복, 산 새우란 글씨가 나란히 씌어진 2층 건물 하나가 보인다. 이 집이 바로 금방 바다에서 건져낸, 살아 톡톡 튀는 붉은 새우를 산 채로 먹을 수 있는 죽변방파제 회센터 1호점 '강원도집'(경북 울진 죽변면 죽변4리)이다.


잠시, 수족관에 빼곡히 들어 있는 싱싱한 물고기들을 구경하다 이 집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 황운학(37)씨가 장화를 신은 채 주방에 서서 파닥거리는 생선을 날렵한 솜씨로 썰고 있다. 이리저리 마구 파닥거리는 생선에 황씨의 손이 닿자마자 눈 깜짝할 사이 생선의 껍질이 벗겨지고 살과 뼈가 발라져 가지런한 생선회로 변한다.

a 죽변방파제 회센터 1호 '강원도집'

죽변방파제 회센터 1호 '강원도집' ⓒ 이종찬


a 물수건을 덮지 않으면 산 새우가 튀어나와 식탁이 엉망이 되기 십상이다

물수건을 덮지 않으면 산 새우가 튀어나와 식탁이 엉망이 되기 십상이다 ⓒ 이종찬

나의 울진 길라잡이 남효선(47) 시인이 황씨에게 오늘 건진 붉은 새우 있느냐고 묻자 싱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 앉으라는 손짓을 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방 안으로 들어서자 우리보다 먼저 온 손님들이 싱싱한 전복과 가지런하게 썰어 놓은 회를 맛깔스럽게 먹고 있다가 남 시인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따! 형님 오랜만이니더. 오늘 회 한 접시 할라고 왔니껴?"
"손님들이 와가꼬(와서) 산새우 맛이나 좀 보여줄라꼬."
"그라지 말고 같이 앉으시더. 우리도 마악 들어왔다 아이니껴. 이거 아직 손도 안 댔는데 그냥 같이 먹으시더. 아, 이 집에 널린 기 산 새우 아이니껴."

처음 만났는데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마치 오랜 동무를 만난 것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는 죽변 청년회 사람들. 굳이 소주잔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냥 마주 바라보고 이야기만 나누어도 즐겁다. 아마 이 분들은 아름다운 바다를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 더 맑고 밝은 심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럼없이 부어주는 소주 한 잔 입에 털어 넣고 잠시 주춤거리자 죽변 청년회 회장이란 분이 잽싸게 "이거는 여기서도 아주 귀한 거"라며 살아 꿈틀거리는 전복 한 마리를 건네준다. 오랜만에 만난 고향 동무 같은 사람들. 남은 소주를 마저 입에 털어 넣고 전복 한 마리를 입에 넣자 이내 입안 가득 바다향이 맴돈다. 씹으면 씹을수록 쫄깃쫄깃한 전복 맛은 정말 기막히다.


a 산 새우는 껍질째 먹는 것이 콜레스테롤 예방도 되고 노화방지에도 뛰어나단다

산 새우는 껍질째 먹는 것이 콜레스테롤 예방도 되고 노화방지에도 뛰어나단다 ⓒ 이종찬


a 산 새우는 오뉴월에 먹어야 속살도 많고 제맛이 난다고 한다

산 새우는 오뉴월에 먹어야 속살도 많고 제맛이 난다고 한다 ⓒ 이종찬

그렇게 5분쯤 지났을까. 주인 황씨가 살아 꿈틀대는 붉은 새우(3만원)가 가득 담긴 커다란 스테인리스 국그릇을 식탁 한가운데 올린다. 그리고 잽싸게 하얀 물수건으로 톡톡 튀는 붉은 새우를 덮어버린다. 조금 있다가 먹으라는 뜻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죽변 청년회 한 분이 빙긋이 웃으며 물수건을 치운다.

금세, 토독! 탁! 소리와 함께 살아 있는 붉은 새우가 식탁 위로 솟아올랐다가 식탁 바닥에 아무렇게나 툭 떨어진다. 잠시 뒤 식탁 바닥 위에 떨어진 붉은 새우가 다시 한번 토독 하고 튀어 오른다. 어디 그뿐이랴. 커다란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담긴 붉은 새우들이 한꺼번에 마구 튀어 오르기 시작한다. 여기 ‘토독’ 저기 ‘토톡’ 정신이 없다.


"이 때문에 살아 있는 새우는 물수건을 덮어놓고 한 마리씩 꺼내 먹어야 하니더. 그렇지 않으면 옷을 몽땅 다 버릴 수도 있다 아이니껴."
"아니, 왜요?"
"새우 이게 튀어나와 초고추장이며 간장에 떨어져 톡톡 튀기 시작하면 우째 되겠니껴. 옷이 초고추장과 간장으로 범벅이 되지 않겠니껴?"

