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발은 결코 '막사발'이 아니다

사기장 신한균의 <우리 사발 이야기>

등록 2005.05.18 13:41수정 2005.05.1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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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발은 도공들이 예술의식 없이 단지 쓰고 버리는 잡기로 빚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일본인들은 사물을 보는 직관이 있기에, 조선에서는 잡기라 하여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잡기 사발을 가장 고귀한 차사발로 승화시켰다. 그러므로 조선사발의 미는 바로 발견한 일본의 미의식인 것이다."

a <우리 사발 이야기>

<우리 사발 이야기> ⓒ 가야넷

일본인들이 설명하는, 조선사발이 일본의 국보가 된 이유다. 조선이 처음 만들었지만 아주 볼품없는 잡기인 막사발로 취급하던 것을, 일본이 천하의 명물로 승화시켰다는 억지에 가까운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잡기론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잡기론을 받아들여 '막사발'이란 말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이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을 하고 나선 이가 있다. 그는 유명한 학자도 전문가도 아닌 사기장이다. <우리 사발 이야기>를 펴낸 사기장 신한균의 얘기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일본의 국보가 된 조선사발을 직접 보고 결코 제멋대로 구운 막사발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때부터 규장각의 고문서를 뒤지고 일본의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들을 만나는 등 '막사발'의 뿌리찾기에 매달렸다. 그러기를 10여년, 마침내 그는 비밀을 찾아냈다.

'막사발'은 그저 쓰고 버리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사기장이 공들여 만든 제기(祭器)였다. 사발의 맵씨와 때깔,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힘든 좁고 높은 굽, 그리고 가마불을 1300도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 불때기를 통해 치밀하게 계산한 끝에 만들어낸 은은한 비파색 등이 그 증거다.

일본이 어쩌다 만들어진 '실패의 미학'으로 격하시키면서도 국보로 떠받들었던 조선사발은 진주 근처의 민가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제기였던 것이다.


"일본이 국보로 대접하는 고려다완(조선 사발)은 막사발이 아닙니다. 대신 색깔과 장식을 고려해 황태옥 사발이라 불러야 합니다."

그는 '막사발'이란 말 자체를 거부한다. 일제시대 미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사발의 가치를 폄하해 표현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고 식민사관의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색깔과 장식을 고려해 '황태옥 사발'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붙였다.

신한균은 1968년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사발을 최초로 재현해낸 신정희 옹의 장남이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가업을 잇기 위해 펜 대신 흙을 잡았다.


그렇게 사발과 함께 살아온 지 20년, 그는 잘못 알려진 우리 사발의 의미를 복원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다. <우리 사발 이야기>는 바로 그 연장선이다. "그릇장이가 그릇만 잘 만들면 되지 왜 일본으로 건너 간 사발 연구에 매달리느냐"는 주위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 사발 이야기>는 사기장의 시각에서 우리 사발의 역사는 물론 그에 얽힌 흥미진진한 뒷이야기까지 실어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조선 사발이 일본인에게 보물이 된 것은 임진왜란 이전부터였다는 것과 일본이 당시 세계 최고의 도자기 종주국이었던 조선의 사발을 빼앗기 위해 벌인 '차사발 전쟁'이 임진왜란이라는 얘기도 들려준다.

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회령사발을 재현해냈다. 1990년 일본에서 열린 당진소(唐津燒) 전시에서 '오고려(奧高麗)'라는 문화재 도자기를 보면서 우리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직감했다. 당진은 일본 큐슈의 지명으로 조선의 당진에서 건너간 도공들의 마을이다. 그리고 10년, 신한균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오고려'가 여진족이 중국 북방을 침범해 세운 금에 속해 있었고 지금의 함경도 회령지방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라는 것을 밝혀냈다. 조선사발의 멋내기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는 것도 알아냈다.

책에는 사기장이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는 도자기 제조법과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사발들의 사진 400여장도 함께 실렸다. 그리고 신한균은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도자기는 보는 예술이 아니라 쓰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는 도자기는 도자기로서 의미를 상실한 것입니다. 진정한 도자기의 아름다움은 사용하면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도자기 곧 우리 사발에 대한 사기장 신한균의 철학이다.

우리 사발 이야기 - 사기장 신한균의

신한균 지음,
가야넷,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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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통재라, 사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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