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추리소설] 깜둥이 모세 - 26회

26회- '눈'의 아들?

등록 2005.05.24 10:51수정 2005.05.2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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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아는 한도에서 설명하지만 신화는 모든 것을 다 설명하려든다는 점이네. 그리스 신화에서 거미가 된 아라크네가 그렇지. 거미가 왜 거미줄을 치느냐, 라는 질문에 그런 신화를 만드는 것이지.

마찬가지로, 모세는 왜 다른 사람과 달리 히브리 이름이 아닌 이집트 이름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이시스 여신의 신화를 차용한 이야기를 꾸며 내는 거라네. 히브리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기 전까지의 모든 얘기는 아마도 이런 식이었을 거야. 주위 부족들 간의 관계를 부자나 형제 사이로 끼워 맞추는 식이지. 여기에 비추어 모세의 장인의 이름이 왜 각각인가 하는 대답을 할 수 있지."


프란쯔는 캔 커피를 내려놓고 벙 뜬 표정을 지었다.

"그럼 구약이 편집될 당시에도 모세의 장인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겁니까?"
"그렇게 사건을 해석해야지. 모세는 아론의 동생이 될 정도로 세력은 약해졌어. 하지만 과거의 명성이 있기 때문에 얕볼 수가 없는 거지. 그때 모세 가문의 명성을 등에 업으려고 이드로, 호밥, 르우엘 가문이 경쟁했던 것으로 봐야겠지. 서로 자기 가문의 시조가 모세의 장인이라고 우기는 사태, 상상이 안되나?"
"말도 안돼요! 궤변일 뿐이잖아요?"

린쳉의 말에 오카모토 교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 생각만큼 성경은 완전무결한 책이 아니라네. 이스라엘인들은 다윗 왕조 시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나라의 기초를 잡았고 과거의 기록을 수집해서 편집했지. 성경의 혈연 관계는 편집 당시의 귀족 암투를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아.

음, 저번에 모세의 누나 미리암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지? 성경에 미리암의 이름이 처음 나오는 곳은, 히브리인들이 출애굽 이후 이집트의 추격을 따돌리고 그들을 수장한 후에 승리를 기뻐할 때 처음 나와. 출애굽기의 스토리를 떠올려 보면, 모세의 누나는 모세가 강에 버려질 때부터 나오는데 그때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거든.


이후의 미리암을 찾아보면,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라기보다는 모세를 견제하는 여자 점쟁이에 지나지 않아. 모세의 누나라는 건, 모세의 명성을 등에 업으려는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지."
"그렇게 혈연 관계와는 무관한 거라면 왜 여호수아는 모세나 아론의 자식으로 편입하지 않고 듣도 보도 못한 '눈'이라는 사람의 아들로 나와요?"

린쳉의 뜻밖의 질문에 오카모토 교수와 프란쯔는 마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난 그게 종교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어."

오카모토 교수는 계속하라는 손짓을 했다. 프란쯔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막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낯선 유일신 사상에 적응을 못했던 것으로 보여. 그래서 금송아지도 만들어 숭배하기도 했건 거고. 게다가 그들의 기도에 '아멘'이란 말이 들어갈 정도로 이집트 아문신의 영향도 컸었던 거 같거든. 그때 모세의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는 태양의 현신인 아문신보다 더 높다는 걸 강조해야 하지 않았나 싶어.

그렇다면 가장 써 먹기 쉬운 것이, 신들의 아버지인 눈신을 들먹이는 것이 편리했을 거란 말이야. 아문신의 아들인 파라오보다 위대한 눈신의 아들, 이 점은 성경에서도 약간 암시를 주는 듯한 느낌이야."

프란쯔는 오카모토 교수한테 얻은 노트북을 꺼내 성경 시디롬을 검색했다.

"자, 보라고.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처음 나오는 곳은,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아말렉과 싸울 때야. 모세가 여호수아를 군사령관으로 임명하는 장면이지. 그런데 '눈의 아들'이라는 말이 나오는 곳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후계자로 거의 확정된 부분부터지.

모세가 야훼를 대면하는 회막에 여호수아도 따라 들어가 모세보다 오래 신과 대화를 나눈단 말이지. 이걸 그대로 설명하자면,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확정되기 전에는 '눈의 아들'이 아니었단 얘기야. 성경에는 여호수아의 아버지 '눈'이 어떤 사람인지 일언반구도 없어. 오로지 형용사처럼 '눈의 아들 여호수아'라는 말이 있을 뿐이야."

오카모토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있는 지적이군, 했지만 린쳉은 빈 캔 커피를 들고 나가며 한 마디 툭 던졌을 뿐이었다.

"궤변의 연속에다 논리의 억지라고."

린쳉이 강의실을 나가며 잠시 대화는 중단되었다. 오카모토 교수에게 받은 노트북 컴퓨터의 전원을 끄고서 프란쯔가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언제 시간이 나세요? 이렇게 계속 학교에 박혀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나가서 현장에서 뒤적여야지 특이한 거라도 나올 텐데."
"당장은 시간이 나지 않으니까, 한동안은 이렇게 지내야지."

두 사람은 강의실을 나오면서 복도 좌우를 살폈다.

"자네 애인은 벌써 갔나 보네?"
"중국인은 다 만만디(慢慢的)인 줄 알았는데 이 샤오지에(小姐)는 성격 급해요."

오카모토 교수는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런데 왜 캔커피는 자네만 갖다 준건가? 아무리 일본인이라지만 그래도 애인과 같이 일하는 교수인데 너무 무시하는 걸?"

프란쯔가 오히려 무안해져 얼굴이 붉어졌다. 프란쯔는 장난스레 넘어가려 억지로 피식 웃었다.

"교수님의 소심함도 만만치 않습니다. 캔 커피로 삐치셨어요? 제가 하나 빼드릴게요, 삐치지 마세요."

그러나 여전히 오카모토 교수는 심각하게 받았다.

"그나저나 린쳉이란 아가씨도 성경에 대해 좀 아는가 보던데? 기독교인인가?"
"제가 알기론 아닌데요."
"기독교인도 아니고 이쪽 학과도 아닌데 그런 질문을 던져?"

오카모토 교수는 프란쯔가 캔 커피 뽑아올 때까지 심각한 표정으로 린쳉이 아까 한 질문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프란쯔가 캔 커피를 건네자 그제야 굳었던 표정이 풀렸다. ……린쳉의 질문을 곱씹어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냥 삐쳐 있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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