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프 리처드, 그의 음악과 인생

1958년 데뷔해, 47 년째 활동하고 있는 영국 팝 음악의 산 증인

등록 2005.05.20 12:55수정 2005.05.2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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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9일 영국 일간지 Daily Express 전면에 실린 클리프 경

5월 19일자 영국 일간지 데일리 미러 전면에 클리프 리처드 경의 사진이 실렸다 (그는 1995년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수십 년 간 행해온 자선 활동 공적을 기려 기사 작위, 'Sir'를 받았다). 올해 개정, 발행되는 기네스북에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음악인으로 엘비스 프레슬리 다음인 2위로 오르게 된 것을 축하하는 기사였다.

클리프는 2004년 작년에도 지난 50년간을 누적해서 통계를 낸 결과 영국에서 음반을 제일 많이 판매한 가수로 판정되어 UPS (Ultimate Pop Star)라는 칭호를 받았다. 이는 영국이 낳은 세계적 팝 스타, 비틀즈, 롤링 스톤즈, 퀸, 엘튼 존 등의 수많은 쟁쟁한 스타들을 제치고, 그의 레코드 판매 실적이 최고라는 것이어서 평소에 클리프 음악을 그다지 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클리프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우리 가정에 화장실 휴지가 없는 집이 없듯이, 거의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꾸준히 새로운 노래를 발표해 온 클리프이기에 영국인들 중 그의 음반 한두 장 구입하지 않은 가정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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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클리프 모습 ⓒ EMI

현재 40대를 넘은 영국인들의 상당수는 자신의 전 생애 동안 항상 클리프에 관한 뉴스를 틈틈이 들어 왔기 때문에 영국 여왕만큼이나 클리프라는 존재가 자신 사회의 일부분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실제로 클리프와 영국 왕실과의 인연은 상당히 오래 되었다. 클리프의 초창기 시절, 여왕의 미인 동생 마가렛 공주가 공연에 참석하기도 했고, 여왕의 맏딸 앤 공주도 그의 팬인 듯 허물없이 농담하며 함께 웃는 모습이 수차례 BBC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생전의 다이애나 황태자비와도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해는 오스트리아의 스키장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그녀의 요청으로 윌리엄과 해리 왕자를 위해 즉석으로 몇 곡을 부르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도 있을 정도로 가까이 지냈다. 클리프는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2002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자신의 즉위 50주년을 기념으로 유래 없이 버킹검 궁전의 뒷 마당을 일반인에게 공개해서 축하 공연을 가졌다. 당시 이 행사에 영국을 대표하는 쟁쟁한 연예인들은 모두 참여 했는데 마지막 피날레에 공연을 관람하던 여왕이 직접 무대에 올라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적이 있다. 그녀의 바로 옆에 서는 영광은 역시 영국 연예인으로서 제일 비중이 큰 비틀즈의 전 멤버 폴 매카트니와 클리프 리처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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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의 대표적인 영화 3편 더 영원스, 섬머 홀리데이, 원더풀 라이프의 DVD

이처럼 클리프 리처드는 18세의 앳된 모습으로 데뷔해서 오늘날 64세의 노인(?)이 되기까지 중도에서 하차하거나 도태되지 않고 고지를 유지해 온, 팝 음악계 역사에서는 보기 드문 아티스트다.

6.25 전쟁을 치른 지 막 십여 년을 넘긴 60년대 초기, 한국이 아직 가난하던 시절, 당시 젊은이들이 느낄 수 있는 서구적 낭만은 영화관에서 외국 영화를 보는 것과 다방이나 음악 감상실(이 단어는 정말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용어가 아닌가 한다!)에서 팝송을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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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클리프 한국공연 티켓 ⓒ CFC

별다른 청소년 문화가 없었고, 남학생과 여학생의 교제는 퇴학감으로 '남녀 7세 부동석' 윤리가 철저히 지켜지던 시절, 한국에 상륙한 클리프의 영화는 당시 우리나라 십대 여학생들에게 마치 어린이가 신데렐라나 인어공주 같은 동화를 읽을 때 느끼는 환상의 나라를 스크린으로 보여준 것과 같은 효과를 안겨 주었다.

