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치집을 만들려면 보리를 심어야겠네요. 만드는 방법을 시간 나는대로 써보겠습니다. 내년에 귀향하면 <산채원>에도 추억의 <장난감박물관> 하나 쯤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김규환
집중력이 부족한 우리들은 까마득히 세상일을 잊고 있었다. 지금까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여치집을 하나씩 더 만들 요량으로 다시 보릿대를 추리려고 할 때였다.
"야 이놈들아. 보리 까시락에서 뭣들혀."
"아녀라우."
"한 번 백히면 얼매나 꺼끄러운지 알기나 혀?"
"암은이라우. 보리타작도 해봤는디 그걸 모르간디요."
"이놈들이 꼬박꼬박 대꾸네…. 후딱 집에들 가서 놀그라."
"알았어라우."
그 때 눈치꼬치가 빠른 병문이가 꼬깃꼬깃 말라가는 삼잎을 슬며시 여치집으로 눌러서 숨겼다. 하마터면 곤욕을 치를 뻔했다.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한 아이는 애써 절어 놓은 여치집을 밟아버렸다. 빈 지게를 지고 신작로를 걷는 아저씨는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큰일 날 뻔 해부렀다. 우리 여그 있지 말고 정지동으로 가자."
"그려 거기 가면 잔디도 좋고 잘 안보인당께."
푸석푸석 마른 잎을 살포시 쥐고 들판 한가운데 있는 새참 마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름드리 노송 세 그루가 마주보며 거북등처럼 갈라져 세월을 말해주고 있어 나중에 학교에 오갈 때 들러 놀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근사한 곳이다. 주위엔 아직 논을 갈 형편이 못 되었으니 안전지대가 따로 없었다.
노송 껍질이 벗겨진 사이로 진물이 흘러내려 진액을 빨아 먹으려고 개미가 쉬지 않고 오르내린다. 우린 나무에 바짝 붙어 풀썩 주저앉았다.
"자 여기."
"나 쫌만 더 주라."
"그려 많이 쳐묵어라."
종이에 바짝 마른 삼 잎을 넣고 동글동글하게 둘둘 말아서 마지막 겉엔 어른들이 하시던 대로 침을 자르르 발라 붙였다.
"다 말았제? 당냥 별로 없응께 한꾼(한꺼번)에 붙여야 헌다 알겄제?"
"눈깔 퍼런 서독 사람들은 열 명이 모여야 불을 켠다고 하드라."
"준비 됐응께 성냥집!"
황인지 인인지 모를 냄새가 마른 날에 확 퍼졌다. 담배처럼 만 장초에 불을 붙이자 끝에선 불이 날 듯 파르르 타기 시작했다.
"해섭아 얼렁 꺼 임마. 글다 이마빡 태우겄다."
"훅!"
"원매 뜨거운 거."
옆에서 같이 붙이려던 아이들도 모두 바람을 불어서 껐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숨을 몰아쉬던 해섭이는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나와 나머지 아이들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끝에 일부러 침을 칠하여 조금 늦게 타도록 단단히 준비하고 재차 작업에 들어갔다.
"자 댕겨봐봐. 내가 먼처 할 텨."
성냥을 확 그어서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훕! 컥컥!"
"왜?"
"허벌나게 쓰구만. 콜록콜록."
다른 아이들도 다 붙였다. 쓰디썼던 건 연필로 필기를 했던 까닭과 잉크 냄새 때문이었다. 게다가 종이가 거의 갱지에 가까웠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문종이를 구해왔으면 좋으련만….
첫 호흡은 매캐한 연기 내음이었지만 차차 안쪽으로 타들어가면서 대마 잎에 불이 다다르자 맨 먼저 풋내가 나고 다음으론 향긋하고 시원한 맛이 났다. 이어 하늘에 느릿느릿 움직이던 구름이 속력을 내서 춤을 추었다.
"야, 이것이 뭐다냐?"
"박하 냄시도 아닌 것이 야릇하구만."
"기분 좋냐?"
"째끔."