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삼보컴퓨터, 소액주주들 한숨만

[현장] 법정관리 딛고 'PC명가' 재건 가능할까

등록 2005.05.19 16:13수정 2005.05.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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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삼보컴퓨터 지사 16층 사무실. 철문이 굳게 닫힌채 불이 꺼져있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삼보컴퓨터 지사 16층 사무실. 철문이 굳게 닫힌채 불이 꺼져있다.오마이뉴스 이승훈

19일 오전 서울 역삼동 삼보컴퓨터 서울 지사 사무실은 철문이 굳게 닫혔다. 법정관리 신청 소식을 듣고 달려와 대책마련을 요구하던 주주들이 돌아간 직후였다.

이들은 18일 저녁부터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과 주요 임원들의 집무실이 있는 이곳에 찾아와 면담을 요구했지만 이 회장은 물론 임원들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건물 관리인은 "이용태 회장은 여기로 출근 안한지 3~4일은 됐다"며 "다른 임원들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임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사무실은 불이 모두 꺼진 채였다. 자신을 삼보컴퓨터 소액주주라고 밝힌 김정숙(46. 가명)씨는 "하도 답답해서 하소연이라도 해보려고 왔는데 책임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비워버렸다"며 "우리보고 어떻게 살라고 하는 건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삼보컴퓨터 주주들의 대부분은 나같은 소액주주들인데 피해가 불보듯 뻔하다"며 "의견을 모은 결과 소액주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삼보컴퓨터 측에 상장폐지 금지 가처분 신청을 요구하기로 했다"며 자리를 떴다.

서울지사로 몰려드는 주주들... 경기도 본사는 차분한 분위기속 구조조정 걱정

경기 안산에 있는 삼보컴퓨터 본사.
경기 안산에 있는 삼보컴퓨터 본사.오마이뉴스 이승훈
경기도 안산에 있는 본사의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한 편이었다. 보급형 데스크톱 위주로 연간 60만대 규모를 생산하는 이곳은 지난달 28일 밝힌 2단계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매물로 나와있는 상태다.

직원들은 회사가 지난해부터 심각한 자금난으로 부도설에 시달려와서인지 법정관리 소식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700여명에 달하는 직원 중 10%의 감원 계획을 밝힌터라 고용에 대한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점심시간에 만난 직원 이아무개씨는 "회사 분위기는 전혀 변화가 없고 동료직원들도 별다른 동요는 없다"고 내부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이씨는 "작년부터 인력 감축 이야기들이 나왔었는데 여기(1공장)는 수익성이 없는 데스크톱 위주라 회사가 노트북과 프리미엄급 데스크톱 위주로 사업구조를 바꾸고 있어 불안감이 큰 편"이라고 말했다.

삼보 측에 사실상 잉여시설이 되어버린 1공장이 팔리고 2공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할 경우 신분 보장을 장담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삼보컴퓨터의 재기를 확신하는 직원도 있었다. 정아무개씨는 "컴퓨터 사업 자체만 놓고 보면, 수익성을 갉아먹은 것은 해외 사업부분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저가 노트북 '에버라텍'이 큰 인기를 끄는 등 삼보 자체 브랜드는 문제가 없었다"며 "삼보가 이대로 주저앉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부 직원들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도 삼보의 이용태 회장과 이홍순 대표이사가 경영권까지 포기해가면서 법정관리를 선택한 것은 회사를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법정관리를 통해 구조조정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 된다면 다시 회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삼보컴퓨터 측도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앞세워 충분히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1분기 국내 부분의 영업이익이 137억원에 달했고, 저가형 노트북 에버라텍과 프리미엄급 PC인 루온의 선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국내 부분만 가지고도 시장에서의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 삼보 컴퓨터 관계자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 유휴자산이 매각되면 재무구조 개선도 가시화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삼보가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자기 브랜드를 확실하게 구축하지 못한채 저가 경쟁과 그로 인한 판매량 위주의 경영에서 비롯됐는데 이는 국내 컴퓨터 업계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위기요인이라 극복이 쉽지 않다느 것이다. 세계적으로 컴퓨터산업이 침체를 겪고 있는 점도 악재다. IBM마저 PC 부문을 중국의 레보노사에 매각할 정도로 PC 산업은 세계적으로 찬밥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삼보의 위기는 한국 PC산업 전체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재건 성공할까

특히 삼보가 에버라텍을 내놓으며 불을 당긴 저가 노트북 경쟁도 제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삼보는 늦긴 했어도 자체 브랜드를 강화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노트북 사업을 시작했지만, 저가전략을 채택함으로써 판매량에 비해 수익성 측면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또 델컴퓨터가 최근 70만원대 노트북을 출시하면서 컴퓨터 가격의 거품을 더 뺄 것이라고 하는 등 다국적 업체들의 저가 공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여기에 중국 최대 컴퓨터 업체인 레노버가 한국레노버를 출범시키는 등 도전이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컴퓨터 업체 중 누구도 중국과 대만의 저가 공세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대기업 계열의 업체와 다국적 업체들까지 가세한 경쟁 구도 속에서 삼보가 얼마만큼 성과를 낼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프리미엄급 제품군에서는 미국, 일본 등 PC계의 전통 강자에 밀리고 있는 상황. 결국 양측의 틈바구니 속에 국내 중견 PC업체들의 설 땅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 위기는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용산 PC' 성공신화를 이뤘던 현주컴퓨터가 최종 보도처리 됐고 지난 1월에는 현대멀티캡도 부도를 냈다. 이제 남은 중견 PC업체로는 주연테크, 대우컴퓨터 등 2개사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삼보가 맞은 위기는 한국 PC산업 전체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대기업들조차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PC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저가 출혈 경쟁보다는 차별화된 프리미엄 브랜드를 육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승부해야할 때"라고 지적했다.

삼보는 카이스트 연구원 출신인 이용태 회장이 단돈 1000만원으로 시작해 국내 PC업계의 성공신화로 꼽혀왔다. 그 '명가'가 위기를 극복하고 명가 재건에 나설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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