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암, 용의 머리를 닮은 바위.
내가 그 바위 앞에 선 것은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용이 어둠 속에서 안식을 청했을 시간이지만 훤한 전깃불이 세상의 밤을 몰아낸 요즘의 처지에선 용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낮이나 밤이나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을 맞을 수밖에. 나도 그렇게 밤에 용을 찾아가 그의 수면을 방해한 여러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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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사실 용은 낮이나 밤이나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굳어 있다. 그러나 파도는 낮이나 밤이나 그 주변을 맴돌며 용을 부추긴다. 저 하늘로 날아오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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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멀리 호텔의 불빛이 화려하다. 용은 전설을 끌고 날아오르고, 호텔에선 때로 사람들이 욕망을 끌고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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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쯤 용의 날을 만들어 주변의 불을 모두 끄고 용의 비상을 준비해주는 것은 어떨까. 칠흑의 어둠 속에서라면 상상의 날개를 빌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의 용도 그 육중한 바위의 하중을 툭툭 털어버리고 얼마든지 날아오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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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용의 뒷모습을 궁금해 하지 말라. 당신이 용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용은 용의 모습을 잃은채 싸늘한 돌덩이로 변해 버린다. 혹 한순간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면 가장 용이 용답게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당신의 숨결을 나누어주라. 그러면 용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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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용의 귀환, 당신이 나누어준 숨결에 힘입어 용은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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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처음에 나는 파도가 용의 승천을 부추긴다고 생각했으나 한참 용의 주변을 맴돌다가 그 생각을 바꾸고 말았다. 그 파도를 일으킨 것은 사실은 용이었다. 그가 몸을 꿈틀대거나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이며, 그때마다 바다가 일렁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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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생각을 바꾸자 용트림의 몸짓을 따라 파도가 튀어오른다. 용의 목덜미까지.
덧붙이는 글 | 사진은 2004년 10월 19일에 찍은 것이며, 개인 블로그인 http://blog.kdongwon.com/index.php?pl=90에 동시에 게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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