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그렇게 무섭니?

요즘 아이들이 잃어버리고 사는 것

등록 2005.05.30 01:21수정 2005.05.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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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어머니의 솜씨에 힘입어 생각보다는 간편하게 김치 담그기를 끝마친 우리 부부는 어머니께 점심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어디가 좋을까요?"
"글쎄, 시원한 막국수나 한 그릇 먹으러 가자꾸나."


평소 무엇이든 집안에서 내 손으로 해 먹는 게 제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어머니도 오늘처럼 더위가 느껴지는 날에는 시원한 막국수 생각이 절로 나는 모양이었다.

막국수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본 바깥 풍경은 초여름이었다. 봄 하늘에 동동 떠 있는 것 같았던 연록색의 조그만 나뭇잎들은 어느새 제 몸에 짙푸른 물감을 두 겹, 세 겹 덧칠해 놓고 있었다.

우리가 가는 단골 막국수 집은 제법 커다란 봉우리 하나를 넘어야 하는 산골 마을에 있었다. 물론 그곳까지 가는 길이 그리 험한 것은 아니다. 요즘 웬만한 곳 어디나 그렇듯 그저 매끈한 아스팔트 포장길을 운전해서 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막국수 집으로 가는 도중 뒷좌석에 탔던 녀석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아우성을 쳤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도로 옆 개울에서 제 또래 아이들 몇몇이 무언가를 움켜 잡는 모습을 보고 그 야단들이었다.


녀석들의 성화에 옆좌석에 있던 어머니께서 얼른 차를 세우라 하신다. 도대체 꼬맹이들이 개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 집 애들한테 보여주기나 하자는 거였다.

"고기잡는 시늉이라도 내는 거겠죠 뭐."


좀처럼 시장기를 못 참는 내가 다소 퉁명스럽게 말하는 데도 어머니께서는 기어코 차를 세우라고 하신다. 손주놈들 아우성이 어머니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던 모양이다.

큰 녀석은 차를 세우자 마자 '와아~'하는 소리와 함께 얼른 개울가로 뛰어 가고 작은 녀석은 종종 걸음으로 제 형 걸음을 쫓아갔다. 그 뒤로는 어머니께서 아내와 함께 '이놈들 넘어질라'는 소리를 저만큼 앞세우고 쫓아가고 있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오겠지 하는 내 생각과는 달리 녀석들과 어머니는 한참이나 지나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이 도대체 뭘 하는 걸까?'

참다 못해 개울가로 가 보았더니 바닥에 있는 돌까지 환하게 보일 정도로 맑은 개울에 새까만 점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먼저 와서 그것들을 움켜 잡는 아이들 옆으로 우리집 두 녀석들은 그저 한쪽 옆에서 그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고만 서 있다.

"어, 올챙이네!"

나도 꽤 오랜만에 보는 올챙이였다. 작은 꼬리를 꼬물거리며 헤엄쳐 다니는 올챙이는 언제 보아도 귀엽게 보였다. 나도 얼른 무릎을 굽히고 손바닥으로 올챙이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큰녀석이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아빠! 그거 괜찮아요?"

도대체 뭐가 괜찮냐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너, 이거 만져보고 싶지 않아? 빨리 신발 벗고 이리 들어와."

녀석은 여전히 우물쭈물하고 있다. 내가 얼른 들어오라고 다시 한번 재촉하자 그제서야 용기가 나는지 슬금슬금 다가온다.

"손바닥 펴 봐."

녀석의 자그마한 손바닥에 올챙이 한 마리를 올려 주자 처음에는 움찔하는가 싶더니 이내 제 손바닥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올챙이의 보드라운 촉감을 느끼고는 실실거리며 웃는다.

큰녀석은 제 손바닥에 있던 올챙이를 물위로 놓아주고 이제는 제 손으로 올챙이를 움켜잡으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막내 놈도 제 형 시늉을 내고 있다.

"큰애가 오늘 올챙이를 처음 본 모양이구나."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랬다. 이 녀석이 낼모레면 학교에 갈 나이인데 아직까지 올챙이 한 마리 변변히 보지 못하고 지냈던 것이다.

