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추리소설] 깜둥이 모세 - 27회

27회 - 새 파라오의 즉위

등록 2005.05.28 22:56수정 2005.05.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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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레바논산 수입 삼나무로 만든 배는 우아하고 날렵하게 생긴 선체의 모습을 수면 위에 드리우고 있었다. 갈대배에서 내리는 수행원들은 민망하게 물에 빠질까 봐 조심스레 내리는데 반해, 육중한 삼나무 배에서 내리는 아포피스는 가볍게 육지에 발을 디뎠다.


아포피스가 육지에 발을 디디는 순간 환영을 의미하는 세네브(트럼펫과 비슷한 악기)의 연주가 울려 퍼졌다. 황금 장식물로 제법 멋들어지게 꾸며 입은 모세가 아포피스의 손을 잡고 환영의 인사를 올리자, 셰마이트(가수라는 뜻) 여인들이 '리라'라 불리는 하프를 연주하며 축복의 노래를 불렀다.

"아직 왕자님의 즉위식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뭡니까?"
"아마 지금쯤 수도 아바리스에서는 즉위식이 거행되겠지."
"아포피스님이 즉위식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여기 사태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아포피스는 모세의 경직된 옆얼굴을 보고 웃었다.

"자네를 문책하기 위해 온 건 아니라네. 왕자님, 아니 이젠 파라오시지. 파라오께서 즉위식을 치르기도 전에 분부하신 거라네. 남쪽의 테베가 어수선한 틈을 타서 도발하지 않을까 염려가 대단하시거든. 파라오께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신하라면 우리 둘밖에 없으니까."
"그거 역시 듣기 좋은 얘기는 아니군요. 다른 힉소스 귀족들이 우리를 견제할 수밖에 없다는 표현이잖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마침 오는군요."

모세가 턱짓으로 가리킨 방향에서 중무장한 청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포피스도 금방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


"제제르?"

제제르는 긴 머리를 휘날리는 준수한 용모의 청년이었다. 키는 5규빗(1규빗은 대략 45Cm)에 가까웠고 온 몸이 근육질인 용사였다. 어려서부터 전쟁터를 돌아다녀 몸 구석구석에 흉터가 있어서 셉투(Septu, 이집트의 전쟁의 신)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환영식에 늦게 당도함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아포피스는 제제르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라오께서도 셉투의 활약을 기대하고 계시네. 그 동안 흉터가 늘어난 모양인데?"
"이건 흉터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전투의 문신일 따름입니다."
"오호, 전투의 문신이라."

모세가 미간을 약간 찡그린 채로 제제르를 쳐다보았다.

"지금 이 시각에 근무지를 벗어나 환영식장에 올 이유가 없을 텐데?"

모세의 말에 제제르의 목에 핏줄이 퍼렇게 섰다. 그러나 입가에는 여전한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수도 아바리스에서 아포피스님이 오셨는데, 힉소스 유수의 귀족인 내가 여기 오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보오만."
"근무지 무단 이탈의 벌이 어떤지 힉소스 유수의 귀족인 제제르가 모르지는 않을 텐데?"
"전쟁 포로 출신 주제에 아무리 직위가 높기로서니 힉소스 귀족 머리를 짓밟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둘의 신경전이 도를 넘으려 하자 아포피스가 끼어들었다.

"제제르, 나도 오랜만에 자네를 봐서 기뻤네. 나중에 따로 술자리나 마련하도록 하지. 이만 돌아가도록 하게. 자리를 오래 비우면 모양새가 좋지 않네. 게다가 여기는 최전방 아닌가?"

마지못해 제제르가 한발 물러섰다.

"여기에는 수도처럼 미녀는 없습니다만 포도주는 제법 깊은 맛을 냅니다. 이따가 뵙도록 하지요."

물러가는 제제르의 뒷모습을 보며 아포피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선왕께 발탁됐을 때 주위 반응이 차가웠지. 자네는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겠어. 그런데도 파라오께서는 자네에게 더한 중임을 맡기려 하시니 걱정인걸."
"친히 최전선까지 오신 이유가 파라오의 전언 때문입니까?"

아포피스는 모세가 안내하는 연회장으로 가면서 어렵게 입을 떼었다.

"파라오께서는 대폭적인 물갈이를 생각하고 계시는 듯 싶네. 자네 부하 중에 유능한 사람을 뽑아 이 남방 요새의 책임자로 세우고, 자네를 중앙으로 불러 군 통수권을 맡기실 모양이네."
"네?"
"쉿, 조용. 듣고만 있게. 이미 수도 아바리스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새 파라오의 눈에 들어 승진하고 있다네. 나이 든 귀족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들이 승진하는 것이니까 큰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네. 그런데 파라오께서 크게 관심을 갖고 계신 분야는 역시 군대지. 테베군의 북진을 막아야 하니까. 그래서 군 인사는 가장 파격적인 인물을 세우고 싶어하시네. 농담으로 그런 말씀도 하시더군. 테베군을 막을 수 있다면야 테베의 왕자라도 뽑아 쓰겠다고 하시네."
"좀 전에 보셔서 짐작하시겠지만 이런 요새 하나조차도 완전히 장악하기 힘듭니다. 힉소스 귀족들이 누비아인의 명령을 쉽게 따르겠냐 말입니다. 하물며 군 통수권을 셈족이 아닌 사람에게 맡긴다면 테베군을 막기 전에 내부 반란자부터 진압해야 할 상황이 올지 모릅니다."
"으음."

아포피스는 신음소리를 내며 장식용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갸릉. 익숙한 짐승의 소리지만 아포피스는 화들짝 놀라 모세 뒤로 몸을 피했다.

"모세, 저 짐승 좀 어떻게 안되겠나? 이런 데까지 데리고 나올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모세는 쭈그려 앉아 흑표범 카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그렇게 표범이 질색이신 분이 파라오의 표범은 어떻게 관리하셨습니까?"
"그건 일이니까 마지못해……, 하지만 자네 애완동물까지 관리하고픈 맘은 없네."

모세는 껄껄 웃으며 하인 보고 카를 데리고 가라 일렀다. 지하 저장고에 보관해 둔 차가운 포도주가 나오자 모세는 아포피스에게 한 잔 따라 권했다. 시원하게 목을 축인 아포피스는 두번째 잔을 채우려는데 멀리서 아련하고도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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