그랬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초고추장에 빠진 붉은 새우도 있다. 저게 한 번 더 토독 하고 튀어 오른다면,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청년회 한 분이 잽싸게 그 새우를 집어 들고 날렵한 손놀림으로 등껍질을 벗긴다. 그리고 간장에 새우의 등을 콕 찍어 내게 건네준다.

a 껍질을 벗겨먹을 때는 새우의 골을 함께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껍질을 벗겨먹을 때는 새우의 골을 함께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 이종찬


a 출장 가는 남편한테는 산 새우 먹이지 마세요

출장 가는 남편한테는 산 새우 먹이지 마세요 ⓒ 이종찬


"새우는 살아서 톡톡 튀는 걸 묵어야 제 맛이 나니더. 작은 거는 껍질이 연하기 때문에 껍질째 씹어 묵고, 큰 거는 껍질을 벗겨서 먹니더. 산 새우를 처음 먹는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새우의 골을 떼 내고 먹는데, 그건 잘못 먹는 거니더. 산 새우는 반드시 새우의 골을 함께 먹어야 콜레스테롤을 막을 수 있다 아이니껴."

그랬다. 살아있는 새우의 향긋한 살을 입에 넣자마자 이내 혀끝에서 사르르 녹아내린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새우살을 두어번 씹자 달착지근하면서도 뒷맛이 아주 고소하고 깊다. 마치 저 짙푸른 죽변 앞바다의 속살을 몰래 훔쳐 먹는 그런 맛이라고나 해야 할까. 정말 독특하고도 향긋한 맛.

그렇게 한번 살아 있는 새우를 맛보고 나자 새우의 향이 입안 가득 번지면서 또다시 입맛이 당긴다. 살아 있는 새우의 싱싱한 속살! 정말 특별하다. 그렇게 살아있는 새우의 등껍질을 벗겨 속살 한 점 입에 넣고,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하다 보니 어느새 새우 열서너 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하지만 살아 꿈틀거리는 새우의 등껍질을 벗겨 먹자니 왠지 모르게 잔인하고 끔찍스럽다는 그런 생각도 든다. 게다가 금방 몸통을 먹고 버린 새우가 그때까지도 긴 수염을 까딱거리며 꿈틀거리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새우에 손이 가다가도 주춤해진다. 입은 끝없이 새우의 시원하고도 담백한 맛을 자꾸 부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셈이다.

a 새우를 다 먹어갈 때쯤 나오는 백합조개 국물도 정말 시원하다

새우를 다 먹어갈 때쯤 나오는 백합조개 국물도 정말 시원하다 ⓒ 이종찬


a 새우의 영양가는 머리에 쏠려 있다

새우의 영양가는 머리에 쏠려 있다 ⓒ 이종찬

"새우는 죽변 앞바다에서 사시사철 많이 잡히지만 오뉴월에 먹어야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게 제 맛을 느낄 수 있니더. 특히 새우는 물회를 해먹으면 담백 시원한 맛이 정말 끝내주니더. 언제 다시 한번 오시면 그땐 우리 죽변의 그 유명한 새우 물회를 맛보여 드리고 싶니더."

살아 있는 새우를 거의 다 먹을 때쯤 곁들여 나오는 희멀건 백합국물도 그 맛이 너무 시원하고 담백하다. 게다가 그 백합국물에 먹고 남은 새우머리를 몽땅 집어넣고 한소끔 끓여 먹는 그 맛도 정말 일품이다. 옛말에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그 감칠맛이 바로 이 맛이라고나 해야 할까.

'강원도집' 주인 황운학씨는 "새우의 영양가는 머리에 쏠려 있다"며, 갑각류는 게, 가재 모두 체외에 알을 품는데, 새우만은 머리에 알을 품는다고 말한다. 이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우를 먹으면서 콜레스테롤 걱정을 하는데, 껍질째 먹으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살아 있는 새우의 껍질에는 노화방지에 좋은 키토산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모두 살아 있는 새우를 껍질째 먹고 있다는 것. 황씨는 "새우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음식"이라며, 소금을 뿌려 구워먹어도 맛이 좋고, 기름에 튀겨 껍질째 먹거나 된장국이나 새우국을 끓여먹어도 그 시원한 맛이 끝내준다고 귀띔한다.

a 산 새우를 먹은 뒤 방파제를 따라 걸으며 바라보는 검푸른 바다도 일석이조

산 새우를 먹은 뒤 방파제를 따라 걸으며 바라보는 검푸른 바다도 일석이조 ⓒ 이종찬

"살아 있는 새우가 오죽 맛이 좋고 몸에 좋았으면 이곳 사람들은 출장 가는 남편한테는 절대로 살아 있는 새우를 먹이지 말라는 속담까지 있다 아이니껴. 아재도 좀 전에 살아 있는 새우를 많이 드셨으니 가다가 바람이 날지도 모르겠니더. 그렇다고 사모님께 저희 집을 알려주시모 큰 일 나니더."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원주-제천-영월-태백-호산-부구터미널-죽변항-죽변방파제 회센터 1호 '강원도집' 
※울진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죽변터미널에 내려 죽변항으로 가는 시내버스(30분)를 타도 된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원주-제천-영월-태백-호산-부구터미널-죽변항-죽변방파제 회센터 1호 '강원도집' 
※울진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죽변터미널에 내려 죽변항으로 가는 시내버스(30분)를 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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