'더 영원스'와 '섬머 홀리데이'는 당시 여학생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인 클리프의 모습은 왠지 동양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어서,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소녀들이 동경하는 대상으로 묘사된 눈이 파란 금발의 왕자님보단 덜 어색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마침 1969년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세계 최정상의 팝 스타였던 클리프의 내한 공연이 이루어졌다. 그 때 공연장에서 소녀들이 '클리프'를 목이 쉬도록 불러 대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흥분해서 울고 웃고 하며 자신들의 감정을 당당히 표출했다. 우리나라 같은 유교 사회에서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라 오늘까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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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년 한국 팬 클럽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든 클리프 ⓒ CFC

지금 돌이켜 볼 때 사회적으로 아무런 병폐가 없는 단순하고도 건강한 젊음의 발산이었던 해프닝을 그 때는 사회 각 계의 전문가들이 경쟁하듯이 다투어서 이런 저런 비판과 분석을 했으니 웃음이 나온다.

인터넷은 고사하고 퍼스널 컴퓨터가 없었던 시대, '윈도우'는 말이 창문이라는 뜻으로만 존재했던 시대를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DVD 앞에서 비디오 리코더마저도 퇴물이 되어 버린 요즈음, 전축이나 TV를 소유하는 것이 자가용보다 더 귀했던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바로 그런 시대부터 클리프는 노래를 불러 왔으니, 그의 노래의 상당한 곡들이 오늘날의 팝 음악의 수준에 비교하면 단조로운 멜로디에 불과한 점도 있다. 그러나 그의 노래들 중에는 언제 들어도 특별한 감상이 밀려드는 훌륭한 팝클래식도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벌써 40년이 넘게 지났건만 매년 여름 바캉스 시절이 가까워 오면 각 방송국에서 수시로 '섬머 홀리데이'를 들을 수 있고, 결혼이든 생일이든 혹은 졸업이든 누군가를 축하해야 할 이벤트에서는 'CONGRATULATIONS'를 듣게 된다.

아예 한국어로 번역된 '축하합니다'는 어린이들의 생일잔치용 곡으로도 널리 애용되는 것을 보았는데 원래 클리프가 부른 곡이라는 것을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세계 각 곳에서 그의 노래들이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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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의 최신 앨범 <섬씽 이즈 고잉 온>

2003년, 그러니까 1969년으로부터 꼭 34년만에 클리프가 2번째로 한국을 찾아와 공연을 가졌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팝 시장에서는 그의 신곡들이 거의 소개되지 않은 관계로 그의 1회 공연은 1969년의 그 것에 비해서 젊은 층의 음악 팬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하게 막을 내린 듯하다.

그래도 2003년 내한 공연 덕분에 옛 팬들이 다시 모여서 팬클럽을 활성화 시켰고 (www.cliffrichard.co.kr),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을 비롯하여 클리프의 라이선스 음반도 발매됐다.

2004년 가을에 나온 앨범 < SOMETHIN' IS GOIN' ON >은 특별히 록앤롤의 본토인 미국 네시빌로 가서 그 곳의 음악인들과 만들어 낸 클리프의 야심작이다. 사실 대부분의 곡들이 70년대식의 노래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서 젊은 층보다는 중년층에게 더 어필하지 않을까 한다.

비지스의 베리 깁이 백 코러스를 같이 불러 주는 'I CANNAT GIVE YOU MY LOVE'나 'WHAT CAR'가 우리 세대의 정서에 맞을 것 같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SIMPLICITY'와 'FAITHFUL ONE'가 좋다. 이 곡들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기분이 든다.

클리프 노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니 좀 싫어하는) 분들에겐 'WHY WE DON'T TALK ANYMORE'(1979)와 'SOME PEOPLE'(1987)을 한 번 들어 보시길 꼭 추천하고 싶다.

단발머리 여중생 시절부터 클리프 노래를 즐겨 듣던 필자로서는 영국 본토 다음으로 클리프의 인기가 높은 네덜란드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클리프의 공연을 틈틈이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아래 사진은 지난 일요일 밤 암스테르담 아레나 (아약스 축구팀 홈경기 스타디움)에서 있었던 네덜란드 음악 가요제에 자신의 싱글 'WHAT CAR'를 프로모트하기 위해 찬조 출연한 모습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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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5일 암스텔담 공연 모습 ⓒ 송영선

64세의 클리프가 새로운 노래를 계속해서 발표하면서 저렇게 자신의 발전을 멈추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데 그보다 한참 젊은 내가 이제는 늙어서 더 이상의 새로운 시도는 늦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자신을 추스르게 된다.

클리프의 팬으로서 그의 반듯한 삶과 끊임없는 노력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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