하긴 아파트 단지에 갇혀 일년 내내 지내면서 버스로 어린이 집이나 오며 가는 녀석에게 언제 올챙이 구경이나 할 기회가 있었는가 싶다.

"논바닥이구, 개굴창이고 그저 넘쳐나는게 올챙이였는데 지금은 다 어디로 간지 모르겠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갑자기 저쪽으로 아이들이 '우'하고 몰려가고 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나도 덩달아 뛰어갔다. 제 아빠가 뛰어가자 큰녀석도 얼른 뒤따라온다.

초등학생쯤으로 되어 보이는 애가 손바닥에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놓고 있다. 다른 꼬마애들은 둘러서서 이 희귀한(?) 존재를 경탄어린 표정으로 보고 있다. 녀석들도 개구리를 처음 본 모양이었다. 예전 같으면 서로 한번씩 만져 보려고 난리였을 터인데 다들 손은 뒤로 뺀 채 고개만 개구리쪽으로 들이밀고 있다. 우리집 큰녀석도 내 손을 꽉 물들고는 아주 비상한 호기심으로 개구리를 보고 있다.

그때 문득 나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집 녀석들에게 아빠로서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이의 손바닥에 올려져 있는 개구리를 냉큼 집어 들었다.

우리집 큰녀석의 표정은 경이로움으로 가득찼다. '아니 어떻게 우리 아빠가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저렇듯 쉽게 개구리를 움켜잡을 수 있을까', 하는 표정이다. 언제 왔는지 막내 녀석도 입을 헤 벌리고 제 아빠의 영웅적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다른 꼬맹이들의 시선도 빠르게 내 손바닥으로 옮겨져왔다.

나는 개구리를 내 눈높이까지 쳐들고 이리저리 살피는 척 하며 꼬맹이들에게 몇 가지 중요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음, 이 개구리는 숫컷이구나. 나이는 이제 너희들만큼 먹었구, 노래도 제법 잘 부르겠는걸. 겨울잠에선 지난 달에 깨어 난 것 같고, 그리고…."

그러자 한 꼬맹이 놈은 대뜸 '어, 개구리 박사같네'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다른 녀석들도 모두들 나를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이쯤에서 녀석들에게 한 번 더 재미를 주고자 들고 있던 개구리를 번쩍 쳐들고서는 '누구 한번 만져 볼 사람?'하고 소리쳤더니 이전에 먼저 잡았던 놈 말고는 모두들 발을 뒤로 뺀다.

나는 우리집 큰녀석 가슴 앞으로 개구리를 불쑥 내밀며 얼른 만져 보라고 재촉을 했다. 그러자 이놈은 아주 질겁을 하며 뒤로 물러선다. 아니 발만 뒤로 빼는게 아니라 두 손도 얼른 뒤로 감추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더구나 얼굴은 거의 사색이 된 듯하다.

나는 녀석의 그런 반응이 너무나 당혹스러워 얼른 개구리를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녀석을 살짝 감싸 안아주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사내 녀석이 이렇게 겁이 많아서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차로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건 녀석이 겁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닌 듯싶었다. 아파트 옆 상점앞에 놓여 있는 오락기기 화면에서 쉴새없이 나오는 잔인한 싸움 장면을 보고서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녀석이 어쩌면 어린 아이의 가장 친근한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곤충이며 벌레들을 보고서는 그토록 무서워하고 꺼려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우리집 아이를 너무 삭막하게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거였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에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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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기자'라는 낱말에 오래전부터 유혹을 느꼈었지요. 그렇지만 그 자질과 능력면에서 기자의 일을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자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많은 시간을 망설였답니다. 그러나 그런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일단은 사회적 목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 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생각도 이야기 하는 게 그나마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필요치 않을까, 하는 판단이었습니다. 그저 글이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진솔하고 책임감있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 있는 글쓰기 분야가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상의 흔적을 남기고자 자주 써온 일기를 생각할 때 그저 간단한 수필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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