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추리소설] 깜둥이 모세 - 24회

24회 - 오카모토 교수를 감시하는 자

등록 2005.05.18 00:55수정 2005.05.1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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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오카모토 교수의 활동은 어떤가?
- 일단은 학교에 묶인 몸이라 강의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세에 대한 연구는 주춤한 상태입니다.

- 목소리가 작게 들리는데 크게 말해주겠나?
- 수업 중이라서요.


늦봄의 따가운 햇살이 창가의 책상에 비쳐 눈이 부셨다. 오카모토 교수는 수업 내내 미간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햇볕만은 즐기고 있었다. 고국에 있을 때에는 햇볕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안개의 도시 런던에 머물면서부터 일광욕도 즐길 정도로 변했다.

툭.
칠판에 강하게 판서를 하다가 분필이 부러졌다. 자기가 어디까지 설명했는지 잊어먹은 오카모토 교수는 문득 시계를 보았다. 수업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설명을 계속하려는 오카모토 교수의 눈에,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학생이 보였다.

“……‘종교개혁’ 하면 루터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일신교는 종교개혁의 역사로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최초의 개혁자는 아브라함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이 왜 루터와 비슷한 인물인가 의아해하는 얼굴인데 먼저 이 그림을 볼까요?”

오카모토 교수는 A4지 크기의 흑백 사진을 꺼내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사진은 돌에 새겨진 부조를 찍은 것인데, 수소의 뿔을 단 긴 수염의 남자가 옥좌에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출애굽기에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부탁해 신의 형상을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만든 것이 금송아지의 모습을 한 이집트의 신 아피스였습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잘못 만든 거지만, 종교적으로 봐도 잘못 만들었지요.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신은 가나안의 신이지, 이집트의 신이 아니기 때문이죠.


성경에는 ‘엘(El)'이란 발음이 자주 나오는데, ’엘‘이 뜻하는 것은 여호와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고, 다니엘, 사무엘, 엘르아살, 엘리사, 뭐 많죠. 재미있는 것은 가나안 지방에 이미 ’엘‘이라는 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진이 그 ’엘‘신의 모습입니다.”

학생 사이에서 약간의 웅성거림이 생기더니 서로 사진을 돌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학생은 여전히 입술을 웅얼거렸다.


- 지난번에 오카모토 교수의 집을 뒤진 것은 어설펐습니다. 대체 누굴 시켰던 겁니까?
- 새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녀석이라 그랬나 보네. 도둑으로 위장했다는데 들켰나?
- 알아차리지는 못한 거 같은데, 다음부터는 그냥 제게 맡기십시오.

“유일신 신앙이 처음부터 고정적인 형태로 존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건 아닙니다. 만물에 신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다가 점점 유일신 신앙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신이 많은 인도에서도 이런 인식은 발견되는데, ‘브리하다라냐카 우파니샤드’에서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비다그드하 사클라야란 사람이 질문합니다. ‘오 야이나발크야여, 신들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대답하길, ‘비스베다바스에게 바쳐진 찬가에 언급된 수만큼이다’, 덧붙여 그 수는 3천의 세 곱입니다. 사클라야는 다시 정말로 신의 숫자는 얼마냐고 계속 되묻고 야이나발크야는 점점 수를 줄여서 대답해주다가 최후에는 신은 하나라고 대답해 줍니다.

구약 곳곳에도 이방신을 언급하는 부분이 많은데, 히브리인 안에서도 유일신 신앙이 정착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는 걸 암시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자세한 건 나중에 하고, 엘신과 아브라함에 대한 것만 봅시다.”

오카모토 교수는 강단에서 내려와 강의실 안을 거닐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여기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크리스트교에 대해 어느 정도 알 테니까 이 얘기를 알 겁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는데, 아브라함이 우상을 파괴하고 아버지를 설득했다는 얘기 말입니다.

이 얘기만 들어선, 데라와 아브라함이 다른 신을 섬기고 있는 것처럼 착각이 드는데, 실은 같은 신인 ‘엘’신을 섬겼던 것입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아브라함은 인간이 만든 조각상에 신이 깃들지 않는다고 여겼다는 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 이름이 뭐였더라, 프란쯔란 사람의 여자친구…….
- 린쳉 말입니까?
- 그래, 그 여자를 포섭하면 오카모토 교수를 감시하는데 편하지 않을까? 중국인이라면 일본인이 하는 연구에 반감을 가질 만 하다고 보는데.
- 모세란 것이 중국과 직접 연관이 없기 때문에 린쳉의 반감을 사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카모토 교수는 설명하면서 이어폰을 꽂고 있는 학생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음악이 그렇게 좋은가? 아예 전공을 바꿔서 실용음악과로 가는 게 어떤가?”

덧붙이는 글 |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방통대 수강생의 대다수가 그런 분들이죠. 필자도 푼돈 벌어가며 글을 쓴다는 게 정말 수월치 않습디다, 그려. 정말 로또라도 됐으면 싶습니다. 로또 되면 현장답사하면서 수많은 자료 일일이 검토하고 공부하며 소설 쓸 수 있을 것인데 말입니다. 일주일에 2번 연재하는 이 소설이 끊기지 않기를 신께 기도합니다.

덧붙이는 글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하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십니다. 방통대 수강생의 대다수가 그런 분들이죠. 필자도 푼돈 벌어가며 글을 쓴다는 게 정말 수월치 않습디다, 그려. 정말 로또라도 됐으면 싶습니다. 로또 되면 현장답사하면서 수많은 자료 일일이 검토하고 공부하며 소설 쓸 수 있을 것인데 말입니다. 일주일에 2번 연재하는 이 소설이 끊기지 않기를 신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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